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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가 ‘그림의 떡’인 사람들의 이야기

[기획] 어떤 이들의 여름 - ②

본문

 
​△ 제주도 여름휴가 중 아버지 권유상 씨와 권범석 씨
 
 
여름휴가,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
돌발행동에 초긴장, 따가운 주위시선에 차라리 집에 있는게 나아
 
“휴유~ 여름 휴가요? 꿈도 못꿔요”
 
최중증 발달장애인 범석 씨는 올해 37세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범석 씨는 의사 소통은 물론 ‘예’, ‘아니오’의 의사표현도 어렵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있건 없건 소리를 질러 부모를 당황하게 한다.
 
<함께걸음>은 범석 씨의 여름휴가에 대해 현장 취재를 하려했으나 70세가 넘은 부모의 건강상태 악화로 인해 전화 인터뷰와 범석 씨의 아버지 권유상 씨가 운영 중인 ‘발달장애 범석이의 또 하나의 세상’이 라는 블로그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였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범석 씨는 휴가나 여행을 인지하고 있을까? 범석 씨 아버지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그 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장애의 유무나 정도와는 상관이 없었다.
 
‘오늘 오후, 범석이가 여행갈 때 메고가는 배낭을 꺼내놓고 엄마를 부른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가보다. 전에도 가끔 배낭을 꺼내 놓고 옷을 담으라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여름휴가 때는 녀석 때문에 휴가를 망쳤었는데, 배낭을 꺼내 놓다니..., 배낭은 왜 꺼내 놓느냐, 갖다 놓으라고 잔소리를 하니까, 도로 갖다 놓더니 이번엔 여행용 대형가방까지 꺼내 놓는다. 집에 있는게 답답하고 콧바람을 쐬고 싶은가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장애의 유무나 정도와는 상관이 없었다.
 
△ 어린 시절, 바다에 놀러간 범석 씨
 
범석 씨의 아버지는 100kg에 다다른 범석 씨를 밤낮없이 돌보느라 몸이 성한 곳이 없다. 어머니도 화가 난 범석 씨가 밀쳐 팔이 부러지기기도 하고 허리를 삐끗하기 일쑤다. 이번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범석 씨 아버지가 허리와 위장 등에 이상이 생겨 갑작스럽게 응급실에 가면서 전화 인터뷰로 대신 할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성한 곳이 없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범석 씨의 아버지는 여름휴가에 대해서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휴가요? 휴가는 무슨 휴가~” 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범석이가 어릴 땐 뭐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하고 음식도 주는 대로 잘 먹었죠. 외출하거나 여행 가도 순순히 따라나섰고, 여행지에서도 우리 잘 따라다 니고. 근데 중학생 올라가면서 사춘기를 겪더니 외출 하자고 해도 싫으면 따라나서지 않고 여행 가도 자기가 싫으면 고집 부리고 차 안에서만 있으려고 하고 여행을 망치기 일쑤였어요.”
 
그렇다 보니 범석 씨네 가족은 범석 씨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여행과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여행을 데려가지 못하는 게 늘 부모님 마음속에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가끔 마음에 여유를 찾기 위해 범석 씨의 어머니는 여행을 떠났었지만 뭐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어 이제는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을 선택하곤 했다.
 
 
​△ 제주도의 한식당, 범석 씨와 어머니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영덕에 가서 꼭 대게를 먹자고 아내랑 약속을 했었 거든요. 자동차를 주차하고 대게 식당으로 가려니까 범석이가 차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서, 결국 주차장 옆의 허름한 삼겹살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이후로 아내는 휴가 때면 아무데도 가지 않으려고 하죠.”
 
몇 년 전, 범석 씨와 부모님은 KTX를 타고 강릉으로 떠난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려고 KTX 특실을 왕복 예약했다. 장애인과 보호자는 특실의 경우, 30% 할인을 해주니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범석 씨가 기차 안에서 떠들지 않고 조용히 갈 수 있도록 평소 좋아하는 KFC치킨과 감자튀김을 사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 음식으로 범석 씨의 침묵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평일 강릉행은 빈자리가 많긴 했지만, 앞뒤 좌석으로 승객이 있어서 상당히 신경 쓰였어요. 특히 곤하게 자는 승객들이 범석이 소리에 깰까봐 더 조바심을 냈는데 녀석은 아빠 걱정은 아랑곳 않고 기분이 좋은지 연신 치킨과 감자튀김을 먹으며 혼자 중얼거리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길이 없었죠.”
 
“강릉에서 오는 KTX 안에서 범석이가 중얼거리니까 우리 앞에 있던 20대 후반의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내는 범석이를 찾기 위해 계속 우리 쪽을 주시했어요. 범석이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앉지 않고 계속 주시하기에 나도 뻔히 쳐다보니까 5분도 더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앉더래요. ‘신경좀 꺼!!’라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제주도 용두암 부근에서, 범석 씨와 그의 어머니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장애인 자녀의 행동과 돌봄,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의 연속이다. 이에 장애인 부모는 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혹시 돌발상황이 발생할까 염려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심리적 여유도 갖기 힘들다.
 
범석 씨의 아버지는 TV프로그램에서 중년의 부부 또는 가족단위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는 여행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가족도 저렇게 여행을 갈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드는 생각. ‘전국의 발달장애인과 중증장애인 부모들은 어떻게 이 웬수와 같은 여름 휴가철을 보내고 있을까?’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힘겨운 여행을 생각하면 웬수가 따로 없다.
 
범석 씨의 부모가 유일하게 ‘해방’을 느끼는 날은 범석 씨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여름캠프를 떠나는 기간 이다. 그렇지만 캠프는 보통 1박 2일. 길어봤자 2박 3일이다. 2박 3일이라고 해도 범석 씨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날을 빼면 부모가 온전히 범석 씨 없이쉴 수 있는 날은 하루 뿐. 길고 긴 여름날, 휴가가 딱하루 주어지는 것이다.
 
“범석이랑 어딜 다니면 부모로서 늘 마음 졸이고 위축되거든요. 특히 사람들 많은 자리 갈 때, 이발소 갈때. 범석이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남다르고 다들 경계 하니 계속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죠. 아이가 부모 없이 혼자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고, 집에 있기 갑 갑하면 가까운 공원에 가서 산책도 하고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지 못하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들의 근심의 무게는 점점 어깨를 짓눌러가죠.”
 
범석 씨의 아버지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점점 건강도 안좋아지는데 범석 씨를 어떻게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아직 기력이 있을 때 남들처럼 범석 씨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지만, 집에서 하루하루 돌보는 것만으로 힘겹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은 아닐까?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여름휴가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
 
 
△ 제주도 이호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범석 씨와 그의 어머니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 사진제공. 권유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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