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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장애정책, UN장애인권리협약과 연계성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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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에 상응하는 제도들도 점차 마련되고 있다. 지난 3월 정부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를 비전으로 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년)을 발표하는가 하면, 오랜 장애계 이슈인 등급제 폐지와 탈시설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도 현재진행 중이다. 하지만 구체화된 정책들을 마주할 때마다 장애계가 매번 보이는 반응은 ‘환영’보다 ‘탄식’에 가깝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책 마련 과정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 분리? 일관성 잃은 장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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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된 제19회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최종 발표됐다.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복지법 제10조의2에 근거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범정부 계획으로, 해당 기간 추진될 장애정책 계획의 전반을 담는다.

제5차 계획은 지난 제4차 계획에서 지적됐던 미비점을 보완해 수차례 연구 및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하지만 계획 발표 이후 장애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제1~4차 계획들과 사실상 다를 것이 없다는 이유가 첫 번째였다.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현수 정책조직실장은 <함께걸음>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의 자립’과 ‘포용사회’를 강조하는 제5차 계획의 비전은 그동안의 제1~4차 계획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돼 왔는데, 이들 목표가 그간의 계획들이 추진되는 동안 제대로 달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계획에서 제시하는 비전이 하위 항목들에 얼마만큼 충실하게 담겼는지도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발표된 계획의 세부 항목에서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하지 못한 점도 이유였다.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 이슈가 됐던 일명 ‘강서구 특수학교’ 사태의 영향으로 정부는 특히 교육 분분에서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을 각 22교, 1,250학급 신설및 증설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장애계 대다수에서는 “제5차 계획이 최종적으로 지향해야 할 통합의 방향과 역행한다”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조현수 정책실장은 “5년 단위의 범정부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 변화하는 정권마다 일관성을 가지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UN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의 틀 안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CRPD 비준 10년…이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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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장애인권리협약은 21세기 최초의 국제 인권법에 따른 인권 조약으로, 2006년 12월 13일 제61차 UN총회에서 채택됐다. 협약 제1조에서는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힌다. 2018년을 기준으로 비준하는 170여 개국 장애인 관련 입법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협약은 장애를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문제를 강조하는 사회적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은 2008년 12월 비준한 이후 신규 비준국이 2년 이내에 제출해야 하는 국가보고서를 2011년 한차례 제출했다. 대한민국이 제출한 제1차 보고서에 대해 UN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가 지난 2014년 9월 본위원회 회의에서 논의한 후, 10월 대한민국 정부 심의 결과물로 ‘대한민국 제1차 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를 채택했다. 공개된 최종견해에는 60개 항목에 걸쳐 권고사항이 나열됐는데, 특히 △의료적 관점에서 설계된 장애등급제 △대한민국이 장애인권리협약의 선택의정서를 채택하지 않은 점 등이 지적사항이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 발표 이후 국내에서는 “UN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2016년 6월 인권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UN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강화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지영 사무국장은 “최종견해에서는 의료적 관점에서 획일화된 지원이 아닌, 인권적 관점에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장애등급제 개선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시도하는 등급제 개편은 여전히 의료적 관점을 탈피하지 못하는 등 UN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협약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책에 담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올해 발표된 제5차 종합계획에서도 알수 있듯이 2년여가 지난 올해까지도 뚜렷한 변화는 없다. 대한민국이 2019년 1월 11일까지 UN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에 따른 이행상황 보고서 제출을 한 달여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앞으로 UN장애인권리협약에 관한 논의가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CRPD와 함께 가는 EU 장애인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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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함께걸음>은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대외관계청(EEAS)에 방문해 EU에서 시행 중인 장애정책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목할 만한 점은 EU의 거의 모든 장애정책이 UN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해 마련돼, 협약을 이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원국들이 장애인권리협약의 가치들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EU의 의무다. EU의 장애정책은 장애인권리협약이라는 국제조약에 근거해 오랜 기간 동안 회원국 간의 의논과 합의에 따라 마련된다. EU 회원국 대부분이 장애인권리협약에 비준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 이행을 강제하는 별도의 장치 없이도 이행이 잘 되는 편이다. 장애정책을 포함한 EU의 정책을 특정 회원국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엄중한 대면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아직까지 장애 영역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독일 도르트문트대학교의 이명희 장애복지학 박사는 유럽 국가들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의 적극적인 이행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협약을 근거로 촘촘하게 짜여진 장애정책과 선택의정서 채택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가장 큰 의미는 기존 의료와 돌봄 중심에서 인권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다. EU회원국 중 하나인 독일은 2009년 장애인권리협약과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이후 협약에서 강조하는 가치를 장애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 가치는 장애인의 삶 모든 영역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참여와 지역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포용(Inclusion)이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는 장애관련 법들을 초기단계부터 재정비하고 제도들을 과감하게 개혁하는 한편, 협약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독일 최초의 장애인종합대책에 해당하는 정부주도 국가추진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토론을 통해 독일 사회 전반적으로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선택의정서 비준을 통해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장애인권리협약의 기본 원칙들을 정책 전반에 일관성 있게 녹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선택의정서 채택으로 정부에 대한 이행 강제성을 부여하는 한편, 다양한 토론의 장을 통해 패러다임변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 이 기사는 주한 EU(유럽연합) 대표부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작성자정혜란 기자  sousms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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