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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쓰레기 선별한다고 인생도 쓰레기는 아닙니다

[르포] 비정규법 해고위기 경주 재활용선별장 노동자

본문

[참세상]

   

덤프에 실려 온 재활용더미 자루가 야적장에 우르르 쏟아집니다. 때를 맞춰 앞치마를 두른 이들이 몰려듭니다. 손에 쥔 칼과 낫을 들고 자루를 쨉니다. 자루에 담긴 내용물이 우르르 바닥에 흩어집니다. 음료수 캔, 파지, 장판, 유리병……. 박정숙 씨는 순간 욱,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립니다. 썩어가고 있는 고양이 시체가 참혹한 모습으로 쏟아져나옵니다. 박정숙 씨는 이곳 재활용선별장에서 십오년을 일했건만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루를 칼로 쨀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뭉치가 큰 까만 비닐봉지가 나오면 섬뜩합니다. 그곳에서 혹 신문기사에서 보던 토막 난 시체가 튀어나올까봐.

쌓아둔 재활용 무더기 앞에 쪼그려 앉아 캔은 캔대로 병은 병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나눠 뒤로 밀어내던 황춘희 씨도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립니다. 까만 비닐봉지 찢긴 틈 사이로 구더기가 버글버글 기어 나옵니다. 누군가가 재활용자루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버렸습니다. 며칠을 푹 삭았는지 고약한 냄새가 속을 뒤집습니다.

“이게 뭐꼬?”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라 합니다. 한여름 햇살이 목덜미를 뜨겁게 달구는데, 이리 삭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면 당장 장갑을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헌옷을 주어든 황춘희 씨는 수돗가로 달려갑니다. 찬물에 헌옷을 적신 뒤 자신의 등에 착 걸칩니다. 벌겋게 익은 등짝이 잠시 시원합니다. 하루 여덟시간, 재활용선별장 야적장에 ‘조자(주저)앉아’ 오리걸음을 하며 재활용더미를 야금야금 갈아먹습니다.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숯에 달궈진 쇠꼬챙이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몸뚱이가 녹아내립니다.

이리 일하고 나도 잠시 쉴 곳이 없습니다. 겨우 비 막음을 해둔 탈의실은 맨 시멘트 바닥. 재활용더미에서 주어온 장판 쪼가리를 깔고 아침 출근할 때 싸온 도시락을 먹습니다. 온갖 악취에 쥐들이 오가며 남긴 배설물이 군데군데 있는 곳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니……. 허기진 배에 우기적우기적 밥을 밀어 넣지만, ‘이런 거렁뱅이가 어딨노?’ 하는 마음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남들은 주오일제를 한다하는데 이곳 재활용선별장은 토요일 오전 근무만 하는 ‘반공일’도 없이 꼬박 일주일에 엿새를 여덟시간씩 일합니다. 유관순 언니가 독립만세를 부르던 삼일절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광복절도, 부처님이 나시고 아기예수가 태어난 날도 이들에게는 빨간날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새해 첫날도 출근해서 쓰레기더미를 뒤져야 합니다.

아, 이곳이 어디냐고요? 그 이름도 아름다운 경주. 천년의 숨결이 신비하게 감싸고 있는 도시, 바로 경주입니다. 경주시 천군동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장 곁에 재활용선별장(2006년 3월 28일 준공)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정말 한 줌 햇볕 가릴 곳 없는 노천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일을 하고, 밥을 먹었던 재활용선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2010년 4월 2일,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로 갔습니다. 유난히 봄이 오지 않는 올해, 남녘땅에는 벚꽃이 피었을까, 기대를 하고 경주를 찾았지만 역시 벚꽃은 자신의 화려함을 피우지 않고 가지에 바짝 웅크리고 있습니다. 다음날이 경주 벚꽃 마라톤 대회인데, 벚나무 마라톤 대회를 하게 생겼다며 택시기사가 농담을 합니다. 곳곳에 문화관광의 도시, 천년고도인 경주의 머슴이 되겠다는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얼굴이 큼직하게 걸려 경주의 고풍스런 멋을 가리고 있습니다.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하는’ 이들 대신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했던’ 이들을 만나려고, 재활용선별장이 있는 ‘천군동’이 아닌 ‘경주시청’으로 갑니다. 최신설비를 갖춘 천군동 선별장이 지어지자 이제 좀 사람답게 일하나 싶었는데, 그 꿈을 해고로 맞이한 설운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시청 정문 옆 컨테이너 박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에 바친 열난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옵니다. 도저히 인터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이 서린 목소리가 서슬 퍼렇게 쏟아집니다. 

   
황춘희 씨
“무시했지. (경주)시장이 우릴 무시했지.”
“깔 봤는 게라.”
“소같이 일만 했는데 우찌 이랄 수가 있능교?”
“자존심보다 지들 하는 것이 너무 진짜 괘씸해서도, 진짜 십 몇 년을 일해도 진짜 조금이라도 그기 없이, 진짜 하루아침에 저렇게, 그기 괘씸해서도 진짜……”

땀 흘려 하루를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말하는 ‘진짜’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이들이 말하는 ‘진짜’는 정치인들이 ‘진짜 뇌물을 받지 않았다’의 ‘진짜’가 아닙니다. 말로 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렸을 때, 다른 말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 하는 말이 ‘진짜’입니다. 땅에서 살 수 없어 수십미터 철탑에 오르는 사람을 만나면 듣는 소리가 ‘진짜’입니다. 죽어라 일만 시킨 공장에서 쫓겨난 이들이 일터를 돌려 달라, 절규하며 내뱉는 외마디가 ‘진짜’입니다. 그 가슴 절절한 목소리 ‘진짜’를 이곳 경주에서 다시 듣게 됩니다.

이들이 왜 ‘진짜’를 숱한 말 대신 되풀이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경주시는 2009년 1월 1일, 남들이 쉬는 공휴일에 재활용선별장에 출근한 이들을 불러 계약서를 쓰라고 합니다.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1년 계약직 노동자들로 새해 첫날 계약서를 다시 쓰고 일을 합니다. 공휴일에 출근 하는 것이며 계약서를 다시 쓰는 것이며 예전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계약기간입니다. 문제는 1년씩 하던 계약을 올해는 6개월만 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 다시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경주시 재활용선별장과는 이별이라고 통보합니다. 이게 뭔 말이냐? 이제껏 우리가 그 뙤약볕에서 하루에 20톤 넘게 재활용선별을 몸이 바스라지게 했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냐? 물었습니다. 경주시 담당 공무원은 비정규직법 때문에 2년 이상 당신들을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니 올해 7월 1일부터는 절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제껏 법 없이 살아왔던 이들은 법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겨야 한다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고, 법이 어디에 있는지, 대통령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난린데 경주시청은 하루 일당 삼만칠천원, 오십이 넘은 여성 노동자를 쫓아내겠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따졌습니다.

이때부터 천년왕조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신화처럼 ‘아지매’라 불리던 재활용선별장 노동자들은 알에서 깨어나 권리를 위한 지독한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법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기게 생긴 이들은 법정근로시간 주44시간을 지키지 않고, 수당도 없이 주48시간을 일을 시킨 경주시청에 법을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번도 쉬어보지 못한 5월 1일 노동절도 되찾았습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5년을 악취더미에서 일해 온 이들은 비정규직법에 의해 ‘청산’될 대상이 아니라 정식 직원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요구했습니다. 공무원처럼 상여금이나 복지카드와 같은 극진한 대우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정년을 정해 그때까지는 고용불안 없이 일을 하게 해 달라! 소박한 요구이자 권리를 백상승 경주시장에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경주시의 답은 냉혹했습니다. 서둘러 시 조례를 만들어 경주시 재활용선별장을 민간에게 위탁하기로 결정(2009년5월8일)합니다. ‘재활용 쓰레기 위에 아름다운 노동의 꽃’을 피우던 노동자들의 생계의 꽃망울을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올해 쉰 셋, 십년 전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아이엠에프 때 실직하는 바람에 시작한 공공근로가 재활용선별장과 인연이었다는 황춘희 씨는 봄바람에 얼굴을 훔치며 눈물을 감춥니다.
“우리 하는 일이 냄새나고 지저분하잖아. 그래서 넘한테 진짜 직장 어디 다니냐 하면 내놓고도 이야기도 못했어요. 진짜 부끄러워서. 그렇지만 오래 다니다보니까 자부심도 가지고 내가 일이 있다는 거, 아프지 않고 힘든 일도 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자부심을 갖고, 이게 내 천직이다, 생각했어. 티브이 보면 회사에서 짜르고 해도 나는 (경주)시에서, 공공기관에서 일하니까 짜르지는 않겠지. 이렇게 험한 곳에서 고된 일을 하는데 짜르겠냐. 오래 다닐 수 있는 있는 일터가 있어서 난 괜찮다. 일이 고돼도 내 몸이 따라줘 일할 수 있으니 행복이다, 이리 생각했는데…….”

올해 쉰 셋, 십년 전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아이엠에프 때 실직하는 바람에 시작한 공공근로가 재활용선별장과 인연이었다는 황춘희 씨는 봄바람에 얼굴을 훔치며 눈물을 감춥니다. “팔(여덟) 시간을 조자앉아 일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데, 황춘희 씨는 “몸이 따라 줘”삼 개월 공공근로 기간에 담당 공무원의 눈에 띄어 재활용선별이 자신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맏며느리인 황춘희 씨는 명절연휴 때도 남들처럼 쉬지 못하고 쓰레기더미를 찾아갔습니다. 명절 치다꺼리하기 싫어 일터에 가는 것 아니냐는 시누이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밥줄’을 지키려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는 비정규직법 때문에 계약해지.

“명절 날 맏며느리고 해서 하루 쉴라하면 뭐라 하는지 알아요. 영원히 오지 마라! 그라니 맏이가 일하기 싫어 명절에 일 간다, 소리 들으며 출근 했어요. 진짜 여기 조금만 눈에 벗어나면 짜를까 싶어서.”

마흔넷 박귀옥 씨는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3년 전 재활용선별장에 취직했습니다. 천군동 선별장은 집에서 가까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도 출근을 할 수 있어 조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기 쓰레기장, 재활용선별장에 다녀봐라. 애들 학자금도 나오고, 토요일 일요일도 놀고, 다섯시 퇴근이고, 동네 사람들이 이러는 거라. 난 진짠 줄 알고, 잘됐다 싶어 가가 보니까 웬 걸 아무 것도 없어. 학자금은커녕 점심도 안 주고.”

재활용선별장을 경주시에서 운영하니 그곳에서 일하면 공무원처럼 대우를 받는 걸로 동네사람들은 착각하였습니다. 한참 아이들이 클 때라 학자금 말에 귀가 솔깃하여 취직했는데, 토요일 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국경일이나 명절 연휴 때도 출근을 해야 했으니, 누굴 탓하겠냐며 박귀옥 씨는 한숨을 쉽니다. 학자금은커녕 명절 그 흔한 선물도 없었습니다. 장마철에 노천에서 비옷을 입고 재활용더미를 뒤지면 땀과 빗물에 온몸이 흠뻑 젖고, 얼굴에는 검은 물이 주룩주룩 흐릅니다.

“명절 전날 일은 일대로 했는데 빈손으로 집에 갈 때, 참 진짜 허무한 거예요. 시청 소속으로 일하는데 하다못해 오백원짜리 양말이라도 줘야지? 명색이 경주시 소속으로 일하는데 눈물 납디다. 진짜 돌아서는데 눈물 나고, 아 이렇게까지 일했는데 이래 대접 받아야 되나, 나는 그게 진짜 속상합디다.”

   
박귀옥 씨
재활용선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월급명세서를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경주시장’ 이름으로 통장에 찍힌 금액이 월급이라 생각합니다. 해마다 찍히는 액수가 다릅니다. 어떤 해는 급여가 인상되기는커녕 더 줄어들기도 합니다. 시 예산이 그리 책정되었다, 한마디면 잘릴까봐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4대보험도 몇 달은 가입되었다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일할 사람 이력서 잔득 쌓였으니 맘대로 해라!” 담당공무원의 윽박에 자신의 권리는 묵사발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눈을 뜨면 일할 곳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쓰레기더미에 흘린 자신의 땀방울이 자식들의 학비가 되고 남편 밥상의 생선 한토막이 되었기에 눈물꽃을 피우며 일했습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법 때문에 더는 근무를 하지 못한다며 발로 채인 인생들. 그 인생들을 동정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이제 주어진 밥그릇에 만족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자신의 밥그릇을 자신의 손으로 찾을 것이며 지키겠다고 동료의 손을 잡고 맹세하였습니다. 벚꽃 필 때 시작한 싸움, 민간위탁이 철회되고 부당해고가 철회되어 일터로 돌아가는 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지금도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선전물을 건네며, 긴 장마와 무더위 지나 한겨울 거센 칼바람 이겨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경주시장으로 있는 백상승 시장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3선 경주시장 도전을 위해 공천 받는데 줄을 설 게 아니란 걸. 지혜와 덕으로 백성과 함께한 신라의 정신이 깃든 천년고도 경주시의 시장은 시민을 쓰레기 취급하며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옹졸한 마음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이제라도 재활용선별장 노동자들에게 다시 일자리를 돌려주는 게 3선 경주시장 도전보다 먼저라는 걸.

“우리가 선별하는 일을 한다고 우리 인생도 쓰레기는 아닙니다.”경주시 재활용선별장 황춘희 씨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작성자오도엽(작가)  newscham@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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