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안타깝다” VS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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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충청]
박지연 씨의 빈소에서 ‘삼성의 피해자’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덧 빈소는 삼성 피해자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폐해. 반노동자적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폭로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삼성에서 일하다 해고된 김갑수, 김성환 씨, 박지연 씨와 같이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치료중인 김옥이 씨,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딸아이를 먼저 하늘 나라로 보낸 황상기 씨,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편을 잃고 빈소로 달려오고 있는 정애정 씨….
가족들뿐만 아니라 삼성측이 ‘또 버린 가족’들은 그녀의 빈소 앞에서 한 없이 미안해했다. 박지연 씨의 죽음 앞에서 미안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하다 못해 생전에 투병중이었던 박지연 씨도 미디어충청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안하다’ 였다.
반면 삼성측은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담당자는 “산업재해는 이미 공단에서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결정났고, 화학물질 사용 관련해서도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역학조사는 전문가들이 하는 거다.”며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산재가 아니라는 판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역학조사 자체가 미비했다는 지적과 삼성반도체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백혈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자료들은 계속 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방에서 만난 삼성
42세의 김옥이 씨는 22살에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반도체 조립, 세척 업무를 하다 퇴직 후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중이다. 김씨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심경을 묻자 “할 말이 뭐가 있겠냐”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감기가 걸려 코맹맹이 소리가 나도 치료중이라 감기약조차 먹지 못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많이 아팠다가 가니까. 지연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이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산 사람들이 할 일을 해야 한다.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산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인상 좋은 황상기 씨는 바쁘다. 국회의원들이 오면 삼성반도체 공장의 실상을 알고, 관련 업무로 걸린 병이 산업재해로 승인나야 한다는 것을 일이리 강조하고 다녔다. 박지연 씨의 죽음 앞두고 31일 아침 병원에 도착한 황씨는 삼성측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내며 “여기가 어디라고 왔냐”며 쫒아내기도 했다. 황씨 역시 만감이 교차해 웃다 울다 한다. 그리고 삼성에서 당한 ‘가장 치떨렸던 일’을 회상했다.
“2007년 1월쯤인데, 우리 유미가 백혈병으로 다 죽어가서 삼성에게 전화하니까 차장 1명과 과장 2명이 속초 우리집에 내려왔어. 그 앞에 꼴통 다방이 있는데. 우리 유미가 다 죽어가는데 기력이 하나 없이 죽어가는 데. 삼성은 그 앞에서 나를 회유, 협박하더라고. 나를 속여서 유미가 사표 쓰게 만들고. 2006년 10월에 삼성 과장, 직장이 우리집 찾아와 유미가 휴직기간이 다 되어 어떻게 하지 못하니까 당장 사표 쓰라고 했어.
회사에 바라는 거 말하라고 해서 산재 내 달라고 했는데, ‘아버님이 이 큰 삼성을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시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큰 삼성을 어떻게 이기냐 못 이긴다. 큰 회사가 알아서 해 줘야지. 산재 해줘라’고 했어. 그러니까 과장이 다른 거 요구하래. 이 회사에서 백혈병 나온다고 소문 나면 서로 골치 아프니까 남은 치료비 5천을 대라고 했어. 치료가 잘 되면 이유 달지 않겠다고 해서 사표 썼어.
그 뒤 11월 중숨쯤 아주대 병원에 찾아와서 우리 유미가 다 죽어가는 데 돈 500만원 가져와서 이것으로 해결하자고 거짓말을 하고 갔다. 나를 돈을 준다고 사표 쓰라고 하고 거짓말을 한 거야. 그리고 이제 우리 회사(삼성) 사람 아닌데 왜 우리에게 뭐라고 하냐며 듣지도 않았어.
삼성은 화학약품 쓰지도 않고 유미 백혈병은 개인 질병이래. 유미가 죽어서 장례식장 왔어도 삼성은 또 공갈치고 협박했어. 장례 치르고 나서 보장 잘 해준다고 하고 끝나니까 자기하고 아무 관계 없고 산재도 아니래. 입만 열만 거짓말 사기 공갈이야. 이건희에게 배웠는지 나는 알 수가 없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미가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집에서 어제 서울 올라고 첫차 끊고 잠을 자는데 자꾸 지연이, 유미 생각나고. 3일 동안 잠을 못 잤어. 자꾸 유미 이쁜 거, 까불고 하는 거 생각나서. 지연이 면회 시간 되었는데 죽었다고 해서 병실을 들어가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어. 얼마나 많이 고생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얼굴 보니꺼 유미가 생각나서 눈물이 짤끔 했어. 여기 국회의원들도 왔는데… 불쌍한 노동자만 자꾸 생각나고. 유미, 옥이… 반도체 공장 일하다가 또 백혈병 걸려 나올 사람들 생각하니까 한숨만 나오고. 눈물이 핑 도는 게. 반드시 사회 지도층이 이 문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큰 과제라고 생각해.”
아직도 생생한 일 '그림자마크‘
삼성SDI 천안사업소에서 일하다 2000년 11월 해고된 김갑수(현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 씨 역시 내내 박지연 씨의 곁을 지켰다. 그는 노조가 없는 삼성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이 되어 노조로 전환하려던 것이 사측에 알려졌다. 법에 보장된 노조를 설립하고, 삼성의 ‘무노조 신화’를 바꿔보려 했지만 쉽게 이루지지 않았다. 삼성의 미행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해고되고 바깥에 투쟁하던 내가 끝까지 버티니까 삼성은 나를 24시간 관리했다. 출근하게 되면 ‘그림자마크’라고 해서 사람이 항상 붙어다녀. 설비쪽 일하는 데도 사무실 앞에 의자 가져다 놓고 앉아 있고, 회사 나오면 미행조 2인 1조, 때로는 차가 3대가 될 때 있어. 1대는 항상 24시간 나를 따라다녔다. 집을 지키는 조도 있고, 그들도 3교대로 하더라고. 삼성은 그렇게 사람 관리를 해. 현장내 다른 사람들 만나지 못하게 했어. 1년 지나다보니 사람이 거의 미치다시피 하는 거야. 더러는 이런 관리속에 면담이다 해서 관리자들이 나를 데리고 지역을 떠나서 외지로 가. 강원도 산골이나 경기도, 전라도. 사람이 없는 데로 데리고 다니면서 회유, 협박하지. 더러 내가 도망을 가면 잡히고, 강제로 여럿이 모여 차를 현관에 대놓고 팔을 꺾어서 강제로 태워서 가기도 하고, 가는 도중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어. 동료들이 나를 납치로 실종신고 한 적도 있고. 경찰은 ‘회사일이다’ ‘미행, 감시 말하면 경범죄밖에 처벌받지 않는다’고만 해. 모두 무용지물이었지. 진짜 대한민국 사회가 삼성공화국이라는 것을 몸소 뼈져리게 느꼈던 10년이었어”
그리고 김갑수 씨 역시 박지연 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씨는 삼성 관련 노동자 중에 백혈병에 걸렸던 박씨를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믿겨지지 않아… 삼성이 반노동자적 정책을 중단하고, 백혈병을 인정하고,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게 해결책이야”
핸드폰불법복제위치추적 피해 노동자로 2005년 구속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2007년 3월 국제 엠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되고, 11월 전태일 노동자상 수상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삼성은 비판하는 자는 해고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 수는 늘어가고 있다.
김성환 위원장은 빈소 앞에 앉아 ‘지금 이런 경우’가 가장 무섭단다. 지금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일하다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더라도 회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건 일하다 다치고 죽는 게 아니라 학살당하고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것이다. 이런 순간이 가장 치떨리는 순간이다. 납치 감금도 기억난다. 백혈병으로 피해 노동자들의 명예회복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끝까지 진실 규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 해 줄게 그거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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