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 도입을 위한 구법(求法)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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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린 독일 풍경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무릇 모든 제도는 그 제도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념이 있고, 그 이념은 사회의 발전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년후견제의 기본 이념인 자기결정권이 사회복지나 인권 면에서 우리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 받는 독일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활자로 된 법률조문을 떠나서 이해하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 연수단의 일정을 기획하시고 방문기관을 섭외하신 백석대학교 최윤영 교수님께서 방문기관 목록에 성년후견청, 성년후견법원, 성년후견사단 이외에 장애인부모회와 장애인생활시설 자립지원센터까지 배려해 주셨고, 어렵지만 가능하다면 시설이용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여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다.
독일은 참 멀었다. 인천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비행시간 10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브레멘까지 비행시간 1시간, 8시간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출발할 때 12시였는데 목적지인 브레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현지시간으로 저녁 8시가 넘었다.
호텔은 중앙역 맞은편에 있었는데 도로 위로 전철의 선로가 있고 눈이 와서 도로사정이 나빠서 그런 탓인지 버스 등 몇 대의 차량만 간간히 지나다녀 도시가 한가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았고 신호등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대충 알아서 건너다니는데 그다지 무질서 해 보이지 않았다. 획일적이고 구획되어 질서정연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한방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라고 한다. 차량은 보행자를 보행자는 차량을 서로 신뢰하는 탓인지 누구도 우리를 향해 크랙션을 울려대거나 욕을 하거나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 건너와서는 다시 우리가 건너온 출발점인 중앙역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평온해보였고 질서정연했다. ‘스스로 적법하게 행위하는 자는 다른 관여자의 적절한 행위를 신뢰하면 족하다’는 “신뢰의 원칙”이 이래서 나왔겠구나 싶었다.
물론 교통과 관계된 신뢰와는 다른 측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한정치산∙금치산이라는 행위무능력 제도를 폐기하고 성년후견제를 도입하려는 배경에는 그 누구라도 어느 범위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잘 결정할 것이라고 믿어주는 신뢰가 깔려있는 것이다. ‘신뢰’라는 단어는 연수기간 내내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수팀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인 것 같다.
▲ 브레멘 성년후견청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성년후견제 도입의 전제는 '신뢰'
첫 방문지는 성년후견청이었다. 브레멘주 성년후견청 책임자의 이야기 중 전문통역인을 통해 귀에 들어온 낯익은 첫 단어는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였다.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성년후견제가 1992년부터 시행됐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수차례 성년후견에 관한 공청회가 있었는데 장애성년후견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성년후견제도가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들은 기억이 동시에 떠올랐다. 보호는 또 다른 측면에서 침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아니 명백히 반대의 의사를 표명함에도 강제로 후견인을 두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건강에 위협요소가 있음에도 방치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에 대하여 브레멘 성년후견판사는 피후견인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판사의 판결에 의해 후견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실시하는 경우의 어려움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비록 성년후견재판에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의 소견서를 받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획일화하기도 어렵고 오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성년후견 결정의 어려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 성년후견제의 핵심 코드는 성년후견법원이었다. 성년후견청, 성년후견사단이 나름대로의 역할과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성년후견법원을 보조하는 역할이 주된 업무였다.
성년후견 절차의 개시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법률조문에는 성년후견을 받고자 하는 본인의 신청이 있거나 법원의 직권으로 개시된다고 되어있으나, ‘법원의 직권’이라는 것이 잘 운영되어 독일 성년후견제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는 특징을 만든 것 같다.
즉, 모든 사람들은 이웃에 후견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성년후견법원에 직권개시를 위한 아이디어(정보)를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 방식에도 제한이 없어서 전화접수도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재판부 판사들도 재판을 하다가 당사자의 정신능력에 의심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성년후견판사에게 전화를 하여 의견제시를 한다고 하는데, 남용된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신청권자를 어느 범위로 할 것인가를 두고 얼마나 많은 입장차이가 있었는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인권을 보호해 줄 신뢰할 만한 국가기관이 아직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법무부 안에서 제시된 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줄 것으로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되는 대목이다.
독일 성년후견제의 핵심코드는 '성년후견법원'
아이디어가 접수되면 법원은 후견절차의 필요성 즉 피후견인의 장애 등 상태와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없는지 여부와 후견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는지에 관하여 성년후견청에 조사 의뢰를 한다고 한다. 법원에서 성년후견결정을 할 때에는 필요적 절차로 피후견인과 판사의 일종의 청문절차가 있다고 하는데 법원으로 직접 올 수 있는 당사자는 법원에서 인터뷰를 하지만 전체 피후견사건의 50% 이상은 판사가 직접 피후견인이 거주하는 병원이나 시설 집 등으로 직접 찾아가서 만난다고 한다. 피후견인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면담을 하는 것이 더욱 정확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신질환자는 법원에 오는 것도 판사가 찾아가는 것도 싫어한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경찰, 후견사단, 심지어 열쇄수리공을 대동하기도 한다고 하니 실로 독일 성년후견판사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에 대하여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독일연수팀이 방문한 여러 기관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두 곳을 고르라고 한다면 앞서 언급한 성년후견법원과 Lebenshile 라는 장애인부모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 장애인부모회 레벤스힐페 앞에서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부모회가 나서서 성년후견제 도입운동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 등 교육과 인권 및 자립생활지원 운동을 시작한 것이 장애인 부모회였다고 한다.
우리가 레벤스힐페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는 1939년 나치의 안락사법 시행으로 많은 장애인들이 죽었던 아픈 역사로부터 시작된 레벤스힐페의 창설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주요한 내용을 미리 준비된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 그룹홈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우리가 방문한 그룹홈은 9명이 거주할 수 있는 건물이었는데, 거주민 각자가 독립된 공간을 사용하여 거주하며 1층에는 다 함께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는 거실 개념의 공간이 있었고 한 개의 층에 약 3명 정도 거주했다. 거주요건은 밤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적장애인 인데 부모의 참여가 있기는 하나 본인의 자기결정에 따라 거주할 수 있다고 한다. 비용은 모두 100% 국가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도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인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들 자기가 거주하는 방을 보여주겠다며 연수팀을 환영해 주었다. 비록 조금은 어눌해 보였지만 너무도 당당하게 자기의사를 표명하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혹시 당신을 도와 줄 후견인이 필요하지 않은지,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은지, 직업은 있는지 등등….
우리의 질문에 대해 “내가 알아서 잘 하고 필요하면 여기 선생님들이 계시니 후견인은 필요치 않다”, “내가 성인인데 왜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나”, “보호작업장(벤츠하청업)에서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다”고 했다. 답변을 들은 우리는 질문 그 자체가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자기의 일상생활을 어느 범위에서는 스스로 잘 결정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독일의 높은 사회복지 수준을 감지할 수 있었다.
▲ 슈투트가르트 성년후견청에서 연수단에게 독일 성년후견제에 대해 설명하는 피쉬바흐 박사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연수팀이 브레멘을 떠나 슈투트가르트 성년후견청을 방문했을 때 우리가 이미 독일 북부지방인 브레멘에서 성년후견에 관련되는 여러 기관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슈투트가르트지방의 성년후견청에서 성년후견사단 관계자와 성년후견법원 판사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주선해 주셨다.
동양에서 독일의 성년후견제를 알기 위해서 방문을 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는 브레멘에서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성년후견사단 책임자에게 운영상의 어려움에 대하여 질문을 했더니 후견을 받을 사람이 싫어하는데 강제로 후견을 실시한 사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신질환자의 집이 더러워 후견인이 개입하려는데 이것을 거부할 경우 때로 후견대상자와 싸우거나 하는 갈등이 있었노라며 최종적으로는 관청에 얘기하여 해결했다고 한다. 슈투트가르트 후견법원 판사는 젊은 분이었다.
판사의 입장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질문을 했더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서 법적으로 처리하여 결정하면 되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우리를 배려하여 슈투트가르트 성년후견청이 동일한 제도를 운영하는, 서로의 입장이 다른 세 기관의 담당자들을 한꺼번에 모이게 한 것이 오히려 솔직하고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어렵게 한 것 같아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장애인이 주로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차와 케이크 등을 팔고 있었는데 모두 그곳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홀에서 서빙하는 사람도 주방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지적장애인이었다. 이용하는 손님들이 꽤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은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밝고 당당해 오히려 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직원 중 몇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이들도 성년후견인 제도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알아서 잘 살아가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한다. 역시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산다고 한다.
▲ 지적장애인이 운영하는 본 카페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자기결정권 및 신뢰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사회 만들기
이 대목에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살아있는 한 무능력한 사람은 없다’라고 능력과 무능력이 모두 상대적인 것이고 소위 말하는 잔존능력이란 것이 있어서 그 잔존능력을 잘 활용하여 살아가면 그 뿐이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범위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견이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사실 독일까지 간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아무리 후원이 있다고 해도 각자 직업이 있고 하는 일이 있는 사람들이 10박 11일의 일정을 할애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할 일이기에 우리 연수팀은 빡빡한 연수일정에 새벽 2∼3시까지 강행된 평가회도 무사히 마치고 이제는 그 힘들었던 일정들을 추억할 수 있게 됐다.
돌아오는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너무 추운 날씨였다. 눈까지 많이 와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되어 노심초사하며 공항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독일에서의 일정을 조용히 정리하며 지상의 눈 덮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그 옛날에도 당시로서는 선진문화였던 서역의 불법을 구하기 위해 고승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녔겠구나 싶었다.
오늘날 우리가 독일에서 시행되는 성년후견제를 그 바탕에서부터 알아보고자 강행한 일정들이 예전의 고승들의 구법 여행과 무엇이 다르랴? 아무튼 우리사회가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속히 성년후견제의 밑바탕이 되는 자기결정권 및 신뢰 등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관용의 사회로 성숙해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 기독교 후견사단에서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 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성년후견제추진연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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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님의 댓글
미싱 작성일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성년후견제가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존중하며 잘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자리잡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