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여의도에서 날리는 홀씨] 다양한 소수자들도 정치할 수 있는 세상만들기
본문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세상을 온통 백색으로 덮어버리던 폭설과 하늘을 찌르던 동장군의 권력도 따사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앞에서는 끝을 보인다. 언제나 봄은 바람과 함께 겨울을 밀어내고 등장한다.
올해는 또 하나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벌써 지방선거라는 바람이 시작되었고, 각 지역에서 광역시도 단체장 후보들의 옷깃바람은 밤낮없이 분주하다.
초보정치인으로 진보정당에 입문하여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09년 당내 부대표선거까지 선거바람에 몸을 실은 것도 햇수로는 벌써 4년이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유세차 앞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여 발언하고, 음악에 손가락 숫자를 세우고 인사하고,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낯선 사람들에게 웃으며 명함을 내미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좁고 사람 많은 시장길, 출퇴근길 시간을 다투며 뛰듯이 걷는 사람들, 여러 정당별 후보유세차에 신경질적인 반응과 피로감을 보이는 사람들, 아침 산책로 공원의 유권자 만나기, 주말이면 산행하는 등산로 입구, 그리고 종교시설 앞, 저녁 무렵 술집 등 곳곳의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는 유세현장들은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불편하고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나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지역후보 유세지원과 정당지지 유세를 다녀야 했다.
유세 중에 먼저 닥친 문제는 유권자와 시선 맞추기였다. 걷고 있거나 서있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각자 자기 키 정도만 보고 있지 아래를 보지 않는다. 앉아 있어 낮은 시선인 나는 유권자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목소리를 더 크게, 그리고 경쾌하게 시선을 끌기 위한 노력을 했었다.
또한 불특정다수에게 명함을 전달하고 악수를 하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갈 경우, 그런 곳일수록 전동휠체어 접근이 되는 공간 확보가 쉽지 않아 때로는 도움도 받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뻔히 다른 비장애인후보들이 좁은 길 사이사이 그리고 계단위로 다니며 유세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특히 복잡한 시장 길의 좁은 통로와 가계 안까지의 접근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술집순례유세도 거의 접근이 어려워 포기해야만 했다. 다른 후보들은 이런 문제없이 잘하고 있는데 혼자 유세현장을 떠나야 할 때는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비례대표후보로의 첫 지역유세는 강릉의 시장 안이었다. 나에게는 첫 선거 유세였다. 과연 접근이 될까 걱정하면서 들어갔는데 시장통로도 넓었고, 상인들이 대부분 노인들이시라 전동휠체어 장애여성이 유세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격려도 해주었다. 이후 시장유세가 이렇게 녹녹하지 않았지만 나름 상인들과 얘기도 나누고, 소비자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기도 했다.
결국 기회가 중요한 경험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아직 어려운 것은 등산로 유세이다. 전동휠체어 접근 가능한 등산로 입구에서 유권자들에게 인사하고 악수하지만 산행을 할 수 없으니 많은 유권자들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날 때는 아쉬운 마음이다.
선거 유세현장은 나에게 또 하나의 투쟁현장이다. 고쳐져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올해도 여전히 나의 마음은 하늘만 보는 풍화기처럼 유세현장을 찾아 ‘자체발풍’을 노력할 것이다.
나는 어느 지역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마이크 잡고 자동차소리와 경쟁하며 유권자에게 “안녕하십니까, 0000당 기호0번 000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언제쯤 가능할까?
언어장애 있는 후보는 어떻게 하지? 시각장애인 후보는 어떻게 유세를 하지? 성소수자후보가 자기정체성을 나타내고 유세해도 괜찮을까? 여성후보들은 이렇게 빠른 속도에 체력이 되는 걸까? 자녀가 있는 여성후보들은 과연 남성들처럼 유세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장애인후보에게나 여성후보에게 차별적인 언행을 하는 유권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유권자는 왕? 후보는 약자?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유권자가 있는 곳은 가야 한다. 한 명의 유권자에게도 후보인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 유권자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인지, 꼭 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후보의 조건은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유권자의 조건에 후보는 맞추어가야 하기에 밤이고 새벽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권자를 만나야 한다. 이러한 선거방식은 어떤 지역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고, 예전이나 현재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후보가 최대한 부지런해야 한다. 유권자들과 끊임없는 만남으로 자신을 익숙하게 하는 것, 그것은 이름이든 얼굴이든 빠른 속도를 요구하고,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고 적응력, 지구력, 순발력 그리고 리더십도 필요하다. 철저한 비장애중심, 남성중심의 자본주의적인 방식이다.
지금 같은 선거방식은 다양한 장애유형과 여성 그리고 여러 계층들이 후보로 활동하기 어렵다. 많은 유권자를 만나러 다니는 방식은 강한 체력과 속도를 요구한다. 높은 유세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호소하는 방식, 인사하고 악수하고, 목소리에 힘을 주고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오랜 세월 선거 때마다 별다른 변화 없이 답습되어오고 있다.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출마하고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모색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또 다른 계층에게도 지금의 선거방식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선거란 정치행위가 별로 불편하지 않는 비장애남성중심의 영역이기 때문일까?
현재 여성과 장애인의 정치입문이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선거유세문화는 아직 변화가 미약하다. 2008년만 해도 선거법에 후보의 명함을 후보 본인과 배우자까지만 유권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2008년 총선비례후보였던 나는 내손으로만 명함을 전달해야 하기에 계단이나 거리의 접근이 안 되면 명함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장애인후보에게 15일의 본 유세기간 동안 활동보조 1인이 지원되고, 활동보조인이 명함을 유권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최현숙 씨가 레즈비언으로서 ‘용감’하게 출마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이었다. 여성후보도 장애인후보도 유권자들을 만나다보면 가끔씩은 후보에게 반말에 차별적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사적인 활동 같으면 화를 냈겠지만 참아내야 한다.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이용하는 유권자들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어 자세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유권자들도 후보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계층이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한다면 소수자후보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차이들이 존중되면서 재미있고, 유쾌한 유세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유권자들도 참여 가능한 선거 문화, 각자 좀 더 독창성을 발휘하는 선거였음 한다. 당장 다가올 6월 지방선거부터 선거문화에 변화의 신바람이 휘리릭~.
정치, 어떻게 만나? 자~알
위와 같이 선거유세문화가 바뀐다 해도 과연 다양한 계층에서의 정치 입문이 넓어질까? 정치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대부분의 현 정치인들은 지역에서 선거를 통하여 또는 비례로 각 광역시도단체장이나 의원이 되기도 하지만, 정치를 알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면서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기 삶의 방향을 가지는 때인 것 같다.
정치도 운동도 제도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특히 대학 동아리에서 운동, 정치, 사회문제의 의식화가 이루어진다. 반면 제도교육, 특히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운동과 정치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운동은, 정치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되기 십상이고,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운동을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은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대의 흐름에 대한 통찰과 대안적인 미래를 제시하고자 할 때 그 방법까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중과 함께 가기 위해 쉽게 설명하고 민중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후보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중증장애인과 같이 제도교육 밖에 후보들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후보들이 정치인으로 자리 잡기 위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정치공간은 장애인후보 특히 중증장애인 후보에게는 더 더욱 어렵다. 우리 사회는 학연 지연으로 맺어진 관계의 사회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고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비장애정치인과 비교해 볼 때, 학연도 지연도 재정도 없는 중증장애인은 아예 비교대상이 안 된다. 그래서 비례로 정당에 입문 하지만 여전히 정치훈련이 부족하고, 하기에 후보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회적인 지원이 더 필요한 것이다.
바다에 띄워진 요트도 바람의 방향을 잘 잡으면 바다를 가로질러 달릴 수 있다. 요트를 달리게 하는 바람처럼 다양한 소수자들이 정치를 선택할 수 있기 위해 바람에도 여러 풍향의 바람이 불어주길…….
▲ ⓒ전진호 기자 나도 실은 유권자였어요
1997년 집을 나와 독립하여 첫 번 맞는 선거였다. 이른 아침 지인의 도움으로 수동휠체어를 타고 투표소에 도착해보니 계단이 10개나 있는 곳이었다. 공무원들이 나와서 도와주겠다고 하고 주민들의 도움도 받아 얼떨결에 투표는 마쳤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해서 동네에서 인사만 하고 지내던 장애인들에게 전화해서 당장 투표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MBC방송국에 취재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하겠단다. 동네 몇 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다시 투표소에 갔고, 계단에서 여러 사람들이 휠체어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방송에 담겼다.
그 뒤로 투표소는 접근이 편리한 동사무소로 바뀌었지만 그때 사건으로 지역공무원들에게 나는 만만하지 않는 장애인으로 찍혔다. 이사 온지도 몇 개월도 안 된 장애여성이 첫 인상을 그렇게 남겼으니…….
나는 제도교육도 못 받고, 25년 동안 1년에 2~3번 외출할 수 있었던 중증장애여성이었다.
그랬던 내가 장애여성운동을 시작으로 교통약자를위한이동보장법률제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장애인교육법제정 운동을 하였고 그 성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실은 장애여성운동을 하기 전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동권이 보장되어있지 않아서 외출이 연중행사였던 나로서는 투표까지 한다고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없었다. 본인이 의지가 있다고 하여도 가족이, 이웃이 한 표 행사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장애인의 권리는 행사되지 않는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는 장애인과 노인들의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늘 고민되고 문제가 된 것이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면담을 하며 투표일에 장애인이 요청하면 이동차량과 활동보조인을 파견하여 장애인유권자가 어떤 경우에도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물론 투표소의 접근은 기본적인 전제였다.
무엇보다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장애유형에 따른 투표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에 따른 선거지원에 대한 홍보 안내가 선행되고, 지역에서 독려해주어야 한다. 또한 장애아동을 둔 부모도 아동을 일시 보호해주는 지원을 통해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게 해야 한다.
장애인과 그 부모와 형제까지 유권자는 많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 권리를 선거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행사할 기회는 보장되어지지 않는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시설원장들은 출마후보들에게 대우를 받지만 정작 그 시설에 있는 장애인, 노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제공되고 있을까? 오히려 시설에서는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시설인원 수만큼 표를 행사하는 원장들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고, 그 권력은 시설을 더 감옥처럼 만들고 원장은 시설의 성주로 군림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설의 원장이 균형을 가지고 장애인의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한 표의 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자기 삶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시설에서 장애인의 유권자로서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또한 중요하다.
봄바람이 분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봄바람은 봄을 가져오는데 선거 바람은 무엇을 가져올까? 바람개비처럼 바람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 나가야겠다. 나의 전동휠체어 네 바퀴를 열심히 돌리며 이번 선거에서 진실로 시민이 원하는, 국민의 마음을 실어 올리는 강한 태풍 같은 바람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작성자박김영희 (진보신당 부대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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