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했는데...빚 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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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조그만 건물 청소를 하는 신 모(69세)씨는 한 달 소득이 84만원이다. 그러나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비와 공과금 등을 지출하고 기타 생활비를 조금 내고 나면 남는 것은 35만원 정도가 적자다. 신 씨는 모자라는 돈은 친척에게 빌리고 카드론 등으로 살고 있다.
박 모(62세)씨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 짜리 방에 살다가 주인이 전세로 돌리겠다고 하자 보증금 500만원에 월 15만원 짜리 방으로 옮겼다. 두 집 모두 쪽방이다. 화장실이 없어 집 주변 지하철 역 화장실을 이용한다. 지하철 역사를 닫으면 비닐봉투에 대소변을 해결해서 버린다. 박 씨의 한 달 소득은 145만원 정도다. 박 씨는 지하철 청소용역을 통해 115만원 정도를 받고 30만원 정도는 다른 일을 해서 번다. 박 씨는 몸이 아파도 더 많은 돈을 받기위해 야간에 일을 한다. 그러나 박 씨의 소득도 지출보다 적었다. 박 씨가 한 달 쓰는 병원비는 45만원 정도다.
박 씨는 2007년 전기 청소기구로 물청소를 하다 감전이 되어 오른 팔이 오그라들어 거의 절단 할 상태였다. 사고 후 산재 판정을 받기도 힘들었다. 전기로 인한 사고라 증명이 어려웠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어렵게 산재판정을 받았지만 1차 수술을 받으면서 800만원의 빚을 졌다. 어려운 수술이라 산재처리가 안 되는 항목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후 또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팔은 오그라들고 있다. 병원에서는 3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지난 2월 28일 산재가 종료됐다. 박 씨는 "우리는 죽을 만큼 일을 하는데도 월급은 그것밖에 안준다. 나이 들어 야간 일을 하다보니 육신이 고장 나 시간만 나면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지만 아프다고 누가 10원짜리 하나 안 준다"면서 "임금을 조정하는 분들은 뭘 가지고 하는지, 절실하게 가난해 봐야 가난한 사람들의 속을 알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고령 저임금 노동자 생계비 더 많아 ‘최저임금생계비기준의 확대’ 절실
민주노총은 11일 신 씨나 박 씨처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가계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저임금노동자 14명이 작년 12월부터 1월까지 두달 간 직접 작성한 가계부를 분석했다. 가계부 분석에 참가한 이들은 서울 3, 대구 3, 인천 2, 경남 1, 울산 1, 대전 1, 충북 1, 충남 1, 광주 1명 등으로 민주노총 최저임금대책회의에 결합하는 공공운수연맹, 여성연맹, 일반노협이 인구비례 지역할당으로 표본을 선정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일을 해도 매달 34만원 가량의 만성적자를 면치 못했다. 가계부 조사결과 서울, 청주, 광주의 시장에서 두부 한 모 값이 모두 1500원으로 동일했다. 감기약도 3000원으로 전국이 같았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지역별·산업별로 차별적용하고 고령, 수습, 이주노동자에게 감액적용을 추진하고 있지만 재벌그룹의 대형 할인매장이 전국을 과점해 버린 한국의 시장물가는 어떤 지역별 차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역별 차이를 앞세운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사실상 최저임금 삭감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사용중인 ‘29세 미만의 미혼단신 노동자’의 생계비기준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고령 저임금노동자는 축의금과 부의금 등 연령적 특성에 따른 사회적 지출이 다른 계층에 비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80대 노모에게도 용돈을 주고 손자녀에게 지출하는 돈도 있어 지출은 더 많았다. 또 법적으로는 ‘단신’가구가 아니지만, 병들어 노동력을 상실한 남편과 청년실업 자녀를 둔 2∼3인 가구의 가계수지는 더욱 열악했다. 이 같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생계비기준의 확대’가 더욱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이번에 가계부를 작성한 노동자 모두 전형적인 워킹푸어(근로빈곤층)"라며 "고용을 늘린답시고 싸구려 일자리를 대량창출한 지난 13년의 고용정책이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의 주범"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자료를 바탕으로 2011년 적용될 최저임금을 두고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25.4%를 인상(시급 4110원→5152원)하자는 요구는 결코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정호 국장은 "재계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핑계 대며 지난해 최저임금 삭감안을 들고나와, 올 최저임금을 물가상승률보다도 못한 2.7% 인상하는 데 그쳤다"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면 최저임금을 줄이는 것보다 재벌 원청회사의 ‘불법 하도급 관행’을 없애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올해 최저임금 투쟁은 국민임금 투쟁으로 80만 조합원의 벽을 넘어 힘들고 어렵게 노동하는 민주노총 밖에 있는 분들과 함께하겠다"면서 "이번 구체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고통받는 분들의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경제위기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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