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당한 장애인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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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호 기자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처리!
2010년 새해 첫 뉴스는 한나라당의 예산날치기 통과였다. 거대여당이 몰래 예결위장소를 변경해 불과 10여분 만에 292조8천억 원의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다. 반면 2012년까지 22조원이 드는 4대강 삽질사업 예산은 결국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수자원공사 부담 분 3조2천억 원을 포함하여 총 8조5천억 원으로 통과되었다.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노동관계법 개악도 간단하게 날치기 되었고, 교육예산 삭감은 공교육을 포기하는 수준이며, 세금감면의 혜택은 부자들과 대기업이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의 지역구인 경북 포항시 울릉군의 예산은 정부안보다도 110억 원가량 늘어나는 사이, 소위 ‘조두순사건’ 대책이라 불리는 아동성범죄 대책예산은 당초 한나라당이 발표한 488억 원에서 261억 원으로 반토막 났다.
한나라당 날치기 예산통과의 최대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층이다.
2010년 복지예산 총액은 81조원으로 2009년 추경대비 6천만 원 증가에 그쳤다. 정부는 사상 최대의 복지예산규모라 주장하지만, 우리나라 복지지출은 OECD 평균의 39%에 불과한 절대적 빈곤수준이다.
2010년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일반회계 예산은 국회 상임위에서 어렵게 증액시킨 예산을 한나라당에서 불과 10분 만에 무려 1조원이나 삭감시켜 약19조 1천2백억 원으로 정해졌다. 2009년 추경 대비로는 0.8%가 삭감된 것이고, 2009년 본예산 대비로는 6.2% 증가한 것이지만,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복지부 일반회계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 21.7%에 비하면 역대 최저 증가율에 불과하다.
2010년 예고된 장애인복지의 재앙
장애인관련 예산은 그야말로 재앙수준이다.
이명박대통령이 근로능력이 없는 장애인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피겠노라고 공언했던 장애인연금제도는 장애수당을 이름만 바꾼 사기극으로 판명 났고, 활동보조서비스는 예산부족으로 장애인의 서비스신청을 금지시키고 있으며, 저상버스도입은 법정기준을 정부가 무시하고, 탈시설초기정착금과 장애여성출산장려금은 전액 삭감되어 버렸다.
표에서 보듯 기초장애연금제도가 도입된다고 하지만, 전체 장애인중 14%에만 해당되는 보편성도 없는 제도로서, 대상으로 보나 수급액으로 보나 ‘기초장애연금’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중증장애인의 월평균 추가비용 20만8천원(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급액을 소득보장적 성격의 기초장애연금 제도의 도입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사기이다.
중증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월 최대 15만1천원을 수급 받게 되어, 현행 장애수당에서 고작 2만1천원이 증액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기초장애연금제도가 시행되면 중증장애수당이 형식적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추가지원하는 장애수당이 중단되게 되어 당장에 장애인들의 소득이 감소될 위협에 처해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2007년 첫 시행 이후 빠른 속도로 이용자와 이용시간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2만5천명을 대상으로 계획했던 2009년의 경우, 10월말에 이미 2만7천명을 초과하여 예산부족으로 정부가 장애인들에게 서비스 신규신청을 금지시키는 인권침해적인 조치를 단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3만5천명을 대상으로 하는 예산안으로 증액이 되었으나 한나라당이 다시 3만 명을 대상으로 예산을 삭감시켜 버렸다. 2009년 말부터 신규신청이 금지되어 현재 대기하고 있는 신청자들만 이미 3만 명에 달하고 있어, 2010년에 새롭게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필요한 장애인에게 마땅히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할 사회서비스 예산마저 삭감되면서 장애인의 삶은 더욱 위태로운 지경에 놓이게 되었고, 당장에 활동보조서비스 신청이 금지되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꿈꾸던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원단가가 시간당 7천500원에서 7천300원으로 삭감됨에 따라 그 차액을 메우기 위해 장애인 본인부담금을 인상시키고, 서비스시간을 줄이고, 서비스신청 절차를 개악하는 등 오히려 복지부가 장애인으로 하여금 복지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탈시설 초기정착금과 장애여성 출산장려금 예산은 예산규모는 크지 않으나,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장애여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높은 사업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예산 날치기 과정에서 모두 날아갔다. 말로는 자립생활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실제로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의 꿈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예산은 직접적 복지예산은 아니지만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을 상징하는 중대한 지표이다. 수년간의 처절한 장애인이동권 투쟁의 결과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고, 법률에 의거하여 정부가 5개년 계획과 함께 2011년까지 31.5%, 2013년까지 전국시내버스의 50%(약1만4천500대)를 저상버스로 도입할 것을 명시하였다.
2009년 말 현재 전국적으로 저상버스는 고작 2천370대에 불과해 정부의 계획과 법정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약1천700억 원의 예산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계획 이행에 대한 중앙정부의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각 지자체가 고작 726억 원의 예산편성을 요구하였고, 그것을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반토막내어 고작 375억 원으로 결정된 것이다.
저상버스와 같이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매칭펀드 사업의 경우 이러한 중앙정부의 예산삭감은 지자체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나라당의 예산 날치기는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자체에서 세워놓은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에도 심각한 차질을 주고 있다.
장애인에게 예산은 생존권!
OECD 국가 평균의 39%에 불과한 한국의 복지예산, 그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장애인복지예산의 대폭적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수없이 요구되었던 이야기이다.
누구나 자립생활패러다임을 이야기한다. 장애인복지가 보호시설 수용 중심에서 지역사회 자립생활지원 중심으로 전환되고, 연금과 활동보조처럼 장애인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제공되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사회적 추가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애연금예산과 자연증가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활동보조예산, 법정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상버스예산, 개념도입조차 거부한 탈시설초기정착금과 장애여성출산장려금 등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처리는 더 이상의 장애인복지는 없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다.
ⓒ이준호 사진객원기자 |
한나라당이 날치기 한 것은 수천억 원의 예산 뿐 아니라, 장애인의 자립생활의 꿈과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에 대한 책임과 같은 인간적 가치들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19개 주요 장애인단체들은 <2010년장애인예산확보공동행동>을 결성하여 9월부터 ‘4대강예산 폐기, 장애인복지예산 확충’을 내걸고 집회, 인권위점거농성, 국회 앞 천막농성 등 장애인계의 요구를 알리는 투쟁들을 전개하였다. 국회 상임위에서 약간의 증액을 이루는 과정도 있었으나, 결국은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처리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막을 수 있었느냐는 결과론적 평가와는 별개로, 장애인들의 절실한 요구들이 얼마나 표현이 되었는지는 반성적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실제 2009년 장애계 최대 이슈였던 장애인연금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의 기만적인 연금안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조차, 한 두 번의 집회 이외에는 이렇다 할 투쟁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장애인 스스로 예산의 문제를 자신의 생존권 문제로 인식하고 자신의 현실과 권리를 표현하는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장애인 운동은 항상 동정과 시혜를 거부한 당당한 권리선언 투쟁으로 발전해왔고, 지금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애인이동권 투쟁, 장애인교육권 투쟁, 활동보조제도화 투쟁, 탈시설 투쟁에서 보여주었던 권리의식과 치열한 현실표현,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투쟁에서 보여주었던 장애인계의 단결투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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