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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보험차별, 이제는 끝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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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장애인의 민간보험(아래 ‘보험’) 가입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경험적 사실이었습니다. 때문에 장애인차별금지법1) 제 17조에서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어, 보험 및 금융거래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요. 그러나 보험사는 장애인의 보험가입 거부를 차별이 아니라고 합니다.‘

거부’인데 차별이 아니라니, 이상하죠?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지도, 인정받기도 어려웠던 데는 아래와 같은 속사정들이 있었습니다.

상법 씨의 변명

먼저 장애인의 보험가입에 대해 노골적으로 싫음을 이야기하는 상법 씨(상법 제 732조-15세 미만인자는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의 소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때는 2008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상법 씨는 꽤 불편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
다.

상법 씨 나이 만 46세, 그 오랜 시간 별 문제없이 살아왔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녀석이 세상 빛을 보자마자 상법 씨를 향해 보험가입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대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난감한 상법 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내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장애인은 당연히 보험가입 되지, 왜 안 돼? 다만 정신적 장애인(정신장애,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등)의 생명보험가입은 너무 위험하잖아.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보험에 가입될 수도 있고, 보험금을 노린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위협당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장애인뿐 아니라 15세 이하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생명보험만 안 된다고 하는거야. 혹 사고라도 나봐. 그 많은 돈, 누구 배를 채우겠어?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보험료도 줄 수 없다고 하는 것뿐이야. 그래야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테니까. 이게 차별이야? 다 위하는 마음인거야. 내 마음은 모르고 쩝…….”

상법 씨는 자기의사결정 및 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정신적 장애인과 15세 미만 아동의 생명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보험가입은 누구나,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상법 씨의 주장과는 아주 다르지요. 15세 미만 아동들의 보험가입은 얼마든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장애아동의 경우만 보험가입이 제한되어 있지요.

보험사를 통해 인지검사를 따로 받아 심사기준에 통과해야만 보험가입이 가능하고, 대부분은 이런 절차도 없이 거부당합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장애아동은 더 심각합니다. 정신장애인이라면 그이가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안 되지요.

저는 지적장애 자녀를 둔 엄마입니다. 얼마 전 저는 아이의 보험가입과 관련하여 금융상담사와 만나 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자녀가 질병에 걸리거나 재해를 입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일정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였기 때문에 A생명의 상해보험가입을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A생명은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계약요청 자료를 반송하며 가입신청 승인을 거부하였습니다. 또 다른 K생명에 상품가입 신청을 의뢰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K생명의 심사자는 승인요청에 대해 ‘가입불가 질환’이라는 짤막하고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거절을 통보해 왔습니다. - 지적장애아동 어머니 ○○씨

전화를 받아보니 S보험사더라고요. 상담원이 친절하게 고객님, 고객님하면서 이런저런 보험 상품들을 소개시켜주더군요. 혹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필요할 것 같아서 건강관련 보험에 귀가 솔깃했지요. 그런데 정신장애인이라고 하니까 “정신장애인은 보험가입이 안 된다.”고만 이야기 하고, 전화를 끊는 거예요. 그런 전화 많이 걸려오잖아요. 정신장애인이라고 하면 얄짤없습니다. 제대로 묻지도 않아요. 무조건 안 된대요. - 정신장애인 △△ 씨

아들 녀석이 학교를 지방으로 다녔었어요. 그래서 종합보험을 하나 들어줬지. 학교에 다닌 지 1년 쯤 됐을까, 정신분열 진단을 받은 거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바로 입원하라고 해서 입원치료랑 약물치료를 같이했는데 병원비가 꽤 나오더라고요. 그러다가 보험이 생각나서 보험사에 찾아갔더니 정신병원은 보험료 지불이 안된다고……. 그리고 해약통보를 받았어요. - 정신장애인 아버지 □□ 씨

46년 동안 반복된 체념의 문화

상법 제732조의 삭제를 위한 개정의 노력은 지속되어 왔으나, 별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법무부장관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로 상법 제732조 삭제개정 권고를 받았지만, 법무부의 개정 움직임이 신통치 않은데다가, 보험사들의 경우 개별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차별상황은 늘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지요.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이 시점에 무엇보다도 차별을 뒤집을 수 있는 힘, 한데 모인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절실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 집단진정을 냈습니다. 보험은 언제, 어디서나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내심 대박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전화 와 메일, 공문을 마구 뿌려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집단진정을 진행하니 대박은커녕 문의조차 변변치 않았습니다. 결국 진정서 모집기간을 몇 차례 연장하며 사람들을 만나러 다녀야 했지요. ‘아직 홍보가 덜 되서 그렇지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님들을 만나면 집단진정 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말이지요.

역시나 가는 데마다 보험가입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억울함이 꼬리에 꼬리를 잇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차별은 있으나 실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별의 이야기들을 문자로 옮겨 적으려면 기본적으로 육하원칙에 준해 문장이 완성되어야 하는데, 어떠한 이야기도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시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알게 된 이유인 즉, 첫 번째는 차별은 있는데 가해자는 부재하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현재적 삶의 조건이 너무 어렵다보니 일정한 경제적 부담능력을 전제로 하는 보험가입은 시도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보험거부는 합의된 차별이 아닌 관행적인 문화였습니다. 장애의 정도와 유형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은 본인이나, 자식 앞으로 된 보험가입서조차 손에 쥐어본 적이 별로 없더군요. 콜센터 상담원이나, 보험설계사들은 장애가 있다고 하면 으레 ‘가입 안 된다’고 거절하기 일쑤였으니,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에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거절은 당했지만 보통 보험설계사는 아는 사람이고, 계약을 시도한 적 없으니 보험을 거부한 보험사도 없어 원망할 수 있는 대상조차 없습니다. 더욱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경우 타인의 보험 거절의 이야기를 듣고, ‘당연히 나도 혹은 우리 아이도 보험가입이 안되겠지’라고 판단하여 타인의 경험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체화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보험가입의 좌절은 46년 동안 반복되어 체념의 문화로 안착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보험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1차적 상담 과정에서 걸러진 장애인들은 계약단계로 진입하지 못하니, 심의 - 승인 과정에서 질환에 관한 내부기준은 있으나 장애에 관한 내부기준 혹은 상품은 전혀 고려되지도 개발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장애인의 보험가입에 대한 체념의 역사를 구성해 왔습니다.

또한 현재적 삶의 조건 자체가 보험가입의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육은 직업으로 직업은 소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내에서, 장애인은 보험가입의 기회를 포함한 기본적 삶의 구성이 비장애인과 큰 격차를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 10명 중 5명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평균소득은 비장애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게다가 한국사회는 국가로부터의 사회보장조차 충분치 않습니다. 지금 나(장애인 당사자)에게도 ‘보험’이란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고자 하는 안정적 삶의 갈망, 흔들리지 않을 삶의 지속을 향한 진입로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열악한 삶의 처지에서 미래까지를 준비한다는 것은 그저 꿈과 같은 이야기라 말합니다.

뇌병변 장애와 암은 무슨 상관?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차별은 바람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더군요.
손끝 사이에 스치지만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 모양을 종이에 꾹꾹 눌러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진정서의 칸을 채워 넣는 것보다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니가 바로 차별이니라!’하고 외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지난 12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 7층에서는 보험차별 사례가 있는 정신적 장애인의 부모님들,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가 모여 소문내 줄 사람들(기자)을 불러놓고 증언대회 및 집단진정을 통해 투박하나 진솔한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G화재의 암보험에 가입하려고 보험사에 전화를 했는데, 상담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상품을 결정하면서 내가 뇌병변장애 1급이라고 말했더니, 장애 1급은 암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거예요. 뇌병변장애와 암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더니 내부지침 상 어쩔 수가 없다고. H해상은 장애 때문에 장애원인, 다리길이, 보조기구착용 등을 확인한 다음에 심사요청을 바란다며 또 거절하더군요. 뇌병변장애랑 암보험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 문○○ 씨

우리는 애가 셋인데요. 셋 다 정신장애가 있어요. 하나는 우울증 약 먹고, 둘은 정신분열인데. 저 같은 사람은 기댈 데가 없어요. 보험사는 약(정신과) 먹는다고 보험가입 다 안 된다고 하고, 예전에 들어 둔 보험은 돈도 못 받았어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 수가 없어요. - 정신장애인 어머니 박△△ 씨

애가 장애가 있는 걸 몰랐어요. 우리 애가 첫 돌 지나고 두 달도 안 되서 애 아빠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거든요. 지금도 누워서만 생활하고 있고요. 병원에서 살아야 하니까 애를 끼고 키울 수가 없어 친척집에서 키웠어요. 몇 번 경기를 크게 해서 애가 약은 먹었다고 하는데, 학교에 들어가서야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싹싹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인데 장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도 없고, 데리고 키웠으면 일찍 알았을 텐데 싶어서 가슴이 무너져요. 작년에 검진 받으러 갔을 때도 장애등급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급이 나오고, 보험도 장애인등록을 미리하지 않았더라면 거절당하지 않았을 텐데……. - 발달장애아동 어머니 서□□ 씨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은 사회로의 노출을 꺼려하는 게 사실입니다. 보험사가 근거도 기준도 없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색안경은 그러한 문제의 드러냄조차 어렵게 합니다.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김포에서 오신 어떤 아버님께서는 “내가 이곳에 와서 이 억울한 마음, 이 응어리가 차별 때문인 줄 처음 알았소.” 라며 어깨를 으쓱이시더군요. 처지를 공감하고, 함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하고 기쁜 일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이날, 보험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거부와 배제를 ‘차별’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았던 보험으로부터의 차별들이 꼴을 드러냅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시도, 좌절, 체념, 분노, … 속은 바싹 타지만 거대한 보험사를 상대로 한 홀로의 목소리는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았지요. 그러나 여러 목소리가 한데로 모아졌던 그 공간과 시간만큼은 달랐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손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고 차별금지법을 세웠듯, 이제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실어 보험차별을 엎어내기 위한 힘 있는 또 한 걸음을 준비합니다.

작성자송효정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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