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초점] 지하철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 설치, 어떻게 되고 있나
본문
수치심은 물론 범죄 위험 노출까지
몇 달 전 종각역에 내린 이모(지체장애인, 31세, 여)씨는 용변을 보려 화장실을 찾았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이 모 씨가 장애인화장실을 찾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순간 화장실 안에서 남성장애인이 나오는 것 아닌가. 옆으로 지나다니는 비장애인들은 분명 남자는 남자화장실로, 여자는 여자화장실로 다니고 있는데 말이다.
이 모 씨는 이 같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두 번도 아니고 종종 겪는 일인데도 매번 당혹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장애인은 남자 여자 구분 없는 외계인이라도 되는 줄 아냐. 우리도 여자들만의 월례행사를 치르는 어엿한 여자”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다.
이런 예는 보장구를 이용하는 여성장애인에게 있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수 년 전까지 장애인화장실 자체가 아예 설치돼있지 않아 큰 불편함을 겪었다면, 지금은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장애인화장실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이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은 여성장애인들이 느끼는 수치심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의 김형수 사무국장은 “장애인화장실은 관리가 철저히 되고 있지 않아 평소에도 비장애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청소년들이 모여 몰래 흡연을 하는 등의 탈선행위를 하기도 하고, 문이 고장 나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김형수 사무국장은 “이 때문에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은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전체의 절반 이상이 남녀공용, 예산 핑계는 통하지 않아
얼마 전 서울 지하철의 시청역 화장실이 행정안전부 등이 주최한 ‘제11회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눈에 띄는 심사결과는 장애인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되어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를 본 한 비장애인은 “화장실이 남녀 구분되어 있는 건 당연한데 왜 장애인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됐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 어딜 가든 화장실은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나뉘어 있다.
이렇게 비장애인화장실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은 현재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은 전체의 33%에 불과하고, 심지어 아직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8개나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 환승역에 남녀공용인 화장실이 많았다.
5~8호선은 1~4호선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지어진 탓에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남녀 구별된 장애인화장실은 2009년 10월말 현재 전체의 72%에 달한다.
이는 장애인계에서 몇 년 동안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어 최근 몇 년 간 이루어진 성과다. 남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의 설치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서울메트로의 관계자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상대적으로 역사가 협소해 남녀 구분 설치에는 구조적인 어려움과 많은 예산이 수반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에 대해 “예산은 핑계에 불과하다.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인식 부족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장애여성문화공동체 김미주 대표는 얼마 전 장애여성 안전감시단 활동을 마치고 “장애인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닌 어떤 ‘낯선 존재 대상’이기 때문에 화장실도 그냥 ‘장애인화장실’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예산 문제를 운운할 정도로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다면, 아예 비장애인화장실도 남녀 구분 없이 만들어야 했던 거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은 명백한 장애인차별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포천시 백운계곡 화장실과 영중꿈나무도서관 화장실의 장애인화장실이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라며 박모씨(52)가 제기한 진정에 대해 “공중화장실 내 장애인용 화장실을 남녀공용으로 설치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결정하고 포천시장에게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 명백한 장애인 차별
다행히도 현재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장애계의 목소리가 커지자, 점차적으로 남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을 증설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는 2004년도부터 역사 화장실 리모델링 시 공용 장애인 화장실 개선사업(성별 개별구획)을 병행 추진해 2009년 23개소를 증설한 것을 포함해 6년 동안 총 40개소를 증설했으며, 앞으로도 점차적으로 증설할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메트로 역시 2008년 12개소, 2009년 20개소를 증설하고 앞으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총 75개의 남녀 구분 장애인화장실을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지하철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시설의 관계자들이 이를 각인하고 있다면 남녀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하는 일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또한 남녀 장애인화장실을 따로 만들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해, 애써 예산을 들여 만든 장애인화장실이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몇 달 전 종각역에 내린 이모(지체장애인, 31세, 여)씨는 용변을 보려 화장실을 찾았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이 모 씨가 장애인화장실을 찾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순간 화장실 안에서 남성장애인이 나오는 것 아닌가. 옆으로 지나다니는 비장애인들은 분명 남자는 남자화장실로, 여자는 여자화장실로 다니고 있는데 말이다.
이 모 씨는 이 같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두 번도 아니고 종종 겪는 일인데도 매번 당혹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장애인은 남자 여자 구분 없는 외계인이라도 되는 줄 아냐. 우리도 여자들만의 월례행사를 치르는 어엿한 여자”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다.
▲ ⓒ김태현 기자 |
▲ ⓒ김태현 기자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의 김형수 사무국장은 “장애인화장실은 관리가 철저히 되고 있지 않아 평소에도 비장애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청소년들이 모여 몰래 흡연을 하는 등의 탈선행위를 하기도 하고, 문이 고장 나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김형수 사무국장은 “이 때문에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은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전체의 절반 이상이 남녀공용, 예산 핑계는 통하지 않아
얼마 전 서울 지하철의 시청역 화장실이 행정안전부 등이 주최한 ‘제11회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눈에 띄는 심사결과는 장애인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되어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를 본 한 비장애인은 “화장실이 남녀 구분되어 있는 건 당연한데 왜 장애인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됐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 어딜 가든 화장실은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나뉘어 있다.
이렇게 비장애인화장실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은 현재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은 전체의 33%에 불과하고, 심지어 아직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8개나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 환승역에 남녀공용인 화장실이 많았다.
5~8호선은 1~4호선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지어진 탓에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남녀 구별된 장애인화장실은 2009년 10월말 현재 전체의 72%에 달한다.
이는 장애인계에서 몇 년 동안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어 최근 몇 년 간 이루어진 성과다. 남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의 설치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서울메트로의 관계자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상대적으로 역사가 협소해 남녀 구분 설치에는 구조적인 어려움과 많은 예산이 수반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에 대해 “예산은 핑계에 불과하다.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인식 부족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장애여성문화공동체 김미주 대표는 얼마 전 장애여성 안전감시단 활동을 마치고 “장애인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닌 어떤 ‘낯선 존재 대상’이기 때문에 화장실도 그냥 ‘장애인화장실’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예산 문제를 운운할 정도로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다면, 아예 비장애인화장실도 남녀 구분 없이 만들어야 했던 거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은 명백한 장애인차별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포천시 백운계곡 화장실과 영중꿈나무도서관 화장실의 장애인화장실이 남녀공용으로 설치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라며 박모씨(52)가 제기한 진정에 대해 “공중화장실 내 장애인용 화장실을 남녀공용으로 설치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결정하고 포천시장에게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 명백한 장애인 차별
다행히도 현재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장애계의 목소리가 커지자, 점차적으로 남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을 증설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는 2004년도부터 역사 화장실 리모델링 시 공용 장애인 화장실 개선사업(성별 개별구획)을 병행 추진해 2009년 23개소를 증설한 것을 포함해 6년 동안 총 40개소를 증설했으며, 앞으로도 점차적으로 증설할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메트로 역시 2008년 12개소, 2009년 20개소를 증설하고 앞으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총 75개의 남녀 구분 장애인화장실을 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지하철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시설의 관계자들이 이를 각인하고 있다면 남녀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하는 일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또한 남녀 장애인화장실을 따로 만들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해, 애써 예산을 들여 만든 장애인화장실이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작성자김태현 기자 husisara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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