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지원사업의 체계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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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Homeless Memorial Day)'는 2001년에 시작해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는다. 해마다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에 열리며 추모제를 통해 극한의 빈곤상황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한 홈리스 생활자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홈리스 문제의 현실을 발언하고 정책을 요구하며, 권리실현을 위한 운동을 결의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 글은 올 추모제의 주요 요구안인 △홈리스지원 관련 법률 마련 △여성홈리스 지원대책 마련 △홈리스에 대한 명의도용범죄피해 해결 △홈리스에 대한 의료지원축소 철폐 △홈리스에 대한 안정적인 노동권 보장 △홈리스에 대한 안정적인 주거보장 등 총 6회에 걸쳐 실릴 예정이다 -<필자 주>
어느 나라에서나 도시빈민은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유연화 된 노동시장의 구조 속에서 생활기반을 닦아내기 어려운 환경과 도시화, 산업화를 경유하며 깨어진 가족공동체 속에서 이들은 홈리스(homeless)로 불리는 사람들이 되곤 한다.
우리나라 역시 외환위기 이후 많은 도시빈민이 실직노숙인이란 이름으로 거리에 등장했다. 빈곤(貧困), 무주거(無住居), 무의탁(無依託)의 공통분모를 갖는 ‘부랑인’을 단속과 수용위주로 파악했던 것과는 달리 ‘노숙인’에 대해서는 응급구호적 차원에서 급식, 귀향지원, 공공근로 연계, 응급쉼터제공 등을 시작했으며 쉼터입소 노숙인을 대상으로 심리재활프로그램을 수행했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과 더불어 자활사업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쉼터에서 배제되는 거리노숙인을 지원할 목적으로 상담보호센터(당시엔 드롭인센터 drop in center)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해결과제로 남아있는 노숙인 쉼터의 유형화, 전문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이렇게 홈리스를 지원한 지 올해로 11년이 된다. 그 기간 동안 때론 공급자의 의도에 의해, 혹은 홈리스의 필요(need)에 부응하고자 다양한 지원사업이 민과 관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리고 그 한 켠에 제도화와 관련된 논의가 전개되어왔다.
초기 노숙인지원사업은 법적인 근거 없이 시작된 응급구호사업으로 예산제약이라는 문제가 노정되어 있었다. 이에 2003년 7월 '사회복지사업법'내 부랑인 사업에 노숙인을 추가하였고, 2005년 '부랑인및노숙인시설 설치.운영규칙'을 마련, 쉼터 및 상담보호센터 등 노숙인시설치기준 및 종사자기준, 쉼터입퇴․소절차를 규정했다. 이로써 유사한 성격을 지닌 부랑인과 노숙인 사업은 일견 한배를 탄 듯 보였다. 그러나 곧 '지방분권특별법'에 의해 하나로 묶인 부랑인 및 노숙인 사업이 전자는 국고보조사업으로 후자는 지방이양사업으로 이원화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는 노숙인지원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방기를 불러왔고 지방정부의 행정편의에 의한 사업전개를 심화시켰다.
노숙인구의 60%가 집중된 서울시의 행태를 보자. 서울시는 규모의 경제논리를 복지사업에 끌어대어 지역사회와 가까운 소규모쉼터 통폐합을 단행했다. 그 결과 2005년 61개소에 달하던 쉼터가 2009년말 현재 39개 소로 축소되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노숙인의 수가 줄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쉼터생활은 더욱 조밀해졌으리라. 한편 지속적으로 일부 대형 거리노숙인이용시설에 예산과 사업을 집중․편성하여 노숙인 복지사업의 주목적인 “주거보장과 지역사회정착”을 위배했다.
뿐만 아니다. 공공역사 곳곳에 “노숙자율금지구역”이라는 푯말을 붙여 노숙인을 청소의 대상으로 보았고, 거리생활자를 부랑인과 노숙인으로 구분하여 거리 노숙인에 대한 책임을 중앙으로 떠넘기려 하기도 했다. 또한 노숙인에게 자활을 강제하는 이데올로기를 적용하여 간헐적이고 최저임금도 보장 안되는 일자리 정책을 속속 들이밀었다. 탈거리 노숙의 자원으로 활용되는 쪽방철거를 지속적으로 단행하여, 도시빈민의 접근이 용이했던 무보증월세의 거처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이는 가장 주거가 필요한 계층인 노숙인의 주거 보장은커녕 거리 노숙을 부추기는 일이 되었으며 인근지역의 월세상승을 추동하는 일이 되었다.
2006년 도입된 단신계층용 매임입대주택, 2007년 도입된 쪽방.비닐하우스 등 최저 주거기준 미달가구에 대한 주거 지원 사업은 홈리스 문제에 대한 주거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까지 주무부서가 분명치 않고 국토부와 복지부의 협력도 미흡하다. 따라서 입주대상에 사각지대가 발생하기도 하고, 공급계획 또한 허술하기 그지없다. 10여 년의 경과 기간 동안 지원사업이나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노숙생활 만큼이나 불안정한 정책들이 속속 수행된 셈이다.
홈리스의 발생이 산업자본주의의 필연적 모습이라면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 된 국가들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했을까? 영국의 경우 1960년대 도심내 슬럼재개발로 홈리스가 증가했다. 이 문제는 ‘캐시컴홈(Cathy Come Home)'이라는 BBC의 다큐드라마를 통해 회자되었고 홈리스 지원 민간단체인 쉘터(Shelter)와 크라이시스(Crisis)를 만들었다. 이후 10여 년 간의 사회적 고민을 통해 결국 1977년 홈리스의 안정적인 주거보장을 골자로 하는 '주택법'을 제정, 지방주택당국의무, 홈리스지원절차와 방식, 중앙정부의 책임에 대한 규정이 구축되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주택, 교육, 복지 등 정부의 공공정책이 크게 후퇴했고 이는 홈리스의 급증을 결과했다. 이는 홈리스정책을 더 이상 주정부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와 1987년 홈리스 지원법인 '매키니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 법을 통해 그간 연방정부에 산재했던 급식, 임시숙소 및 중간주택, 항구주택의 제공 등 주거보장, 교육프로그램, 의료서비스 등을 연방정부가 나서 총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버블붕괴이후 급증한 홈리스 문제에 대응하고자 2002년 '홈리스자립지원특별법'을 마련해 정기적인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그를 통한 마스터플랜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는 국가복지수준이 낮은 자유주의국가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법제도를 통해 주거보장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함과 아울러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책임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분명 시사받는 바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홈리스 지원정책은 초기 응급구호적 단계를 넘어서 홈리스문제의 본질파악을 위한 노력과 해결책을 위한 고민의 확장을 해 가고 있어 일견 진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스터플랜도 없고 중앙정부의 책임성 있는 정책수행도 없는 상태에서 “주거보장”과 “보호의 연속성”이 결여된 파편화된 사업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올해 유엔의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에서는 한국정부에 ‘홈리스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전략채택을 촉구하며 향후 정기보고서에 성, 연령, 지역별로 분류된 홈리스 규모에 관한 자료를 포함시킬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홈리스의 주거보장과 다차원적인 지원을 규정하는 법 제도 마련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물론 그 내용은 낙인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형식과 내용이 아니라 주거상실의 문제, 주거불안의 문제를 포괄하고 노숙을 예방하는 차원, 주거권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책임을 방기하는 중앙정부와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사업을 수행하는 지방정부에 대해 바른 행정집행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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