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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주거권 실태조사’가 말하는 것들

다양한 소수자들의 특성과 의견을 반영한 주거권을 요구해야

본문

[인권오름]

인권운동사랑방의 주거권 활동은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의 주거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가고 있다. 2009년에 장애여성 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에서 진행한 '장애여성 주거권 실태조사'는 소수자의 주거권을 고민할 때 짚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숨]센터는 이번 실태조사를 2009년 2월에 기획해 8월 ~ 10월에 걸쳐 전국 IL센터와 복지관을 중심으로 진행했으며, 뇌병변, 시각중복, 소아마비, 지체 장애가 있는 장애여성 205명이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하였다. 설문조사 내용은 크게 공간에 대한 질문, 함께 사는 사람과 집에서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질문, 집 주변 긴급사항에 대한 대처, 그리고 주거공간에 대한 만족도 및 욕구조사 등이다.

주거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자, 관계적 공간(관계유형, 친밀감의 정도, 갈등 발생 시 소통문제 등을 포함하는) 이며, 사회적 공간(이웃 및 지역사회 관계, 사회적 시선 등)이다. 이 세 가지 특성은 질문지의 조사항목을 구성할 때는 분리하여 물어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볼 때, 그리고 그것을 분석할 때는 서로 분리해서 말하기 어렵다. '장애여성 주거권 실태조사'는 주거공간의 물리적․관계적․사회적 특성의 연관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주거공간의 물리적 관계적 사회적 특성을 따져보면

설문조사에서 장애여성들은 화장실/욕실 그리고 부엌이 혼자 접근하기 힘든 곳이자 생활하기에 가장 불편한 장소로 답변하였다. 장애여성 중에는 이 공간에 혼자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가족이나 동거인, 활동보조인 등)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주거 공간이 물리적 공간 자체의 접근이 어렵고 충분히 편한 관계가 아니어서 이용 시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러할 때, 개인은 이용에 대한 심리적 어려움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또한 사생활 보장은 물리적 공간으로써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지만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개인이 얼마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는지도 관련되어 있다.

여성에게 집은 물리적인 공간 자체에 접근할 때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으로부터도 안전해야 한다. 공간에서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오랫동안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또한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각자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각자의 물리적 공간이 없을 때, 관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개인이 느끼는 안전의 정도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위치에서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설문조사 답변에서 이웃 사람들 때문에 불편한 이유로 장애여성들은 쳐다보는 시선, 과도한 관심, 무시하는 눈빛과 말투 등을 주로 말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이웃과의 관계 형성-믿을 수 있는 이웃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는-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관계의 어려움은 복도, 주차장 등 물리적 공간의 사용 시 장애여성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전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특히 도시의 경우, 이웃과 관계 맺기 또는 지역사회에서 네트워크 만들기는 개발과 잦은 이사, 주거형태의 아파트화, 노동시간, 그리고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인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개인들도 공동체성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주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삶의 방식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문화로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장애여성에게 이웃과의 관계 맺기 및 지역사회에서 네트워크 만들기는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차별적 시선과 태도로 인해 더 어렵기만 하다. 결국 주거문제는 누구와(혼자이든 함께이든)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어떤 이웃과 함께 살고 싶은지, 어떠한 지원이 제공되는 지역에서 살고 싶은지 등 공간의 사회적 차원도 포함한다.

개인이 주거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주거공간에서 느끼는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불편함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개인의 젠더, 연령, 장애유무, 섹슈얼리티, 라이프스타일 등에 따라 살만한 집의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거공간이 이미 구조적으로 비장애인, 혈연중심의 ‘정상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황이고, 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필요한 기준을 주거 공간을 선택할 때 적용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을 때 주거공간에서 개인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불편하고 차별받는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주거공간의 물리적 관계적 사회적 특성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므로 주거권에 접근할 때 이 세 가지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거권, 노동권 그리고 건강권은 상호 연관적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아파트 건물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거주자가 공간 구성 변경이 용이한 방식으로 아파트를 설계하고, 그에 적합한 건축재를 사용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건설업체들은 아파트에 한옥 구조를 반영하거나, 정원을 만드는 등 주택의 장점을 살린 아파트의 다양화를 시도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높여 아파트 가격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여전히 경제력을 가진, 비장애인이며 ‘정상가족’을 구성한 사람들만이 집을 선택할 때 자유롭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권은 노동권(소득보장), 건강권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집세와 생활비를 전액 또는 일부 부담하는 비율이 전체 장애여성 응답자 중 약 60%정도 되고, 집에서 편하고 자유롭게 지내기 위해 지원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일자리제공이나 장애인연금 등을 통한 안정된 소득보장과 생계비라고 응답한 사람이 33.5%, 임대료 등 실질적인 주거비 보장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13.5%이다. 또한 햇빛이 들지 않거나 통풍이 되지 않는 등 열악한 주거환경은 개인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주거권의 문제는 노동권(소득보장), 건강권과 상호 연관되는 문제이다.

주거권, 차이의 관점으로 고민하기

한국사회에서 주거에 대한 접근이 주로 비장애인이면서 소득이 있는 혈연가족 중심이므로 다양한 소수자들의 특성과 의견을 반영한 주거권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동질적인 집단은 아니라는 것 즉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유형 등 다른 위치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주거권 운동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할 문제의식이다. 현재 주거정책은 정책대상에 대한 세밀한 접근 없이 주거 거주자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보고, 정책입안자 편의적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대상에 대한 조사 자체가 형식적으로 진행되어 실제 정책 내용을 구성하지 못하는 있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또한 기존에 만들어진 주거정책이 실제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고, 접근과 혜택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수정 보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인권의 역할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할 자유를 잘 행사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데 있으며, 국가의 의무에는 권리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적극적 의무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인권의 대전환⌟의 샌드라 프레드먼의 이야기를 새겨야할 때이다. 주거에 대한 선택의 지점들을 넓이고 누구나 물리적․관계적․사회적인 면에서 자기결정권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국가의 적극적 의무이다.

작성자호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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