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권리를 가질 권리”
본문
민족국가와 보편인권
장애인이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어떻게 보증될 수 있을까. 또 장애인이 인권을 가진 존재임을 보증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권’은 인종, 국적, 성, 연령, 능력을 막론하고 그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증 받아야 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선언과는 다르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선언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권리 주체, 권리의 상대방, 권리의 내용, 권리 인정의 근거가 작동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인권은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 돼 버린다.
이런 와중에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사회는 수많은 사회적 구분에 의해 구획돼 있고, 개인은 저마다 집단적 정체성을 가지고 권리를 주장한다. 장애인 인권을 보증하는 것이 장애인 집단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기만 하다면 집단의 제 앞가림, 나아가 집단 간 이전투구와 무엇이 다를까.
서양 정치철학자들은 보편도덕으로서 인권이 현실 세상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논의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현실 세상에서 개인이 인권을 보증 받을 수 있는 토대, 즉 “권리를 가질 권리”는 조직화된 정치적 공동체에 속하여 성원권(membership)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조직화된 정치적 공동체’란 정부와 법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 구성원이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의해서만 평가받을 수 있는 공적 영역을 갖춘 공동체다. 현실에서 이는 곧 민족국가를 의미한다. 보편도덕으로서 인권은 현실에서는 민족국가의 시민권을 가지고, 해당 사회의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정부와 법률에 근거해 보장받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민족국가와 보편 인권 사이의 필연적인 긴장이 발생한다. 민족국가는 보편인권을 보증하는 실질적인 기구지만, 동시에 그 성원권을 갖지 않은 개인은 배제함으로써 그의 인권을 말살시키는 이면을 가진다. 민족국가는 성원권을 갖지 않은 사람의 인권을 보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특정한 사람을 선별해 그들을 국가에서 추방함으로써 곧 그들의 인권을 완전히 말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전체주의 국가의 역사에서 매우 뼈아프게 드러났던 사실이다.
김민수. 2018.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 나타나는 근대 민족국가와 인간의 권리문제-제도와 권리의 이율배반을 중심으로-. 사총. 93. pp. 285-317.
보편인권, 민족국가를 초월해야
민족국가와 보편인권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지구화 과정에서 외국인, 망명객, 난민이 증가하면서 더욱 중요한 이슈가 된다. 민족국가의 성원으로서 해당 사회의 시민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인권을 보증 받을 수 있을까.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는 지구화 시대에 보편적인 인권을 보증할 수 있는 실질적 토대가 민족국가로 국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개인의 정체성이 ‘이미 완성된 자아’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것처럼, 민족국가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 또한 결코 조화롭게 이미 주어진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국민은 이미 주어져 고정된 것이 아니라, 포함과 배제가 상존하는 의식적인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민의 경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여기에서 의식적인 투쟁과 변화를 벤하비브는 ‘민주적 반추’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즉,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에 의해 우연히 정해진 시민권을 맥락 초월적인 보편인권과의 관계에서 재고하고 논쟁해 그 의미를 재정립하고 재의미화 하는 것이 민주적 반추이며, 이 과정을 통해 시민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보편인권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지에 대해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벤하비브가 지향하는 것은 “국경을 허물자는 것이 아니라 수용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난민과 망명객에 대해 임시 입국권을 허용하고 임시 입국에서부터 정회원이 되는 과정을 규정하는 민주적 절차를 인정해, 귀화에 관한 법이 보편적인 인권규범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시민적 연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권리를 가질 권리가 국가의 시민권보다는 보편인권에 귀속돼야 함을 말한다.
하용삼. 2010. 서평 - 타자의 권리에 대한 민주적 반추. 로컬리티 인문학 4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능력주의 한계에 갇힌 보편인권
하지만 국민의 경계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민주적 반추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것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민주적 반추가 모든 개인의 인권을 보증하는 세계시민적 연대로 나아가리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이는 인간성에 기초한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한 아렌트의 불안감과도 일맥상통한다.
아렌트는 민족국가의 법과 정부가 보편적 인권과의 관계에서 갖는 긴장을 인식하면서도, 맥락 초월적으로 인간성에 기초하여 보증 받는 인권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했다. 아렌트는 이렇게 표현한다. “어느 화창한 날, 고도로 조직화하고 잘 짜맞추어진 인간성은 매우 민주적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인간 전체를 위해서는 그 안의 일부분을 청산하는 편이 더 낫다”라고. 아렌트의 불안은 미래의 언제인가 인간성이 포함보다는 배제의 원칙으로서 소환될 것이라는 근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녀가 민족국가에 의해 보증되는 ‘권리를 가질 권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장애학자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는 벤하비브가 시민권을 구성하는 민주적 반추의 과정을 통해 인간성에 기초한 세계시민적 연대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면서도, 아렌트가 인간성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불안을 극복하지는 못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인권 담론에 숨어 있는 능력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인간성에 기초하여 보편인권을 실현한다고 할 때,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이 아닌가. 시버스에 따르면, 벤하비브는 유럽적 맥락에서 시민사회 제도가 시민권을 규정하는 방식은 위로부터의 위계적인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능력의 실행을 통해서 그들 자신이 시민사회의 존중받아야 할 일원임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없는지에 의해서”라고 설명한다. 즉, 법률에 의해 규정된 시민권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의해 인정받는 시민권이 ‘인간성’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때 ‘능력’이란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언어를 최소한도로 구사할 수 있는 것, 법과 정부 형태에 대한 시민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독립적인 부나 취업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등을 포함한다. 시민권을 위계적 결정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일견 시민권을 유동적인 것으로, 그리하여 인권을 가진 사람들의 폭을 더 넓히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시버스가 보기에, 벤하비브는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적 멤버십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특별하게 주장하지도 않음으로써 인간성에 기초한 보편인권을 능력주의에 가두어 버렸다.
보편적 인권의 출발점은 ‘가장 취약한 인간’
시버스는 보편인권이 능력주의에 갇혀버리는 것을 뛰어넘기 위해 ‘장애’에 천착할 것을 주문한다. 벤하비브가 국가의 시민권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민주적 반추의 과정을 거쳐 보편인권을 지향하면서 변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인간성에 기초한 보편인권의 실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과정이 개인의 능력을 통해 인간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인권으로 국한된다면 그것은 보편인권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버스는 “오늘날 인간성을 인권의 기초로서 논하는 것이 갖는 문제는 합리적 인식, 건강한 신체, 기술적 능력이라는 18세기 이상형에 따라서 인간을 규정하는 구시대적인 인식을 그 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적 성원권이 능력 이데올로기에 의지하고 있는 한,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타고난 사람,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심지어 엄청난 재앙의 시기에 조차도 그들의 시민권 지위를 유지하고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합리적인 사고, 건강함 또는 기술적인 재주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는 인간 이하로 보이고 인간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부여받았던 권리를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허약함, 취약함, 손상은 인간됨을 구성하는 가장 주요한 특성이다. 시버스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전형적으로 결핍, 질병, 분노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신체적으로 늙고 사라져가는 과정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취약하다고 본다. 이러한 약함과 취약성은 몇몇 사람의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성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시민은 오히려 허구다. 사실상 인간은 모두 언제나 의존적이다. 어떤 특징을 가진 한정된 사람들만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의존적이며,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 한정하여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인생주기에서조차 인간은 의존적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인권을 보증하는 것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상호의존하고 상호지원하기 위한 토대다. 그러므로 보편적 인권의 출발점은 시민으로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시민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 그 자체에 두어야 하고, 이때 ‘인간’은 가장 취약한 개인에게서 출발해야 한다. 벤하비브의 민족국가를 초월한 인권의 보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하는 민주적 반추가 허약함, 취약함, 장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허약함, 취약함, 장애를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을 표준으로 보고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증할 것인지, 어떤 법률과 제도와 절차를 마련해야 이들의 권리가 보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반추가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에서 출발하는 인권담론이 중요한 것은 단지 장애인 집단의 인권을 보증 받기 위함만이 아니다. 인간의 취약성을 온전히 재현하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증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인권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유지할 때에 비로소 민족국가의 성원권을 확장하는 민주적 반추가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배제가 아닌 포함의 지구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은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의 『장애 이론(Disability Theory)』 (2008) 9장의 내용을 요약 발제한 것이다. 현재 이 책은 한국장애학회에서 공동번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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