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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되는 공익인권소송, “패소 시 과중한 소송비용 부담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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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제기 기자회견 모습

최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와 제도개선을 위해 인권단체 등에서 제기한 공익인권소송이 패소하는 경우 승소한 상대방이 거액의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달 18일, 64개의 인권단체 및 공익인권변호사단체는 공익인권소송에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염전사건 피해자에게 “패소비용 부담하라”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염전노예장애인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염전사건 공대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부 패소한 건에 대해 지난 3월 거액의 패소비용을 납부하라는 소송비용확정청구를 받았다. 지난 2014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염전노예사건’은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한 섬의 염전에서 감금된 뒤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한 피해자가 “살려달라”며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한 통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민·관 합동 팀이 꾸려져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편지를 보냈던 피해자 외에도 해당 섬에서 노동력 착취, 폭행, 감금 등의 피해를 입은 장애인은 63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피해자들에 따르면 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지역 파출소 등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피해자들을 가해자인 염전주에게 돌려보냈다. 이에 공대위는 피해자 8명의 원고인단을 모집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학대피해 예방 및 발굴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경찰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증거가 남아 있는 박모 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7명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의 이유로 배상청구가 기각됐다. 이에 따라 소송과정에서 피고 측인 신안군이 지출한 변호사 비용 등 약 700만 원을 패소비용으로 물게 된 것이다.

연구소 인권센터의 백지현 간사는 “신안군 측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자료들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는 등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던 사건이었다. 때문에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것만으로도 어처구니없는데, 패소비용청구라는 부담까지 떠안아야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공대위는 법원에 항소를 제기하고 패소비용 청구의 부당함을 따지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신안군으로부터 소송비용 추심을 포기하겠다는 답변을, 8월에는 법원으로부터 원래 비용의 75%가 감면된 소송비용확정청구를 각각 받았다.

해당 소송을 담당했던 원곡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는 “최근 감사 등을 이유로 공익인권소송에서 패소 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측에서 패소비용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염전사건 소송에서 비용이 감면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인권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공익인권소송에서 패소비용이 청구된 경우 항소를 하거나 원고 측에서 성명서를 쓰고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64개 단체, “공익인권소송 패소비용 청구 부당하다”

인권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온 인권단체 인권운동사랑방은 지난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요구가 국가보안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방송통신위원회의 명령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정보인권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진보넷)는 한총련에 홈페이지 호스팅을 제공했다가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한총련 사이트 폐지 결정을 하자 이에 불복하여 방송통신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역시 2015년 패소했다. 하지만 패소 후 3년이 지난 3월 진보넷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돌연 피고 측 변호사 보수 등을 포함한 패소비용을 지급하라는 소송비용확정청구를 받았다. 인권운동사랑방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패소에 따른 소송비용으로 약 2,0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비용확정청구를 받아 항소를 진행 중이다.

공익인권소송에 대한 패소비용 청구 사례가 반복되자 지난달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인권단체 및 공익인권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64개의 연명단체와 함께 공익인권소송에 있어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공동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공익인권소송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현행 법령의 문제점과 법원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패소 시 과도한 소송비용 부담은 사회적 약자에게 높은 문턱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크게 제약하고 궁극적으로 공익인권소송의 시도가 제한되고 있다”며 제도개선 요구의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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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제기 기자회견 모습

공익인권소송 위축시키는 패소비용 청구

민사 또는 행정소송에서 패소자 측이 상대방의 소송비용 중 일정 비율을 부담하는 ‘소송비용 부담의 원칙(민사소송법 제98조)’은 무분별하게 소송을 제기하는 남소(濫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소송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변호사 보수에 대해서는 대법원 규칙인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산입에 관한 규칙(이하 보수규칙)’에서 정한 금액 범위에서 인정한다. 법원은 재판 시 소송비용의 부담에 대해서도 판단을 하는데, 이처럼 일정 기준에 따라 패소한 당사자는 패소 비율에 따라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을 공익적 성격을 띄는 소송에도 일률적으로 적용시키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64개 연명단체들의 입장이다. 공익인권소송은 제도와 법령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사회적 문제제기 차원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존의 법적 틀 안에서는 패소의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 원고가 사회·경제적 약자이거나, 단체가 공익적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에 고액의 소송비용을 부담하기 어렵고, 원고의 대리인 역시 같은 취지로 무료 또는 소액만을 지급받고 소송에 임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64개 단체들은 공동의견서에서 향후 제도 등 개선과제로 △국가 등이 국민을 대상으로 거액의 소송비용 청구 금지 또는 제한 △정보공개청구 소송 패소 시 소송비용 면제 또는 소가 대폭 하향 조정 △소송의 공익적 성격, 당사자의 사정, 정의와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소송비용을 감면할 수 있도록 법령 개선 등을 밝혔다. 의견서에 제시된 개선과제에 대해 민변의 송상교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 등 여러 공익변호사단체에서 주로 나왔던 이야기 중 합의된 내용 위주로 정리한 것이다. 관련 전문가 혹은 단체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를 점차 공론화시켜 수정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소자 보호하는 해외 제도 참고 가능해

전통적으로 변호사 보수 각자부담주의(No-way rule)를 취하고 있는 미국은 공익인권소송에 대해서는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one-way fee shifting)’를 채택하고 있다. 편면적 패소자부담주의란 원고가 소송에서 승소한 경우 패소자에게 변호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반면,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한편 캐나다는 소송비용에 관해 법원의 폭넓은 재량권을 인정한다. 법원이 비용부담명령을 할 때 ‘해당 소송절차를 진행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이 그와 같은 비용부담명령을 정당화하는지’를 고려할 요소 중 하나로 들고 있다. 캐나다 법원은 공익적 요소를 가진 소송사건에서는 그에 고유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소송비용 부담에 있어 패소자부담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는 이로 인한 공익인권소송의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비수단을 마련했다. 자신의 헌법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패소하더라도 피고의 소송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고, 원고가 승소할 경우에는 자신의 소송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처럼 국외에서는 공익인권소송 진행 시 패소비용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여러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송상교 변호사는 공익인권소송을 다루는 해외의 다양한 방법들을 참고해 국내에서도 사회적인 합의를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익인권소송 패소비용 처리절차에 대한 논의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에서 특정 소송을 ‘공익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10여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합의해온 공익인권소송의 개념들이 있기 때문에 그 합의와 상식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단적인 예로 변호사협회 또는 법원에서 구조를 받아 진행되는 경우엔 어느 정도 공익성이 판단된 것일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풀어가는 외국의 흥미로운 방법들도 다양하다. 이 사례들을 참고해서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합의를 가지고 소송 건 별로 충분히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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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제기 기자회견 모습

사회적 약자 보호하는 제도개선의 열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염전사건의 피해자와 같이 사회적 약자가 소외되기 쉬운 국가권력구조에서 공익인권소송은 이들을 위한 근본적 제도개선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염전사건의 피해 당사자들이 가해자였던 염전주를 상대로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를 제기해 염전주가 처벌되고, 손해배상을 일부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개인적인 구제만으로 문제가 근절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나 지자체가 사건 예방에 책임을 갖고,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인 대처를 하도록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만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대위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익인권소송을 제기했던 이유다. 염전사건을 지켜본 많은 대중과 원고의 입장에서는 일부패소라는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철저한 법의 논리 속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을 뿐, 패소했기 때문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이 전혀 없고, 잘못된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송상교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배제되기 쉬운 소수자의 권리 보전을 위해 공익인권소송은 앞으로 활발해져야 하며, 이를 위해 공익인권소송 제기를 가로막는 공익인권소송 패소비용청구문제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법원판단은 다른 사건에 파급력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제도개선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 같은 사례는 많았다. 호주제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특히 소수자와 다수자로 갈라진 최근의 인권 이슈는 다수결로 풀어가기에 무리가 있다. 한 국가에서 소수자의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다수결과는 무관한 결단이 필요하며, 가장 적합한 방식 중 하나가 소송이다. 하지만 소송 역시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국가에서나 기본적으로 패소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익인권소송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다. 승소율은 낮더라도 꾸준히 이어지는 소송을 통해 찬반의 논리가 성숙될 수 있고, 사회적 논의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익인권소송을 진행하는 데 무엇보다 걸림돌이 되는 것이 비용의 문제다.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익인권소송을 통해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특정인의 혜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권 신장이다. 사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성자글. 정혜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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