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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우선 허가제도, 안지키려면 차라리 없애라

있으나마나한 매점 자동판매기 장애인 우선 허가제도

본문

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공공시설 내 매점·자동판매기 운영권을 허가해주는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더 문제인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 제도를 제대로 지켜서 저소득 중증장애인들의 소득을 보장해 줘야 하는데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우선허가 제도의 실상을 취재했다.

권고가 전부인 보건복지가족부 대책

장애인복지법 42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는 공공시설 안에 매점이나 자동판매기의 설치를 허가하거나 위탁할 때 장애인이 신청하면 우선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다 서울시를 비롯한 몇 몇 지방자치단체는 별도로 조례를 만들어서 공공시설 내 매점 자동판매기 운영권을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게 우선 허가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정감사에 제출된 공공기관 매점·자동판매기 장애인 우선허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등 전체 공공기관의 평균 허가율은 19.3%. 그리고 이중에서 중앙행정기관을 따로 떼어내 실태를 살펴본 결과 장애인 우선 허가율이 단 9%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인 실태를 살펴보면 중앙행정기관은 9%. 전국 시 도는 32%. 그리고 시도교육청 중 13%만이 장애인에게 매점이나 자동판매기를 운영하도록 허가해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특히 중앙행정기관 중 감사원,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국회사무처 등 11곳은 장애인 우선허가율이 단 하나도 없는 0%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제도가 장애인들에게 왜 중요하냐면, 저소득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 매점 자동판매기 우선 허가 외에 정부가 시행하는 다른 소득 방안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법에 규정된 지 10년 가까이 됐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중앙행정기관의 허가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것은 이 제도가 유명무실하고, 정부가 과연 이 제도를 통해 저소득 장애인의 소득을 보장해 줄 의지는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겠다.

   
▲ 급격한 매출 감소로 견디다 못해 운영을 포기하고 문 닫는 매점도 많이 생겼다. ⓒ김태현 기자

취재 결과 문제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에 있었다. 이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 자립지원과 관계자는 이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장애인에게 매점이나 자동판매기를 우선 허가하는 제도가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조항이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장애인에게 매점이나 자동판매기를 우선 허가하는 것이 행정기관이나 공기업 평가사항에 들어가 있지 않아 이것도 이 제도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복지부 담당자 말이었다. 그러면서 담당자는 “복지부는 정부 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새로 매점이나 자동판매기 운영자를 선정할 때는 장애인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즉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되어 있는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은 권고가 전부인 것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복지부 담당자가 어렵다고 한 이유, 즉 이 제도를 규정한 장애인복지법 조항이 권고 조항이어서 공공기관들이 이 제도를 잘 지키지 않고 있다면 이 권고조항을 의무조항으로 개정하면 되는 것이다.

또 이 제도 시행 여부가 행정기관이나 공기업 평가에 들어가 있지 않아 공공기관들이 이 제도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정부가 제도를 개선해서 이 제도의 시행 여부를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평가에 포함시키면 된다.

하지만 복지부 담당자는 무슨 이유인지 법 개정 여부는 물론 행정기관이나 공기업 평가에 이 제도 시행 여부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현재 고민은 하고 있지만 이 제도의 실효성 담보를 위해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복지부 담당자의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대기업 편의점에 밀려 고사위기에 처한 지하철 매점

중앙행정기관도 문제지만 지방자치단체도 이 제도를 잘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예로 장애인 등에게 매점 자동판매기 운영 우선권을 주도록 별도로 관련 조례까지 제정한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도 이 제도를 잘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려는 의지도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먼저 서울시의 경우 공공시설내의 매점 및 자동판매기 설치계약에 관한 조례는 서울시가 설치 관리하는 공공시설에 매점 및 음료수 자동판매기를 설치 계약할 때에는 장애인 등이 우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필요한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즉 서울시 관할 지하철 등 공공시설 내의 매점 운영 등의 사업에는 장애인 등이 비장애인들 보다 우선 계약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 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경영 개선을 이유로 지하철 내에 대기업 산하 편의점 등을 설치해서, 이 여파로 장애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매점 등이 경쟁에서 밀리면서 문을 닫기 일보직전의 위기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경우는 지난 2005년 한 업체와 5년간 20억 8천여만 원의 임대료를 받기로 하고 승강장에 과자자판기 설치를 허가했다. 110개 역 승강장에 184대가 설치된 이 과자 자판기로 인해 장애인 등이 운영하는 지하철 1-4호선 내 매점 운영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게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한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는 한술 더 떠 수익을 증대한다며, 지난 2007년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 업체의 지하철 내 설치를 허가했다. 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이 업체로부터 매달 약 13억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 산하 편의점이 지하철에 들어서면서, 요즘 많이 얘기되고 있는 대형할인점과 동네 슈퍼의 예를 연상해 보면 금방 결과가 나오는데, 장애인 등이 운영하는 지하철 내 매점 등이 편의점에 밀려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게 역시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 서울 지하철 역사 내 매점을 운영하는 한 장애인은 매출이 떨어지자 업체들에서도 물건을 적게 주는 등 등을 돌리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김태현 기자

이 주장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되는데, 도시철도공사 자료에 따르면, 5~8호선 지하역사의 장애인이 운영하는 통합매점이 편의점이 들어서긴 전인 2006년 95곳에서 현재 41곳으로 절반 이상 줄었고, 음료수자판기 수도 186개에서 143개로 감소했다. 즉 장애인 등이 운영하는 매점이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경쟁에서 밀려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은 것이다.

도시철도공사는 대책을 물어보자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했다. 담당자는 “편의점은 대합실에 설치되어 있고, 통합매점은 승강장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용승객이 달라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따져보면, 위치는 다르지만 한 역사 내에 똑같은 상품을 파는 판매점이 두 곳 있으면 규모가 작은 판매점이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보기에도 초라한 장애인 등이 운영하는 작은 매점보다 넓고 깨끗한 편의점을 찾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현실이 이런데도 도시철도공사 측은 매점과 편의점 위치가 달라서 문제될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더 문제되는 건 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 입장이다. 서울시 이 제도 담당자는 지하철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이 들어서서 장애인 등이 운영하는 매점 등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조례에 규정되어 있는 매점 면적보다 편의점 면적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편의점이 기존 매점을 없애고 들어간 게 아니기 때문에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역시 이해하기 힘든 답변을 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의 경우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은 최근 개통한 지하철 9호선 문제이다. 9호선의 경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운영하는 매점이나 자동판매기가 단 한 개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9호선 운영회사는 “9호선은 민자사업이기 때문에 서울시 산하기관이 아니다. 서울시가 민간투자사업법에 의해서 사업자를 선정했기 때문에 9호선은 매점이나 자동판매기를 취약계층에게 우선 허가해줄 의무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매점이나 자동판매기 운영권을 장애인에게 줄 계획이 애초부터 계획에 없었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는 게 담당자의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서울시가 이런 식으로 예외를 적용하면 과연 이 제도를 왜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제도 지키든지 폐지시키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해야

그런가하면 제도 자체가 가진 문제점 때문에 이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청 이 제도 담당자에 따르면, “이 제도를 규정한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장애인 등에게 매점을 우선 허가하는 기준이 15제곱미터, 즉 공공기관에 4.5평 이하 매점이 들어설 때 우선 허가 규정이 적용된다고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공기관들이 청사를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면서 구내매점의 경우 규모가 큰 매점이 들어서고 있는데, 법 규정에는 여전히 작은 규모의 매점을 우선 허가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공공기관들이 우선 허가 조항을 피해 민간업자들에게 매점을 임대하고 있다는 것이 담당자의 전언이다. 그래서 경기도는 최근 보건복지가족부에 매점 우선 허가가 적용되는 면적 기준을 늘려서 30제곱미터 약 9평 이하로 규정해달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장애인에게 매점 자동판매기를 우선 임대해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현재 다른 소득보장 방안이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된 공공시설내의 매점 자판기 운영권 장애인 우선 보장이 저소득 중증장애인들의 유일한 소득보장 방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일을 통한 복지가 말로만이 아닌 현실에서 가능하려면 정부의 이 제도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할 수 있겠다. 아니면 이참에 유명무실한 이 제도 자체를 폐지시키든지. 정부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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