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권리의 후퇴와 이명박 정부
본문
[인권오름]
돈이 없고, 구매력이 없으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걸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인권의 요청이요, 인권의 답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적절한 주거에서 생활하지 못 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고, 당연하다는 생각을 강요받았다. 그래서 ‘인간의 권리’보다 ‘시장의 요구’가 우선시되면서 많은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인권의 주인인 사람이 비인간적 삶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면 ‘인권’은 공허한 소리에 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보고 듣고 겪고 있다.
올해는 UN 사회권위원회가 한국의 사회권 3차 정부 보고서를 심의하는 해이다. UN 총회는 1966년「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을 채택하였고 1976년 발효되어 규약에 따라 1986년에 사회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UN 사회권위원회(이하 위원회)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보장을 위한 이행을 규약 가입국이 얼마나 했는가를 심의한다. 사회권 규약에 가입한 당사국에는 그 규약은 국내법적 효력이 있다. 한국 정부는 1990년에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여 규약에 따른 이행사항을 보고서로 5년마다 위원회에 제출하며, 그에 대한 심의를 받는다.
심의과정은 사전 심의와 본 심의로 이루어진다. 보고서를 토대로 본격적으로 사회권 상황을 검토하기 전에 해당 정부에게 ‘사회권 현황에 대한 질의목록’(list of issues)을 만드는 사전 심의를 한다. 여러 단위에서 오는 질의목록을 참조하여위 원회는 질의목록을 만들어 해당 정부에게 보내면 정부는 그에 대한 답변을 본 심의 전에 제출해야 한다. 사전 심의와 본 심의의 간격은 보통 6개월이나 1년이다. 작년 말 한국 사회권 상황에 대한 사전 심의를 하였고, 한국의 인권단체들도 위원회에 사전 질의목록을 작성하여 보낸 바 있다. 올해 11월에는 1995년, 2001년에 이어 세 번째로 제출한 정부보고서를 비롯한 사회권 상황에 대한 본 심의가 있다.
사회권위원회는 본 심의를 한 후 해당 국가의 인권 상황에 대해 주요 우려 사항, 긍정적인 면, 개선방안에 대해 권고를 내린다. 물론 위원회의 권고가 강제적 집행력은 없지만 규약 상 가입국의 정부는 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해야 할 중요한 의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위원회의 권고는 인권적 규범과 방향에 대한 제시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사회권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잣대가 된다.
사회권 현실을 드러내는 민간단체 보고서
그렇다보니 가입국이 사회권 규약 이행에 대한 심의를 받을 때 당사국의 사회권 현실을 숨기거나 잘 된 부분만을 과대포장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국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위원회가 사회권 이행에 대한 심의를 할 때 정부보고서 외에도 비정부기구(NGO)인 민간단체들의 보고서와 국가인권기구가 있는 경우 해당국의 인권기구의 의견도 듣는다. 민간단체들의 보고서에는 정부보고서나 질의목록에 대한 답변이 왜곡하거나 일부러 누락한 부분에 대한 보고와 필요한 조치에 대한 의견이 담긴다. 그래서 민간단체들의 보고서를 정부보고서를 반박한다는 의미에서 반박보고서(counter report)라고 하기도 하며, 인권상황 개선에 대한 다른 내용을 추가한다는 의미에서 대안보고서(parall report)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는 사회권 3차 민간단체 보고서로 통일하겠다.
사회권 규약에 명시된 권리는 노동의 권리, 공정하고도 유리한 노동조건을 향유할 권리, 노동3권, 적절한 생활에 대한 권리인 사회보장권과 주거권, 식량권, 여성 및 아동의 권리, 건강권과 환경권, 교육권, 문화와 과학에 대한 권리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규약 1조부터 3조에 는 해당하는 일반적 인권상황, 차별 없는 권리 행사, 남녀평등에 관한 사항에 대한 증진 점검도 보고서에 포함된다. 그래서 2차 심의 때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일반적 인권상황으로 <파리원칙>에 부합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라는 권고를 하기도 하였다.
한국정부가 3차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2006년이다. 그렇다보니 달라진 상황도 있다. 특히 새 정부 들어 이전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인권보장책들조차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더욱 후퇴한 상황이다. 물론 그 전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권의 후퇴를 일으키는 정책들로,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양성 정책이나 개발정책, 한미 FTA 등을 추진하여 사회권은 후퇴하고 있었다. 2차 심의 때에도 민간단체들이 우려하였듯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한국 민중들의 사회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이번 3차 민간단체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정책을 유지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는, 공공영역을 시장영역으로 돌리는 민영화 정책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또한 지금은 경제위기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 빈곤해지고 하루 생계조차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사회권 보장 정책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현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의료민영화, 사교육비 증가 등을 가속화시켜 돈이 없는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를 축소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이자 사회권 2차 심의 때 최종 권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한국 사회권의 주요 현안이다.
2001년 당시 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고 그들의 지위를 재고하고 규약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지만 현재까지 비정규직 규모는 늘어가고, 비정규직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책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기업들의 횡포로 실업과 비정규직화로 더욱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인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 3권에 대한 보장이 전혀 되지 않아 최소한의 방어권도 없이 살아가는 게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올해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와 회사 측의 반인권적 폭력에서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도 보고서에 담았다.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과 저열한 인권의식
그런데도 현 정부는 열악한 한국의 사회권 현황에 대해 묻는 답변에서 여전히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올해 현 정부가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흔드는 조치들인 조직 축소와 개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은 채 그저 독립성은 보장받고 있다는 답변을 하였다.
또한 2008년 차별금지법안에서 차별사유와 관련하여 초기 법안의 20개 조항 중 7개(국적 및 성적 지향 포함)가 최근 법안에서 삭제된 사실에 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위원회의 의견에 대해 “차별금지사유와 관련하여 이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열거방식이 아니라 대표적 사유만을 명시하는 포괄적 예시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임시방편의 변명을 하였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감소추세인양 포장하는 잘못된 통계수치를 내놓기도 하였다.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쟁의로 인한 형사소추 현황에 대해 구속자 수와 기소자 수가 줄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정부와 기업이 노동권을 박탈하는 방식은 노동법 위반만이 아니라 집시법 위반, 업무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손해배상 청구 등임에도 이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정부 답변서에는 정부가 얼마나 저열한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예를 들어 무상교육의 지연과 사교육비 증가를 우려하는 위원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자립형 사립고를 얘기하고 있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자립형 사립고는 고등학교간의 서열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교육비가 연간 1000만 원 이상으로 매우 높다.
또한 뉴타운 정책이 주거권에 미치는 영향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며, 주거이전에 따른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인양 답변하였다. 특히 개발조합에 의한 강제퇴거가 진행되어도 퇴거대상자들과 협의하는 절차나 침해구제 절차가 없는데도 “과도한 보상요구에 따른 보상협의 미완료시 민사소송에 따른 강제집행 절차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철거는 별개의 문제” 라고 하였다. 명도소송이라는 사법 절차가 있으니 강제퇴거는 없다는 식이다.
민간단체 보고서의 주요 내용
이번에 제출하는 사회권 3차 민간단체 보고서는 11월 초에 심의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된다. 그렇다보니 2006년 제출한 3차 정부보고서와 작년 사회권위원회가 한국정부에 질의한 답변서 등에 대한 반박이 들어 있다.
총론에서는 경제위기임에도 한국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화하여 사회권이 후퇴하였고, 이에 대한 저항을 막다보니 자유권도 후퇴하였고,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권은 더욱 소외되고 있음을 주요하게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 정부 정책 실패와 실업 및 비정규직 증가 △부자감세와 사회복지 축소 △ 친기업 정책과 민영화 강화 △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인한 건강권, 식량권, 환경권의 후퇴와 막대한 사업예산 책정으로 인한 사회복지 예산 축소 △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광우병 의심 쇠고기 수입 조치△ 재개발 정책으로 인한 주거권 침해와 이에 항의하는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으로 인한 사망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사회적 약자의 사회권 악화인 최저임금법 개악 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단속,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의 축소 등을 담았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보수편향적인 정책으로 인한 사회권 후퇴도 주목할 만하다. 그 예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탄압 등 문화예술단체의 자율성 침해, 학교 체벌은 유지되고 있음에도 대안인양 제시한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 도입이 가지는 이중 처벌과 학생들의 자율권 침해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후퇴영역이 너무나 많아 보고서 분량이 200페이지가 넘을 정도여서 제출용인 요약본을 따로 만들었다 .
연대의 시작이 될 보고서 작성과정
민간단체 보고서는 한국 사회권 실태를 알리고 개선방향에 대한 유리한 권고를 이끌어내는 주요 목표 외에도 보고서 작성에 함께 한 단체들이 모여 한국 사회권 현실에 대해 논의하고 공유하면서 연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작성과정도 중요하다. 3차 보고서는 2차 보고서 때처럼 여러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 작성하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당 권리와 관련된 단체들이 모여 작성한 곳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또 미흡한 점은 있지만 자기 분야가 아니더라도 사회권 상황에 대한 전체적 이해를 위한 사전 논의와 워크숍을 개최하였다. 특히 주거권이나 문화권의 경우 작성과정에서 여러 단체들과 여러 활동가들이 논의를 하고 조사, 연구를 하면서 해당 권리 영역의 주요 의제를 점검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사회적 소수자의 사회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 예로 시설장애인의 주거권 보장이나 성소수자나 비혼 가구의 주거권 차별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청소년 노동에 대한 기존 접근이 단지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로만 청소년 노동을 다루었던 한계를 넘어 청소년에게도 노동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사고하자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다음 달인 11월 10일과 11일에 한국 사회권 상황에 대한 심의가 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사회권 심의가 열리는 제네바에 가는 파견단이 위원들에게 한국 현실을 알리고 좋은 권고를 이끌어내는 현지 활동, 그리고 심의가 끝난 후 심의 결과를 한국사회에 알리고 공유하는 토론회나 워크숍 등의 작업과 한국 정부에게 권고 이행을 촉구하는 일이 이어질 것이다.
사실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는 정부 간 체제인 유엔기구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권고도 외교적인 입장을 고려하여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를 바탕으로 우리가 정부에게 최소한의 사회권 보장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할 수 있기에 UN 사회권 심의 대응은 사회권을 지켜내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문서에 찍힌 인권이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누릴 수 있는 인권이 될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이 병행되지 않는 한 이조차도 의미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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