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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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부동산투기로 재미 좀 보겠다고 덤벼들기는 단지 우리네 사정만은 아닌 듯싶다. 90년대 초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10년’에 땅을 치는 일본이 그렇고, 부동산 모기지 부실이 금융공황, 경제공황으로 이어진 미국이 그렇다. 한국은 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꺼진 적은 있어도 아직은 부동산투기 과열이 경제공황으로 이어졌던 경험은 없다. 그러나 금리를 올릴 건가 말 건가 하는 출구전략에 대한 한국은행과 정부의 딜레마가 그렇듯 언제 터질지 모르게 진행 중일 뿐이다.
노동시간 그리고 아파트
그런데 똑같이 땅덩어리는 작고 인구는 많은 일본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 아파트가 이리도 우대받고 난립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를 지나가자면 재개발 재건축지역이 끊이지 않고, 강변도로를 지나다보면 아파트가 병풍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쫓겨난 세입자들의 눈물과 한숨이 물안개처럼 깔려있다.
의식주가 생산관계가 투영된 생산양식의 반영이라면 이는 필시 노동시간과 상관이 있을 듯하다. 노동시간으로 따지자면 OECD 평균 1~2위를 유지하고, 기본급이 낮아 잔업, 특근을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 연장근무가 기본인 한국의 노동자는, 화이트칼라, 블루칼라를 떠나 해가 하늘에 떠있을 때 집에 들어가기란 상상조차 어렵다.
이러다보니 일찍 퇴근하여 집을 보수하고 앞마당 잔디 깎고, 혹은 자동차도 고치고 뭔가에 미쳐서 창고에 틀어박혀 뚝딱거리는 풍경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더구나 잔디가 깔린 앞마당 의자에 앉아 햇볕을 쪼이면서 시간을 즐기는 풍경정도면 가히 SF공상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고 주민등록번호를 사방 천지에 남발하고 실시간으로 위치정보를 노출하는 것조차 꺼리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프라이버시에 민감해서 단독주택을 싫어한다는 가정은 아예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아파트인 듯하다. 관리인이 있으니 일찍 들어와서 집을 손 볼 필요도 없고 CCTV가 지켜주니 집을 비우는 것도 문제가 안 되니 조간신문 집어 들고 퇴근해도 그만이다. 맞벌이 부부에게도 좋으니 산업예비군 늘어나서 좋고, 애들 학교 다녀와서 집 지킬 필요 없이 학원을 전전해도 문제가 없으니 아파트가 딱이다. 그래서 아파트가, 아파트 투기가, 부동산 투기가 이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듯싶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노동3권이 헌법에 명시된 나라는 OECD국가 중에 한국밖에 없다고 헌법에서 노동3권을 삭제하자고 강변하는 자가 노동연구원 원장이 되었다. 요즘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아온 훌륭한 분들 많이 있더니만 어떻게 ‘미국만을 쳐다보면서 자라고 미국만이 세계라고 생각하는’ 이런 화상을 꼭 집어서 앉히는지, 이는 확실히 이명박 대통령만이 가지고 있는 비기(秘技)다.
임시상가, 임대상가
친 서민과 중도실용을 내세워 재미를 본 이명박 정권이 내민 개각이라는 회심의 카드에 문제가 생겼다. 신임 총리를 비롯해 장관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하나 위장전입과 다운계약, 불법전매 등 부동산투기 의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로 통칭되는 이명박 정권은 ‘준법’과 ‘법질서’를 주문을 외듯 하는 대법관, 법무부장관조차 예외가 아님에도 큰 흠결이 없다고 한다. 개각 때마다 빛이 나는 대단한 비기가 아닐 수 없다.
재개발 재건축에 ‘주거 세입자’가 공사기간 중 가수용 단지인 ‘임시주거단지’에 거주하다 공사가 끝나면서 싼 값에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보장하는 ‘순환식 개발’이라는 권리를 법으로 얻어내기에 적어도 3~40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기도 했다. 아파트 투기로 한 몫을 잡으려는 자에게는 같은 단지에서 함께 살기도 싫은 사람들에게 임시주거단지와 임대주택이라는 비용을 더 들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을 터라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밥숟가락이 걸린 가게를 철거당하는 ‘상가 세입자’에게는 아직 아무런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재개발 재건축으로 많으면 몇 억이 되는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등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단지 이주비용만으로 쫓겨나는 그들이 공사기간 중에도 생계를 연명할 ‘임시상가’와 싼 값에 입주할 수 있는 ‘임대상가’는 생존권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그들에게 강부자, 고소영내각의 대답은 특공대의 몽둥이와 불구덩이였다. 참사가 난 직후 ‘순환식 개발’을 하겠다는 한나라당 대변인 발표는 다급해서 나온 실언에 불과하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에서는 아파트 천국을 건설하는데 있어 턱없는 보상과 용역의 폭력에 쫓겨 최소한 권리를 위해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의 생존은 안중에도 없었다. 용역의 폭력에도 버티는 그들에게는 특공대의 몽둥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철거민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 철저하게 부동산투기꾼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용산참사로 인해 상가 세입자의 권리가 논란이 되는 것조차 막아야 했고, 그리하여 그들은 철저하게 조합과 유족이라는 ‘사인(私人)간의 관계’이니 유족 보상금, 말하자면 현찰 몇 푼으로 합의하라고 강변해왔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만약 지명이 된다면 용산참사 현장을 찾을 것을 약속했다. 자리 얻기에 급급해서 한 대답이 아니라면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는 임시시장 임대상가를 약속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서, 철거민을 대신해서 돌아가신 다섯 분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누누이 강변했듯 부동산투기꾼, 부동산투기 내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친 서민, 중도실용내각의 면모를 보여주는 길이다.
서로 함께 가난을 나누면 된다는데
지난 1월 20일 다섯 분의 철거민들이 돌아가시고 유족들은 영안실에서 설날을 맞았다. 그들에게 까치들의 설날도 없었고 우리들의 설날도 없었다. 단지 눈물로 함께 하는 설날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한가위의 넉넉함은 없고 응어리진 가슴과 경찰에 맞은 상처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오늘도 남일당 현장을 지키러 나간다. 부동산투기가 구조화된 이 사회에서 싸우지 않고는 보름달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정호승 시인의 ‘기다리는 편지’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읊조려본다.
오랑캐꽃 잎새마다 밤은 오고
배고픈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산그늘에 모여 앉아 눈물을 돌로 내려찍는데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함께 가난을 나누면 된다는데
산다는 것은 남몰래 울어보는 것인지
밤이 오는 서울의 산동네마다
피다 만 오랑캐꽃들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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