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의 경계 또는 위계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민주화운동의 경계 또는 위계

인권이 던진 질문

본문

  16166_15938_5040.JPEG  
▲ 지난 2012년 10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던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 및 빈민열사·희생자 합동추모제에서, 문예일꾼 박준 동지가 구호를 선창하는 무대 아래 왼쪽으로 故 이덕인 열사의 영정사진이 위치하고 있다.

민주화란 어떤 의미일까? 민주화운동이란 어디까지일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작년 시민들의 촛불행동으로 파렴치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낸 경험이 있는 우리에겐 특히 의미 있는 질문이다. 1995년 의문사 당한 장애인노점상 이덕인 열사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고 이 질문을 다시 하게 됐다.

어린시절 탈골로 장애를 입은 이덕인 열사는 1995년 6월 장애인 자립의 꿈을 안고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해서 노점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장애인도 최소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업에서 장애인들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노점을 해서라도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노점운동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인천 아암도 해안가에 노점을 차렸다. 그렇게 장애인자립의 꿈이 실현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인천시는 이들의 자립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있는 자들의 배를 채우는 개발에만 혈안이 돼 강제철거를 시도했다.

1995년 11월 28일 인천의 아암도 앞바다에서 그는 변사체로 발견됐다. 상의는 벗겨 있었고 온몸에 멍이 든 채 팔이 죄인처럼 끈에 묶여 있었다. 노점상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아암도 망루에서 싸우다 사라진 지 3일 만이었다. 경찰 2,000명이 망치로 벽을 뚫어 시신을 탈취했다. 피가 낭자한 영안실. 망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았다. 강제부검의 결과는 예상대로 익사였다. 누가 봐도 타살인데 바다를 건너다 익사한 것이라는 정부 발표.

어느 누가 자신의 손을 줄로 꽁꽁 묶고 바다를 건넌단 말인가. 11월 말이라 추운데 상의도 벗고 말이다. 진정 경찰이 때려서 죽이고 바다에 던진 게 아니라면, 굳이 유족의 동의 없이 시신을 빼앗아갈 이유가 없다. 수개월을 싸웠지만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자 처벌은 없었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가족들은 자식의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졌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덕인 열사 사건에 대해 “대규모의 공권력 동원과 통제로 헌법상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공익에 비해 침해되는 사익이 현저히 큰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였으며, 국민기본권의 확립을 위해 항거하는 과정에서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사인과 관련해서는 “이덕인 씨가 경찰에 폭행당한 후 실신 상태에서 물에 던져졌음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국가폭력은 있었으나 국가가 어떻게 죽인 건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 아래서 열린 2008년 ‘민주화운동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며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경찰과 인천시의 공권력 행사는 정당한 행정집행이며 노점상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노점상운동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다?

노점상운동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말에 열사의 부모는 이덕인 열사가 살아생전 했던 운동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노점상운동을 하고 장애인운동을 했단 말인가! 참 서글펐다. 도대체 민주화운동이 뭐길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경찰에 맞아 죽은 게 분명해 보이는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명예조차 부인한다는 말인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쓰인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2조(정의) 1항에서 “민주화운동”이란 1964년 3월 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2조 (정의)

2. "민주화운동 관련자"(이하 "관련자"라 한다)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 제4조에 따른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심의·결정된 사람을 말한다.

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나.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상이( 傷痍)를 입은 사람

다. 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병을 앓거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

라.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거나 해직되거나 학사징계를 받은 사람

[전문개정 2015.5.18]


군부독재와 타협해 탄생한 김영삼 정권의 개혁은 반쪽이었고 ‘권위주의적 통치’의 연장이었다. 90년대 민주화운동을 인정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잘못된 국가제도에 맞서 싸우는 일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하는 일이다. 노동운동이 그랬고, 장애인운동이 그렇고 빈민운동이 그렇다. 이덕인 열사는 장애인도 노점상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고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랐고 그래서 장애인자립추진위를 구성한 것이다. 그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노점을 한 것이라면 장애인자립추진위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장애인노점상운동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은 민주화운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인가.

학생운동만 민주화운동이라는 발상은 그야말로 민주화운동을 편협하게 보고 민주주의를 협소하게 만드는 일이다.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사회운동과 학생운동만 민주화운동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는 한국사회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겪었기에 민주화운동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경험적 한계일 수도 있다. 독재정권은 이전에도 있었다. 군부가 아닌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서 4·19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60, 70년대 정권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은 노동운동에서 많이 일어났다. 노동자를 착취해서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올 수 있기에 정권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서다. 개발독재란 기업과 정권의 유착인 체제다. 이러한 개발독재정권에 맞서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 노동권을 신장시켰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확장시켰다. 정권의 개발정책을 바꾸고 노동정책을 바꿀 수 있었던 것도 노동운동 덕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운동도, 노점상운동도, 빈민운동도 헌법의 가치와 권리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한 운동이다. 운동의 힘으로 장애인정책을 바꾸고 노점상정책과 빈민정책을 조금씩 바꾸었다. 헌법의 주요한 가치인 인간존엄과 평등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게 만들었다.

 

민주화운동의 위계

그러나 우리 사회는 학생운동만이 민주화에 기여한 운동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학생운동은 이해관계에 얽매지 않은 순수한 운동이고 그러니 민주화운동의 가능성이 크다는 식이다. 그러나 민주화나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고 운동이다. 그것은 단지 정치체제나 권력형태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장애인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헌법에 보장된 인권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도 노동운동, 장애인운동, 노점상운동은 이해관계가 있으니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발상은 인권에 대한 무지다. 인권은 당사자들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운동에 의해 성장해 왔으며, 인권은 형식적 중립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박탈된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는 것은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헌법의 가치를 풍부히 하는 운동이다.

이런 식의 발상은 운동의 위계를 만들어낸다. 어떤 것은 순수하고 어떤 것은 민주주의에 가까운 운동이라는 위계. 이해관계나 생존의 권리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입을 틀어막는 데도 동원될 수 있기에 위험하다.

사회적 약자가 박탈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수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는 더욱더 말할 기회를 잃는다. 소수자의 인권은 그야말로 다수자, 즉 주류세력에게는 관심사가 아닐 수 있기에 더 뒤로 밀리는 의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민주화운동의 위계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권을 흔드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사회가 평등해지려면 타인의 권리가 보장되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타인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운동의 위계, 인권의 위계를 만드는 주류 세력, 권력의 꾀임에 넘어서는 모두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와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이제라도 이덕인 열사에 대한 ‘민주화운동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의 재결정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죽은 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성자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