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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벗어나 지역사회로", 탈시설화 이제 시작

[탈시설 기획 ①] 근거 마련된 탈시설화,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본문

훗날 장애인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올해, 그중에서도 8월을 우리나라에서 탈시설화 움직임이 구체화된 시기로 기록할 것이다. 이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들도 많겠지만, 8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장애인들의 생활시설 입소에서 사회정착까지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며, 시설퇴소 장애인이 자립 할 때 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자립생활가정을 도입하겠다는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이어 보건복지가족부가 기존의 생활시설 명칭을 거주시설로 바꾸고, 소규모 시설인 그룹홈을 거주시설 개념에 넣어 지원 하겠다는 내용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했다.

이 두 가지 소식은 장애인들의 숙원인 탈시설화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상황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장애인들이 격리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싶다며 시작한 탈시설화 운동은 마침내 근거지를 확보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탈시설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실정이다.

탈시설화, 어디까지 왔고, 쟁점은 뭔지, 그리고 향후 어떤 상황전개가 예상되는지,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함께걸음이 진단해 봤다.


    ⓒ윤미선 기자 주목할 만한 서울시와 복지부의 탈시설화 정책들

사실 탈시설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5년 전에 활동보조인지원제도가 실시되면서 이미 확보됐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일상생활 활동을 보조하고 지원해주는 사람이 없어 수용시설에 보내졌던 중증장애인들이 이 제도가 실시되면서 사회에 남을 수 있게 됐다. 그뿐 아니라 수용시설에 있는 중증장애인들도 이론적으로는 이 제도를 활용하면 굳이 시설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그만큼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지원제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칙적인 얘기지만, 활동보조인 지원제도가 있지만, 만약 시설이 장애인들의 천국이라면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요구는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용시설은 많은 장애인들에게 ‘악의 대명사’로 지탄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설은 남편이 이사장, 부인이 원장, 아들이 총무라는 식의 전근대적인 족벌체제 운영과, 폭행 사망 등의 인권유린이 끊임없이 자행되는, 흡사 감옥보다 더 못한 곳으로 장애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용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시설에 보내진 장애인들의 77%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가족이나 주변의 강요로 시설에 입소했다고 응답했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런 실태를 종합해 보면 현재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욕구는 매우 높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에서 나와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답이 없었던 게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활동보조인지원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장애인이 이 제도만 믿고 무턱대고 시설을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서울시의 전국 최초로 시행한다는 장애인 생활시설 입소에서 사회정착까지 맞춤형 지원 제도가 탈시설화와 관련해서 단연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이 지원 제도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배경에는 석암 장애인요양원에서 나온 장애인들의 66일간 이어진 기나긴 노숙투쟁이 있었다. 서울시는 농성 장애인들과의 합의문 대신 보도자료라는 방식의 대책 발표를 통해, 내년부터 시설 입소를 원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개별 상담을 통해 맞춤 시설 입소를 지원하는 장애인 전환서비스 지원센터를 신설하고,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3~6개월 거주하면서 지역사회 복귀에 적응하는 체험홈을 운영하며, 시설 퇴소 장애인이 자립 시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자립생활가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진호 기자

서울시의 이번 지원 제도는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서 어떻게 살아갈지의 막막함에 대해 미흡하지만 해답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는 내년에 체험홈을 5곳 설치하고, 이번 지원 제도의 핵심인, 시설을 벗어난 장애인이 임시지만 머물 수 있는 자립생활 가정을 20곳 마련하겠다는 지원 제도를 발표했다.

이런 서울시 지원제도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들에게 약간의 억지가 있지만, 사회에 거주지를 마련했으니까 탈시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분명히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의 장애인 복지법 개정안 마련은 생활시설의 명칭을 주거시설로 바꾸고, 그룹홈 같은 소규모 시설에도 대형시설에 준해 똑같이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무회의를 통과해 사실상 확정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 대해, 복지법상에 명시되어 있는 장애인 시설의 세 가지 유형, 즉 생활시설과 공동생활가정(그룹홈), 그리고 단기보호시설의 구분을 없애 모두 거주시설로 명칭을 통일하고, 지금까지 운영비를 적게 지원했던 그룹홈 같은 소규모 시설 에도 대형 생활시설에 지원하는 금액과 똑같은 운영비를 지원하도록 법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 의도에 대해서는 시설의 소규모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복지부 관계자 답변이다.

이어 생활시설의 기능에도 변화를 줘서, 장애인들이 생활시설에서는 먹고 자는 의식주만 해결하도록 하고, 낮 시간에는 지역의 복지관을 이용한다든가, 아니면 시설 내 다른 공간을 만드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장애인들이 이동을 해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말 그대로 시설의 역할은 거주시설 역할만 수행하는 방식으로 생활시설의 기능을 조정해 나갈 방침이라는 게 복지부 관계자가 전하는 개정안 내용이다.

앞으로 건립되는 생활시설은 30인 이상의 규모로 짓지 못한다는 정부 방침이 작년에 마련되고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이번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내용까지 더하면 정부는 앞으로 시설을 없애기보다는 시설의 소규모화에 중점을 두고 시설 정책을 시행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하긴 이런 정책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장애인이 대형시설에만 수용되는 병폐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탈시설화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방안에 화장실 시설이 돼 있는 한 개인운영신고시설 모습 ⓒ함께걸음 자료사진
무수히 많은 탈시설화와 관련된 쟁점들


그러면 이제 근거가 마련됐으니까 장애인들의 탈시설화는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갈 것인가, 사실상 감옥이라고 불리는 대형시설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인가, 그래서 장애인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전면적으로 가능해질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 시기가 문제이지 역사는 장애인이 탈시설화해서 지역사회에서 사는 방향으로 확실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가 과연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인데,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먼저 지금 탈시설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이 뭐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는 쟁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텐데, 단순히 시설을 없애는 것만으로 탈시설화가 가능한 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탈시설화의 전면적인 제도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비롯한 몇 가지 쟁점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거칠게 탈시설화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들을 일별해 보면, 우선 아주 근본적으로는 현재 시설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모든 시설은 악이라는 장애인들 입장과 그래도 시설은 필요하다는 복지부와 시설 운영자 측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입장 차이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장애인 입장에서 탈시설화를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칼자루를 쥔 반대쪽이 있기 때문에 향후 탈시설화 과정이 그리 쉽게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의미하는 근본적인 쟁점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서 아주 쉽게 얘기해보면, 이번 서울시의 탈시설화 지원제도가 나왔을 때 장애계 일각에서는 체험홈과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서울시 지원제도를 장애인복지법에 포함시켜 시행하면 쉽게 장애인들의 탈시설화가 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제시됐다. 장애인이 서울에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도 지원제도로 탈시설화의 혜택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회에서 서울시 지원제도롤 받아서 입법화 하겠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복지부도 입장을 물어봤을 때 입법화는 지금 시점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배경에는 모든 장애인 문제가 그렇듯이 예산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일단 정부 시각에서 바라보면, 장애인을 수용시설에서 집단으로 관리하는 것과 사회에서 개인으로 관리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진호 기자
만약 모든 장애인 개인이 시설을 나와 사회에 살면서 사는데 필요한 서비스 비용을 정부에 요구하면 정부는 지금 시설에 쏟아 붓는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장애인 복지 예산으로 추가 지출해야만 할 것이다. 정부가 탈시설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탈시설화에 소요될 돈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연관해서 역시 돈의 문제인데,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와 무엇을 할 것인가도 탈시설화와 관련된 쟁점이다. 장애인이 사회에서 살 수 있으려면 노동이 됐든지 연금이 됐든지 소득보장 방안이 확실하게 마련돼야 한다. 이 또한 돈의 문제다. 장애인이 단지 시설을 벗어났다고 해서 탈시설화 했다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지금 존재하는 거대 수용시설이 과연 순순히 해체에 응할 것인가도 탈시설화와 관련된 쟁점 중 하나이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거대 시설 문혜 은혜 요양원 예를 들면 수용된 장애인 6백여 명에 직원만 3백여 명이 넘는다.

장애인을 포대에 쓸어 넣고 머리수로 계산해 운영비를 지원받는 시설 재벌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점차 고용이 힘들어지는 실정에서 수용시설이 지역 고용의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인데, 직원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시설을 아무 대안 없이 해체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게 탈시설화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이밖에도 탈시설화와 관련된 쟁점은 끄집어내 보면 무수히 많다. 그 쟁점들을 여기서 모두 열거하기 보다는 이해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장애인 운동가, 지방자치단체, 복지부, 시설협회 관계자와 인터뷰 형식을 빌린 육성을 통해 들어보기로 한다.

   
ⓒ전진호 기자
참고로 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제도권 수용시설 347개에 장애인 2만2천명, 비제도권인 개인운영신고 시설에 5천명 등 합쳐서 2만7천명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탈시화는 이들을 모두 시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과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을 지역사회 자립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게 최종목표일 것이다.

그 목표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이번 서울시 예에서 보듯 장애인들의 치열한 요구와 싸움이 있어야 한다. 결국 탈시설화는 장애인들이 그것을 얼마나 간절하게 갈망하느냐 여부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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