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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화에 빛바랜 ‘장애인 활동보조’ 2돌

[발에 비친 인권풍경]예산 확보 보조인 노동권 보장 시급

본문

[인권오름]

<편집자 주>
세상이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비위생적 환경으로 죽는 5세 이하 세계 어린이가 1천만 명이 넘는 세상입니다. ‘한국여성 자살률 1위, 높은 근로시간’의 현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표를 보며 저임금과 노동 불안정에 휘둘리고, 가사노동과 편견에 휩싸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는 그네들의 박탈달한 인간다운 삶의 현실을 보여주기에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 가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번 호부터 [발에 비친 인권풍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권오름 활동가가 직접 인권침해의 현장이나 인권침해에 대해 고발하는 논쟁의 현장에 찾아가서 취재한 내용을 담을 계획입니다. 취재기사가 한국 인권현실을 보여주고 우리가 만들어갈 인간다운 세상을 그리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랍니다.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사업’이 시행된 지 2년 남짓이다. 보건복지가족부(당시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 만 6세부터 65세 1급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도입했다. 시작 당시만 해도 기대는 컸다. 활동보조가 기존의 부분적 보조와는 달리 '생활전반'을 아우르는 보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애인들의 불만과 우려는 커지고 있다. 예산부족과 민간에 사업전반을 맡기는 구조 때문에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화가 불러온 비효율

2009년 현재, 활동보조 사업에 정부가 참여하는 일은 실질적으로 예산확보와 지침마련 뿐이다. 민간기관이 바우처를 받아 서비스 전반을 운영하는 체계 때문이다. 정부가 2007년 당시 내놓은 계획안에는 모니터링과 평가 항목이 있지만, 관계자들은 사실상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조직2국 남병준 국장은 "활동보조 관련 예산에는 관리감독 항목이 없다.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소리다"라며 "보조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법적배상 등이 고작이다"라고 정부의 관리체계를 꼬집었다.

민간에 사업을 맡기는 부작용은 이뿐이 아니다. 산간지역 등 사업량이 적은 곳은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일부 산간지역 기관은 바우처를 받아서 상근자 1명 두기도 빠듯하다. 경영상 어려움은 활동보조인의 노동권과도 직결된다. 정부에서 예산이 나오지만, 4대 보험, 퇴직금, 고용보장 등 문제는 기관이 주관한다. 보조인의 노동권은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 각 민간기업의 경영악화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물론 정부의 지침에는 4대 보험 등 조건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작년 6월 통계를 보면, 4대 보험 가입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4대 보험 가입에는 기관도 얼마간 비용을 부담해야하고, 가뜩이나 얼마 안 되는 임금에 보험료마저 나가는 것은 보조인에게도 기피대상이다. 활동보조인 임금의 일부를 적립했다가 퇴직하면 찾아가는 무의미한 '퇴직금' 제도도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뤄지고 있다.

부실한 고용조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활동보조의 질까지 좌우한다. 고용조건이 나빠 직업으로서의 '활동보조인'에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 인력 수급도 어렵다. 실제로 보조인은 90%이상이 여자고, 이들 가운데 다시 90% 이상이 40대 이상이다. 또한 시급 6000원에 월 최대 60만원 보장이 어려워 적지 않은 보조인이 아르바이트, 부업 개념으로 활동한다. 현재 활동보조를 이용하는 약 2만 명의 장애인은 60% 이상이 남자인데다가, 연령대도 다양하다. 목욕이나 대소변 등 생활보조에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월 40~100시간, 독거 등 특이경우에 몇 십 시간 추가되는 정도로는 '자립생활'이라는 본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주장이 거세다. 한 달에 80시간씩 업무보조를 받는 문애린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퇴근시간을 넘겨 일하기도 한다. 하루 3시간 이외의 시간은 어려움이 있다"라며 "한 달에 4만원씩 하는 자부담비도 부담이고, 활동보조인이 바뀔 때마다 적응하는 것도 힘들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예민하거나, 낯을 가리는 경우도 있어 보조인이 바뀔 때마다 고생이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장애인복지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장애인권활동가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이름뿐인 예산

2005년 복지부가 실시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 75만 명의 장애인이 시설이나 활동보조 등 지원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35만 명가량은 일상생활 가운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조사된 바 있다. 1급 장애인만 해도 20만 명인 현 시점에서 활동보조를 이용할 수 있는 인원 2만 명 남짓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우리나라 통합재정지출 중 복지지출 비중은 2005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5.4%)의 절반(26.7%) 수준이다. 장애인 복지예산은 더 심각하다. 남병준 국장은 "우리나라는 GDP 기준 세계 12위 대국이지만 GDP 대비 장애인 복지예산은 OECD 국가의 8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다"며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활동보조의 시작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뤄졌다. 사회복지 수준이 비교적 높은 서유럽의 덴마크와 스웨덴은 각각 50, 60년대에, 미국과 일본은 각각 70, 80년대에 활동보조서비스가 도입됐다. 생활시설 위주의 체계에서 자립과 사회참여를 돕는 활동보조로 나아가는 것은 장애인 복지의 제대로 된 수순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장애인 복지의 절반가량이 생활시설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남병준 국장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생활시설에 대해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고, 면회도 어렵다. 장애인의 사생활을 무시한 비인권적 제도다"라며 "시설중심의 장애인 복지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시설이 활동보조보다 예산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인권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문애린씨 함께 저항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타이틀과 함께 탈시설, 자립생활전면 보장 등에 대한 <2009년 420투쟁 장애인생존권 9대 요구안>을 내놓았다.

요구안 가운데 '활동보조 권리를 보장하라!' 항목을 보면 △활동보조인 서비스 예산 대폭확대 △시간제한 폐지, 생활시간 보장 △대상제한 폐지, 2·3급 장애인에게 서비스 제공 △자부담 폐지 △활동보조인 노동기본권 보장, 공공성 강화 △활동보조서비스 개선을 위한 협의기구 구성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례적인 것은 활동보조인의 권리에 대한 요구다. 아직까지 활동보조인이 목소리를 내는 특정한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활동보조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장애인 권리도 보장된다는 차원에서 요구안에 포함됐다. 전장연 측은 "보조인 측에서도 노동권을 주장해 함께할 수 있다면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거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완전사지마비 장애인도 100시간밖에 인정되지 않는다. 자다가 비닐을 덮어줘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완전사지마비 장애인은 혼자 치우지 못 한다"며 "생활시간 보장은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애등급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보조가 필요한 경우라면 누구나 활동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과 함께 "한국 장애인복지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해야한다. 예산확보 등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활동보조인의 현실을 말하는 김한솔씨

[인터뷰] 활동보조인에게 듣는 활동보조의 현실

“자립하다” 스스로 선다는 뜻의 이 말을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는 없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모순적이면서도 당연한 의미가 담긴 말이 자립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의존 관계에 있고 그 의존 안에서 자립한다.

장애인들의 자립은 더 많은 의존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사회의 뒷받침과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장애인들이 혼자 하는 밥 먹기, 이동하기, 공부하기도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누군가의 보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장애인들은 감옥 같은 시설에서 고립돼 생활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장애인들이 목숨을 걸고 활동보조서비스 투쟁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장애인의 날을 맞아 내건 9개 요구안 중 하나가 활동보조 문제다. 주목할 점은 활동보조인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장애인이 일상에서 불편한 것을 활동보조인도 느끼고, 활동보조인이 노동자로서 권리가 없으면 장애인들도 온전한 생활보조를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의 기본권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없는 채 양만 늘리는 식의 정부의 바우처 사업은 공공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의 남병준 국장은 “활동보조인이라고 할 만한 직업이 없기 때문에 보조인으로서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또 장애인 서비스 질 저하 훼손으로 온다. 둘은 결과적으로 정비례하는 관계다.”고 말한다. 올해 9개 요구안에는 활동보조인의 권리와 관련해 ▲ 활동보조인 4대 보험 가입과 근로기준법 준수 의무화 ▲활동보조인 노동조건 개선 ▲활동보조인 교육비 지원 ▲바우처 수수료제도 폐지 ▲서비스 질 관리를 위한 비용 지원이 포함돼 있다.

활동보조를 한 지 6개월이 되었다는 김한솔 씨를 만나 활동보조인으로서 경험과 문제의식을 들어 보았다. 연극을 하던 그는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복지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복지를 공부하면서 장애인들의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라고 한다.

활동보조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엔 시각장애인 꼬맹이의 수영장 활동 보조를 했어요. 저는 처음에 돈을 보고서 자투리 시간에 하기 괜찮다고 생각해서 계속 했죠. 그러다가 뇌병변 장애인 한 분을 하게 됐어요. 그 분은 집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사회생활이나 사람 만나는 걸 잘 못하시더라고요. 지금은 그 분 수업보조를 하고 있어요. 그 분이 손을 못 쓰세요. 필기나 책을 들어주거나 읽어달라는 거 있으면 읽어주고 말씀하시는 거 있으면 잘 듣고 얘기해줘요. 활동보조인 하면서, 활동보조가 뭔지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활동보조를 위해 어떤 교육을 받았나요

원래는 교육을 받고 투입이 됐어야 해요.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까 선투입 후교육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교육을 받았어요. 장애 종류, 활동보조의 마음가짐이라든가 바우처 서비스 등 활동보조사업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것 많이 했거든요. 교육이 60시간인데 6일 만에 끝났어요. 하루에 거의 10시간씩. 시간이 촉박하다보니까 좀 더 중요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빨리빨리 넘어가서 아쉬웠어요.

활동하시면서 활동보조인의 권리가 열악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나요

활동보조인의 권리가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딱히 정해져서 활동보조를 위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 자체가 없어요. 예를 들어 장애인분들은 시간을 더 줘서 이용할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활동보조를 마음대로 썼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건 활동보조인도 마찬가지거든요. 문제가 되는 게, 180시간 이상 넘어가면 추가 수당을 줘야한다 말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웬만해서는 180시간을 안 넘겨서 일을 시키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생계가 걸리신 분들은 난감하죠.

활동보조인에 대한 체계가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직업으로 생각할 수도 없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 복지 후생관리도 전혀 돼 있는 게 없고. 알아보려면 활동보조인 하는 사람이 직접 여기저기 뛰어다며 자기가 직접 알아봐야 하니까.

활동보조인들은 사이에서는 연대의 움직임이 있나요

활동보조인끼리는 안돼요. 대신에 장애인분들하고 같이는 하죠. 그게 아이러니하더라고요. 당사자일인데. 그렇다고 활동보조인들이 모일 기회도 없고.
다른 나라를 보면 되게 잘 돼있어서 직업으로서 자부심도 갖더라고요. 우리는 정해진 게 거의 없잖아요. 활동보조서비스가 시작되긴 했지만 번갯불이 콩 구워 먹듯이 하다보니까 체계화된 게 거의 없더라고요.

활동보조를 하면서 이것만은 당장 바뀌었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다면

일단 바우처 사업이라고 해서 실시간 결재를 하거든요. 8시간단위로만 끊어야 해요. 10시간을 한다면, 시작할 때 찍고 끝날 때 8시간을 체크해서 찍고, 다시 시작을 해서 2시간 체크해서 끝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요. 실시간 체크를 못하면 사유를 적어야 해요.

무엇보다 장애인이 불편해 하는 건 활동보조들도 불편해하다는 것. 함께 움직이니까요. 예를 들어 휠체어분이나 거동하기 힘든 분이면 이동할 때 전철을 타도 엘리베이터가 매 구간 설치된 게 아니라서 이동하기 힘들잖아요. 폭력이라고 생각되더라고요. 설치한다고 해놓고서 설치를 안 하니까 그걸 타기 위해서 되게 가까운 거리인데도 빙 돌아서 가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건 함께 다니는 활동보조인도 되게 싫죠. 지하에서 움직이다가 힘이 다 빠져요. 그렇다고 저상버스가 많은 것도 아니고.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활동보조인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을 때, 장애인 분이 불편하신 것에 대해서만 도와드리고 부탁하는 거나 들어주면 편하긴 하죠. 그런데 장애인 분들도 정말 그걸 원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통분모를 두고 생활을 같이 하는 거잖아요. 일과 사생활에 선을 긋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혼란스러운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아직 거기에 대해선 답을 못 내렸는데, 선을 긋고 제 할일을 하냐, 아니면 그 분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이야기를 조언 해드리냐. 저는 그 분한테 도움이 되는 걸 남한테 욕을 먹어도 해드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교육할 때도 활동보조서비스의 내용이나 거기서 사업 자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얘기해줘요. 그런데 (인권)감수성이 필요한 부분들은 얘길 안 해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그쪽 부분이 저는 더 크다고 봐요. 생활을 같이 하는 관계잖아요.


작성자이진주, 장윤미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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