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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정신장애인과 인생 이야기의 존중

장애학회

본문

*이 글의 내용 중 일부는 필자의 저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 2018)에 서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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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이야기

김민아는 『아픈 몸, 더 아픈 차별』에서, “당신의 병에 대해 들려주세요”라고 아픈 사람들에게 청하면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인생 역정(biographical history)”을 들려 달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고 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사는 모양은 어떠한지 한참을 풀어놓은 끝에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이 병이 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을 마쳤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진정사건 조사를 위해 여러 정신장애인을 만났다. 그들은 조사를 나간 나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곤 했다. 그들은 설령 자기에게 병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이 현재 폐쇄병동에 갇혀 있는 이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배우자나 부모와의 갈등, 친구의 배신, 느닷없이 찾아온 재난, 어린 시절의 학대, 자신이 늘 유지한 식습관과 수면 패턴 등을 돌아보며 각각의 사건을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여 자신이 왜 지금 그곳에 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또 나에게 해명하려 애썼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관통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의미의 줄기를 찾아 자기 삶을 일정한 이야기로 구성하는 데 능숙한 면모를 보이는 것 같다.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들은 모두 탁월한 이야기꾼이 될 것이다. 탁월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 흥미진진하고 극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삶에서 발생하는 우연하고 예상치 못한 개별 사건들을 날줄과 씨줄로 꿰어, 자신이 지내온 전체 삶에 통합하는 데 뛰어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X 축구팀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X의 실력은 별 볼 일없어도 경기 중에 절대로 반칙을 하지 않고, 늘 상대팀과 팬들을 존중하며,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A는 자신이 X 축구팀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이유가 되는 그 태도를 다른 삶의 영역에서도 가급적 일관되게 유지하려 할 것이다. 티가 나지 않아도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고, 수능 고득점을 맞거나 최고 연봉을 받지 못해도 반칙을 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은 삶을 사는 데 무게를 두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A는 세상에 관한 여러 가치관, 대응 방식, 태도를 가능한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자기서사(self-narrative)를 만든다. 이러한 자기 이야기 만들기는 별 생각 없이 선택하고 행동한 것들을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며 진행되기도 한다.

각자의 인생 책을 쓰는 저자인 우리 대부분은 사소해 보이는 선택과 취향, 선호, 삶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과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합하며 정합적인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경향이 있기에, 종종 그러한 통합성이 어긋날 때 스스로에게 큰 모순을 경험하는 것 같다.

 

존엄한 자기 인생의 저자

로널드 드워킨(R. Dworkin)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전체 인생을 정합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러한 관심을 비판적 이익(critical interest)이라고 부를 수 있다. 드워킨에 따르면 우리 대부분은 직접적인 즐거움이나 만족감 같은 경험적 이익(experimental interest)도 물론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전체의 삶을 더 통합적으로(‘더 좋게’) 만드는 비판적 이익에도 관심이 많다.

어떤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함은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저자로서 존중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는 현대 입헌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질서가 인간의 존엄을 정의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각 나라의 최고법원들도 그와 유사한 견해로 인간의 존엄을 정의하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자율적으로 써 내려가는 자기 인생의 저자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가 각자 고유한 이야기와 관점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차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 역시 우리가 가진 고유성, 자기 삶을 직접 작성하는 저자성(authorship)이 침해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법은 이렇게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인간존엄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법은 개인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이야기를 삭제하기도 한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정신건강복지법)을 비롯한 정신건강 관련 법체계는 정신장애인 개개인의 이야기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 특히 입원 결정과 관련된 의사의 진단은 철저히 정신의학적 증상의 경중, 자신과 타인에 대한 해악가능성을 분별하는 데 집중됐다. 강제 입원 요건에 해당하는 정신의학적 증상을 보이더라도 환자 개인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풍부할 수 있다.

우리 법은 의사의 ‘진단’만으로 강제 입원 및 치료가 가능한 지위가 환자에게 부여되는 이른바 지위 접근(status approach) 방식을 택한다. 이 접근 하에서는 진단의 전제가 무엇이든 진단만 있으면 그 밖의 능력에 대한 사정(assessment) 없이 곧바로 환자에 대한 후견적 개입이 허용된다. 자기 결정 능력이 있는 경우라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강제 치료나 강제 입원이 가능한 지위가 결정되면, 이 환자의 자기 결정 능력은 그 자체로 무시받게 되는 셈이다. 이는 결국 무엇인가를 결정하는데 장애가 없는 사람조차 자신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할 가능성이 보이면 강제 개입이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결론은 그 당부를 떠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헌법질서와 정합되는 결론인가. 다른 한편 개인마다 구체적인 생애사에 따라 어떤 면에서는 능력이 다소 제한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충분한 능력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위 접근은 이러한 개별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마치 장애인등급제가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한편, 지위 접근과 달리 능력 접근(capacity approach)은 개인의 자기 결정 능력 및 기능에 대한 엄밀한 테스트와 사정 과정에 기초하는 접근법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능력 접근이 얼마간은 활용된다. 구체적인 과업별로 특정 행위에 대해서만 후견적 개입을 하기 때문에 지위 접근보다 자율성 축소의 정도가 낮고,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에 주목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인권법 담론이나 장애학 영역에서는, ‘정신 능력’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점에서는 능력 접근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망상을 가진 저자를 존중하기

정신장애나 발달장애 등 장애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잘못 인식할 수도 있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 평생 애쓴 아버지를 오해할 수도 있고, 본인이 노벨상을 받으리라 막연하고 과장되게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자기 인생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 동원한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해서 그의 인생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구축된 정체성이 언제나 무시되어도 좋을 이유는 없다. 물론 잘못 인식한 사실들의 문제를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좀 더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지지하며, 논리적인 비약을 지적해 줄 수도 있다. 그 방법은 정신과적 상담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약물치료일 수 있으며, 가족・친구로서 나누는 대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근거들을 평가한 후 한사람이 쌓아 올린 삶의 가치와 인생의 ‘좋음’에 대한 지향들 자체를 쉽게 부정할 자격이 의사나 법률가, 사회복지사 등에게 있을까?

보르톨로티(L. Bortolotti)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 역시 정신질환에 따른 망상이나 작화(作話)가 개인의 저자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계기로 어떤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 이야기가 그 사람의 앞으로 할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는 자기 삶의 저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 진단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작은 것을 과대평가하거나 자기 능력을 맹신한다. 은행 봉투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을 모으는 데 평생의 시간과 재산을 바치거나, 엘론 머스크도 아니면서 죽을 때까지 화성에 가기 위해 삶 전체를 디자인하고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터무니없는 행동은 주변 사람들의 속을 썩인다. 우리는 왜 그 사람이 절대로 화성에 가기 어려운지 현실적인 조건을 알려줄 수 있지만, 그가 화성에 가기로 결정한 이유와 그 목표에 기초하여 구축하는 삶의 서사가 잘못된 ‘사실 인식’에 근거했다는 점만으로 그 서사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비록 화성에 가지 못하겠고, 그 때문에 불필요하게 돈과 시간을 낭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낯설고 새로운 세계에 진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인생을 디자인한 그의 성향과 기질, 그에 기초한 인생 이야기 자체는 여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비판 이전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진지하게 존중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정신장애인의 자율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작성자글. 김원영/변호사, 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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