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출신 장애여성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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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현지시각) 뉴욕 UN본부에서 치러진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장애여성문화공동체 김미연 대표가 176개국 중 99개국의 지지로 선출됐다. UN 장애인권리위원은 UN 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에 가입한 177개 당사국이 비준 후 2년 이내에 제출하는 첫 국가보고서와 이후 4년마다 제출해야 하는 최종견해를 심사하고,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대표로는 2010년 김형식 위원이 최초로 당선된 이후 재선까지 성공해 8년간 위원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는 12월 임기가 끝나는 김형식 위원에 이어 내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김미연 대표를 만났다.
선출 이후 많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 첫 여성 위원’이라는 수식어가 눈에 띈다.
위원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6월 제9차 UN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 회의 때 한차례 선거가 있었는데, 당시 출마한 3명의 장애여성 후보가 단 한 명도 선출이 안 됐다. 문제는 임기가 끝나가는 한 명의 여성 독일 위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17명의 위원이 모두 남성이었다. 이번에도 여성이 선출되지 못하면 단 한 명도 여성위원이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위원 구성에 관한 제34조는 위원회의 성별 균형을 중요한 요소로 권고하고 있다. 협약이 제정된 2006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최대 8명의 장애여성 위원이 있었는데, 이렇게 균형이 깨진 것은 처음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세계 장애여성 리더들과 국제장애단체 등이 함께 당사국들을 대상으로 여성후보를 지명할 것과, 선거에서는 여성 후보를 선출할 것을 요청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장애여성인 나를 후보로 지명하고 선거 캠페인을 펼쳤다.
여성 위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를 보충설명 해달라.
젠더 관점과 장애여성 입장의 관점을 가진 위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은 각 비준국가에 협약 내용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촘촘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장애를 가진 여성위원이 부재할 경우, 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장애여성 및 장애소녀에 대한 국가의 의무와 책임에 관한 권고가 간과되기 쉽다.
NGO 출신 위원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은 박사, 교수 출신 등의 엘리트 중심이었다. 사실상 NGO 출신이 선출된 것은 내가 처음이다. 하지만 NGO 출신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 한 예로 위원으로서 NGO 단체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후보 시절 세계 NGO 단체로부터 본인들의 목소리를 얼마만큼 잘 전달할 수 있는 위원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들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국제 사회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원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NGO 출신이었기 때문에 시민사회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인권활동 영역에서 배출된 위원으로서 그 목소리들을 전달하는 좋은 메신저가 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
그동안 경험했던 NGO 활동이 앞으로의 위원 역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의 장애인으로서 또한 여성으로서,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과 인권의 발전이 지난 나의 50년 생애와 함께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후 11개월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됐다. 내가 태어난 66년도에는 소아마비 백신이 충분치 않아 모든 신생아들이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다. 장애관련 법도 전무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원조가 필요한 수혜국이던 한국은 이제 지원국이 됐고, 국내 장애관련법도 크게 14개 정도나 된다.
우리나라의 장애 역사의 발전은 장애인 당사자를 포함한 장애계가 투쟁하고 정부에 요구해 온 운동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에 한명, 장애여성 당사자인 동시에 활동가로서 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비롯해 관련법 제정 과정에 참여한 경험들이 있다. 이러한 한국장애인 운동 참여 경험은 장애관련 법이 하나도 없는 국가부터 이른바 ‘장애인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다양한 상황과 이슈들에 관해 누구보다 잘 공감할 수 있는 역량의 바탕이 됐다.
북한 대사가 축하를 전한 게 사실인가.
당선 발표 후 찾아와 북한대표부 관계자가 직접 찾아와 축하해 줬다. 당일은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담이 있던 날이었다. 2016년 12월에 북한이 협약을 비준했으니, 곧 첫 번째 국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번 일들을 계기로 북한 장애인 인권 이슈의 문호가 열릴 수 있길 바란다. 이런 역사적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국제사회 활동이 더 활발해질 텐데 특별한 각오가 있나.
이제 국내와 국제 활동이 경계가 없는 시대다. 국내 이슈가 국제 이슈이고 국제 이슈가 바로 국내 이슈다. 특히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의사소통과 정보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후보시절 위원회가 세계 시민 사회와 협력해 나갈 방안을 제시하라는 질문이 있었다. 온오프라인 모든 영역을 활용해서 특히 온라인을 활용해 어느 한 영역에서도 소외되지 않고 활발하게 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가난한 국가들은 국제 교류를 위한 경비 마련의 어려움이 있어 소외되기 쉽다. 인터넷과 SNS를 잘 활용해 세계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참여를 이끌고 싶다. 후보 시절 장애여성, 소녀, 학대피해 장애인, 난민 장애인 등 특히 소외되기 쉬운 영역에 기여하고 싶다고 공약을 밝혔었다.
국내 장애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협약 이행과 관련해 위원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 보인다.
내가 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주요한 원동력은 협약 제정을 위한 제2차 특별위원회부터 마지막 제8차 특별위원회 활동에 참여해 온 한국 장애계의 열정과 역사에서 비롯됐다. 초안에 없던 장애여성 조항과 여성주의적 관점의 이슈를 일으키고, 정부로 하여금 특별위원회에서 장애여성 단독조항이 성안되도록 이끈 것은 UN 장애인권리협약제정연대를 꾸려 활동한 한국 장애인단체들의 힘이었다. 이제 우리나라 장애계의 활동가 출신인 나를 장애계가 잘 활용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 정부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위원으로서 우리나라가 협약을 완전하게 이행하고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도록 촉구해 갈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 되려면 한국 장애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장애계가 장애인 인권과 정책에 관한 이슈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협약과 나를 활용해주길 바란다. 더불어 한국 장애계의 활동이 국제적 활동으로 확장해 나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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