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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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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은 349호부터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장애인에 속하는 시청각중복장애인 당사자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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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춥다는 러시아보다 더 영하의 기온으로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정말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는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습니다. 벚꽃도 만개하고 언제 추웠냐는듯 화사하고 따뜻한 봄기운이 여기저기 가득합니다. 대학 캠퍼스도 청춘들의 열정과 봄의 기운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이 재잘거리며 즐겁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제가 새내기였을 때의 그 설렘 가득했던 순간들을 회상해 보게 됩니다.

저는 태어나 대구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19년 동안 포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구대학교 법학부에 수시로 합격하게 된 뒤, 처음으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대구대학교 법학부 06학번의 모임’이라는 다음 카페를 찾게 됐는데, 그곳에서 앞으로 함께 대학생활을 하게 될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아직 만나기 전 온라인에서 서로 소개도 하고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걱정도 공유하면서 그렇게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동기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말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카페 채팅방의 글자크기가 너무 작아서 읽기가 불편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1:1 채팅이 아닌 여러 사람이 동시에 글을 입력하기 때문에 정말 빠른 속도로 대화내용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의 시력으로 대화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문득 동기들 중 한 명이 그러더라구요. “관찬아, 너는 왜 말을 잘 안 하니?” 라고요. 그러니까 다른 동기들도 한마디씩 보태면서 저도 말 좀 많이 하라고 그랬지요. 온라인상에서 대화하고 있지만 곧 만날 동기들, 저도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때 제가 가진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저시력이라서 글씨가 작기 때문에 대화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그리고 청각장애도 가지고 있다고요.

그랬더니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채팅방의 글자가 막 커지는 거예요! 동기들이 저를 배려해서 채팅방의 글자크기를 최대치로 크게 해서 글을 입력했던 것입니다. 너무 고마웠죠. 덕분에 저도 그때부터는 동기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의 첫 지하철 이용기

포항에서만 지냈던 저로서는 기숙사 생활을 비롯해 타지에서 부모님의 손길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참 큰 도전이었습니다. 물론 새내기인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는 조금 더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에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포항에는 없는 지하철을 제대로 타본 적이 없었던 저는, 대학생이 돼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보게 됐습니다. 동기들과 대구시내에 나가게 돼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전혀 몰라서 동기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했습니다. 돈을 승차권판매기에 넣고 승차권을 받는 것까지는 똑같이 했는데요, 개찰구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기들이 차례대로 개찰구의 특정 부분에 승차권을 가져다 댄 뒤 좁은 통로를 통과하더라구요. 동기들 한 명 한 명이 하는 것을 자세히 보고 따라하려고 저는 가장 마지막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승차권을 동기들이 찍던 그 특정부분에 찍고 개찰구를 통과하려고 하는데… 어? 아무것도 없었던 개찰구의 양쪽 끝에서 갑자기 뭔가 툭 튀어나와 제가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도록 가로막았습니다. 다른 동기들은 자연스럽게 개찰구를 통과했는데 저만 통과하지 못하니까 당황스럽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승차권을 개찰구의 특정 부분에 대면 ‘띡!’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난 다음에 개찰구를 통과해야 하죠. 제가 그 특정 부분에서 조금 벗어난 애매한 곳에 승차권을 가져다 대었을 수도 있고, ‘띡!’하는 소리 자체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다른 타이밍에 개찰구 진입을 시도해서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뒤로 대구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지하철을 타게 될 때마다 개찰구를 통과한 경우보다 통과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어느 지역의 지하철역은 승차권(또는 교통카드)를 가져다 대면 ‘띡!’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통과해도 된다는 신호로 개찰구 부분에 불빛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저의 시력으로는 그 불빛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빛이 있는 위치를 알더라도, 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선명하게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내버스는 좀 나을까?

시내버스를 탈 때도 교통카드로 단말기에 터치를 하는 식인데요, 이건 제가 혼자서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구경북지역의 시내버스는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터치하면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통카드에 남은 잔액이 나오고요. 솔직히 저는 그 ‘안녕하세요!’ 라는 소리를 못 듣고, 잔액이 얼마 남았다고 뜨는 숫자도 자세히 보지 못합니다. 대신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터치할 때 확실하게 뭔가 진동 비슷한 느낌이 와요. 내가 교통카드를 제대로 터치했다는 그런 느낌 말이죠.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느낌’이 항상 옳은 건 아니었어요. 한번은 제가 타야 하는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버스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타는 바람에 평소 지갑 속 교통카드가 꽂혀있던 곳에서 카드를 꺼내 교통카드인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단말기에 터치했어요. 터치했을 때, ‘안녕하세요!’까지는 못 들어도 분명 무언가 전달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빈자리로 가서 앉았지요.

앉아서 달려오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버스가 얼마 가지 않고 도로변에 멈췄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곳도 아니고 도로의 중간 부분이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어요. 고개를 들고 앞을 보니, 버스기사 분이 저한테로 오셔서 뭐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고 지갑을 꺼내 확인해 보았습니다. 교통카드가 꽂혀 있다고 생각했던 곳에는 교통카드가 아닌 화장품 멤버십 카드(!)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터치할 때의 진동 비슷한 느낌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교통카드의 잔액이 부족하다는 알림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통카드 잔액을 미리 확인하고, 버스를 탈 때도 교통카드인지 화장품 멤버십 카드인지를 확실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생기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철은 개찰구에 터치할 때 전달되는 그 ‘띡!’의 느낌이 시내버스 단말기에 터치할 때의 그것보다 확실히 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구에서 처음 지하철을 탈 때의 그 경험 이후, 몇 번 반복해서 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습니다. 혼자 지하철을 타야 할 경우에는 일부러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마지막 순서에서 개찰구 진입을 시도합니다. 가능한 한 실수하지 않고 한 번에 통과하기 위해 신중하게 시도하려고 말이죠. 그래서 그땐 승차권을 쥔 손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혹시 동행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제가 제대로 터치했을 때 진입하면 된다는 신호를 보내달라고 하거나, 대신 터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산 넘어 산, 대중교통 이용하기

사실 지하철이 타기 전 개찰구 통과부터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시내버스도 이용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타야 하는 버스의 ‘번호’를 잘 보지 못해서 힘든 점이 있습니다. 포항에서는 시내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이 지상에 가까이, 그리고 세로로 설치돼 있습니다. 그래서 전광판에 가까이 가면 제가 원하는 번호의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가 주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은 늘 일정한 번호의 버스가 왔고, 경로도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이용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구대학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광판이 정류장 위에 설치돼 있습니다. 전광판 바로 아래로 가서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육안으로 오는 버스를 봐야 했는데, 제 시력으로는 버스 앞에 있는 번호가 보이지 않습니다. 버스 앞에 있는 번호 대신 버스 옆면에 크게 나와 있는 번호를 봐야 합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버스 옆면에 있는 번호를 확인하고 타기까지는 버스 기사분들이 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서서 버스의 옆면을 확인하고 버스를 탑니다. 대구대학교 버스정류장은 늘 학생들로 붐비기 때문에 여유 있게 버스 번호를 확인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이 타지 않는 한적한 정류장에서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게 됩니다.

불편한 점은 버스의 번호 확인뿐만이 아닙니다. 대구대학교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 중에 840번 버스가 있는데요, 이 버스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대구대학교 정류장에서 승차하면 대구대 삼거리까지 가서 하나는 영남대 쪽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경일대 쪽으로 갑니다. 운행 노선이 다른 거죠. 이 두 종류의 버스를 구분하는 방법이 버스 앞에 써 있다고 합니다. ‘영대방면’ 또는 ‘경일대방면’ 이라고요. 솔직히 10년 넘도록 단 한 번도 그 글자를 제 눈으로 확인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글자를 읽기 위해서는 버스 앞에 정말 가까이 가서 확인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두 종류의 버스를 혼동해 탄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혼자서 버스를 타보고자 하는 의지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다가 840번이 오면 기사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이 버스 영대 쪽으로 가는 거 맞나요?” 그럼 기사분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말로 대답하시는 분도 있고 손이나 고개를 흔드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시기도 하는데요, 말로 대답하는 경우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고 제스처는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거기에서 제가 다음 행동을 취하기 전에 버스는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영대로 가는 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갔을 확률이 높았겠죠.

또 다른 방법은 지인이 추천해주신 방법입니다. 840번 버스가 와서 멈추면 얼른 버스 앞으로 갑니다. 기사가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준비해간 A4에 매직으로 큼직하게 쓴 걸 펼쳐보입니다. “영대 쪽으로 가는 버스 맞나요?” 이 방법은 솔직히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버스 앞에 서 있으니 거리가 더 멀어지므로 기사분의 제스처를 더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보통 저의 행동을 보고 버스가 떠나지 않고 계속 정차해 있으면 ‘아, 영대 쪽으로 가는 버스구나.’ 하고 타고, 그냥 버스가 출발하면 ‘경일대 쪽으로 가는 버스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운행해야 하므로 대부분의 버스는 제가 충분히 번호를 확인할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확인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시고 도와주려 하시는 좋은 기사님들을 만날 때는 그 배려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아주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지만, 시각과 청각에 장애를 가진 사람은 교통수단을 한 번 이용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잔존시력이 남아 있는 저도 이동이 쉽지 않은데, 저보다 더 중증인 시청각장애인(예를 들면 전맹·전농)은 얼마나 더 어렵고 힘든 환경일까요? 활동보조인이나 동행하는 사람이 없으면 외출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시청각장애인 역시 장애인 당사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온전히 누리며 자유롭게 외출하고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길 소망합니다.

작성자글. 박관찬/시청각중복장애인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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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서영님의 댓글

김서영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의 네이버로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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