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1층이 있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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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러 가고자 할 때, 우리는 쉽게 ‘카페’를 떠올린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거나 간단한 간식이 필요할 때는 으레 ‘편의점’을 찾아본다. 번화가에서라면 카페와 편의점은 조금만 두리번거리면 시야에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동약자인 장애인들은 그 수많은 매장 중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다. 턱과 계단 앞에서 번번이 난처해지고, 눈앞의 매장을 두고도 시간을 들여 이용할 수 있는 매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곳만 가야하는 현실은 여전히 벽으로 놓여있다.
모두의 접근권을 위한 소송
‘공중이용시설’이란 편의점, 커피전문점, 약국, 음식점, 제과점, 미용실 등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설들을 말한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2016년 인권상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지역에서 주출입구에 2cm 이상의 턱 또는 계단이 있는 공중이용시설은 83.3%였다. 약 30%의 공중이용시설(이하 시설)만이 경사로를 설치했지만, 그 중 법적 기준을 충족해 휠체어 등의 이용이 용이한 경사로는 39.4%에 지나지 않았다. 장애인, 임산부, 노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에 접근해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이하 편의증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제정 취지에 맞는 실효성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에 지난 4월, 장애인 단체들과 공익 변호사들이 나서 접근권 확보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른바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로,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 노약자 등 모두의 접근권을 위한 소송이다. ‘1층이 있는 삶’ 소송의 피고는 투썸플레이스 (커피전문점)와 GS리테일(편의점), 호텔 신라, 대한민국 등 네 곳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단법인 두루,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 차별철폐연대, 법무법인 디라이트, 원곡법률 사무소는 소송을 통해 장애인, 노약자 등이 커피전문점과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길 요구하고 있다.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이태영 변호사 인터뷰
장애계에서 이동권과 더불어 접근권은 오래된 문제로 모두가 인식하고 있던 주제였다. 그런데도 정확히 공중이용시설을 대상을 특정해서 소송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난 촛불 집회 때, 참여를 위해 광화문으로 나온 장애인들이 많았다. 보통 집회 참가자들은 그근처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휴식하거나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곤 했는데, 장애인들은 그게 힘들었다. 당시에 집회에 참가했던 장애인 당사자들과 얘길 나눴는데, 그분들이 광화문에못 들어가는 카페, 식당, 편의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장애인은 집회 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비단 집회 때뿐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을 당사자분들과 마주치면서 자주 들어왔다. 그런 경험들을 청취한 것들이 아이디어가 돼 소송을 기획하게 됐다.
피고로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을 특정했다. 선정한 이유가 있었나?
커피전문점은 꼭 하자는 생각이 우선 있었다. 커피전문점은 일상적인 휴식 공간이자 커뮤니케이션 장소인데 거기서 배제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소송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먼저 요구된 곳이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곳인데, 거기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는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처럼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일상에서 필요한 걸 구매할 수있는 곳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문제 제기가 많았다.
수많은 커피전문점 중에 피고를 선정한 것은 일단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이고, 매장이 대체로 넓은 커피브랜드라는 점, 이미 매장이 많은 상태에서 지난해 가장 매장이 많이 늘어난 곳이라는 점에서였다. 앞으로 더 많은 매장이 생길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으니 더더욱 피고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편의점은 커피전문점에 비해서 매장 수가 훨씬 많다. 편의점브랜드 중 피고로 특정된 곳이 직영점이 가장 많아 선정했다. 본사와 소송을 해서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매장은 가맹점보단 직영점이기 때문이다. 직영점은 본사에서 원하는 대로 매장을 꾸릴 수 있지만, 가맹점은 가맹점주가 운영 주체이기 때문에 접근성을 높이도록 강제하기 어렵다.
대형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국가에게도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국가가 앞서 할 수 있었던 조치가 무엇이었을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10월, 최종견해를 통해 한국의 건물 접근성 기준이 면적, 건축일자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우려하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9조 및 일반논평 2호에 따라 건물의 크기, 건축일자에 관계없이 접근성 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2017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부터 신축, 증축, 개축되는 50제곱미터 이상 공중이용시설에 대해 출입구에 높이 차이 제거 등이 의무화되도록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충분히 국가가 나서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접근성 확보를 해야 하는 시설에서 제외되는 기준은 ‘300제곱미터 미만’, ‘1998년 이전 건축물’이다. 300제곱미터는 약 90평이다. 90평이 넘는 카페, 편의점, 식당 등은 흔하지 않다. 관련 실태조사를 보면 종로 등 서울쪽 시설은 95% 이상 해당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법상 제외되는 곳을 빼면 3~5%의 시설만 법을 따르는 건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건축연도 기준에서도 리모델링은 제외된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리모델링을 하는 곳이 많은데, 건물 안은 다 바꿔도 외부가 그대로면 적용이 안 된다. 국가가 나서서 편의증진법 규정 취지에 맞게 폭넓게 인정될 수 있도록 충분히 바꿀 수있었다고 생각한다. 건축연도 기준은 아예 없애고, 면적은 15평 정도로 확 낮춰야한다. 여기에 과도한 부담에 따른 예외조항을 두면, 영세 매장은 제외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도한 부담은 어디까지가 과도한 부담인지?
과도한 부담의 기준은 세밀하게 살펴서 정해야 하는 과제라 당장 명확하게 답할 수는 없다. 다만,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소, 중, 대로 매출액을 나눠서 판단한다. 해당 사업주가 연 얼마 이상 벌면 연간 어느 정도 비율로 경사로나 화장실 설치 등을 하게끔 한다. 생각보다 제외되는 경우가 드물어서 대부분은 다 설치 대상이다.
이 소송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1층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은 ‘저녁이 있는 삶’에서 따왔다. 야근을 자주 하는 직장인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저 표현을 보며 씁쓸해하는 건 저녁이 있는 삶이 사실 당연하기 때문이다. 1층이 있는 삶을 원하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송은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의 첫 걸음일 뿐이다. 카페, 편의점을 넘어서 추후에는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접근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시작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 있다. 그러한 권리를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는 데에 이 소송이 기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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