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관광, 복지인가? 산업인가?
본문
함께걸음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일부 개정을 통한 ‘관광활동의 차별금지’ 조항 신설에 맞춰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이후 관광에서는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를 주제로 2018년 연간 격월 연재를 진행합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장애인 관광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장애인 이슈를 복지적 측면에서만 다뤄왔다. 언제나 지원자, 대상자로서만 인식하다 보니 ‘소비자’라는 인식이 전무하다. 이러한 인식이 발생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노동중심적 사고에 의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던 사회적 문화이고, 둘째는 장애인을 불쌍하고 안타깝게만 다뤄 장애인의 이미지를 고정시켜버린 미디어 매체의 영향력이다.
이 두 가지 원인이 동시에 결부됐을 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고정되기 쉽다. 예컨대 장애인은 일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불쌍하며 안타까운 사람으로 비춘다.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시청자로 하여금 감성을 자극하기 좋은 소재다. 이것은 빈곤 포르노에 가까우며, 앞으로의 사회를 위해서라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가장 피해야 할 방식이기도 하다.
장애인을 둘러싸고 ‘관광’이라는 주제를 논하기 쉽지 않았던 데는 빈곤 포르노의 영향도 일부 존재한다. 일례로 최근 수급자 아동이 외식업체에서 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민원이 제기됐다. 수급자면 수급자답게 혹은 장애인이면 장애인답게 살아야 하는 비뚤어진 사회적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목이다. 관광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나보다 잘 산다”, “나도 바빠서 여행을 못 가는데 장애인이 무슨 여행이냐”, “팔자 좋다”는 식의 비뚤어진 시각이 결코 없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관광이나 여행을 먹고 노는 ‘사치’의 영역으로 간주했다. 어쩌다 한번 부리는 나들이로 인식되다 보니, 복지적 관점에서 관광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사회복지에서는 관광을 특별한 이벤트로 인식해 왔고, 사회공헌(CSR)의 면에서도 취약계층을 위한 시혜적인 이벤트로 간주돼 왔다. 물론 지금도 만연하다.
학계에서도 관광을 여가 복지의 일환으로 언급하기는 하나,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과 달리 개인에게 나타나는 삶의 질, 효용성, 안녕감(wellbeing)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불편함, 어려움, 한계점을 주요하게 다루는 실정이었다.
최근 무장애 여행·장애인 여행 등 일련의 사회 이슈로서 ‘관광’이 부각되면서, 장애인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물론 관광할 수 있는 권리,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하다면, 장애인 정책은 지금보다 더 크게 확장되기 어렵다. 복지정책만이 장애인을 다루는 영역에서 탈피해, 관광·여가·문화와 같은 일상생활 관련 정책에서 장애인을 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무장애 관광 산업
우리나라 무장애 관광은 이제 겨우 초기 걸음마에 불과하다. 영국이나 호주, 스페인,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을 관광 소비자로서 인식하며 이들을 위한 관광 서비스 개발이 지속돼 왔다. 일례로, 해외 관광을 경험해 본 국내 장애인 여행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바로 장애인 관광객에 대한 선진국 시민들의 태도다. 편의시설과 같은 환경적 측면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장애인 ‘고객’이 방문했을 때 종사자의 행동이 장애인을 한 명의 소비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장애인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무장애 관광이 복지 분야가 아닌 관광 산업에서 논의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 스포츠를 스포츠 분야에서 다루듯, 관광도 고유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관광에서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와 관광의 이념적인 융합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융합에서 나아가 구체적으로 이를 실행하는 과정은 반드시 관광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무장애 관광은 관광학문과 관광산업에서의 접근이 중요하다.
관광산업에서의 무장애 관광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틈새시장(niche market)의 일환으로 언급되지만 발전 가능성은 밝다. 그동안의 관광은 여가산업으로서 양적인 성장에 매몰됐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관광을 국민의 휴식과 매개해 일종의 복지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무장애 관광이 복지가 아닌 산업에서 논의돼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후순위로 밀리는 관광을 복지 정책에서 논할 이유가 없다. 실제 사회복지 정책을 살펴보면 빈곤, 노동, 의료와 같이 의식주와 상당히 밀접한 욕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관광 역시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될 수는 있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놓고 본다면 관광과 복지는 결이 다르다. 더욱이 장애인 스포츠 역시 체육분야에서 담당하고 있는 만큼, 무장애 관광 역시 관광 정책의 발전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을 복지 분야가 아닌 산업에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나라의 무장애 관광 시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장애인 여행사나 관광 상품 판매가 있었지만 대개 지체장애인(휠체어) 중심이며, 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협소하고 작았다. 장애인 외에 다른 관광약자 계층에 대한 흡수를 하지 못해 시장 발전을 이루지 못한 한계도 있다. 더욱이 무장애 관광은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아니라, 장애인‘에서’ 출발해 다양한 관광약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늘어날 소비 계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가에 대한 권리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동등한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복지에서는 여가를 통해 신체 건강은 물론 심리적·정서적 안녕(well-being)을 꾀할 수 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여가’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이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의 경제활동 수준이 낮고 여가보다는 장애인 일자리가 더 요구되는 상황에서, 소비중심적인 관광은 비경제활동 인구에게 과도한 지출을 요하는 사치 행위로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거나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휴식을 논할 권리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식의 노동중심적인 사고를 되짚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이미 저성장·고실업 시대에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과 연령에서 취업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일자리 분배를 논하기보다, 사람과 기계가 노동 경쟁을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결국 복지나 사회적 측면에서 ‘관광’은 여가로 인식되고 있으며, 여가를 노동의 반대의미로 인식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일하지 못하는 수많은 복지 대상자들에게 여가를 조건적 행위로 인식시키기 때문에 비경제활동 인구라고 할지라도 자유롭게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며, 여가를 통해 생산적인 행위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을 더 추구해야 할 것이다.
반면 관광학·여가학에서의 관광은 소비이자 산업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경제적 논리로만 주요하게 해석되다 보니 경제력이 없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그동안은 주요 소비자 타깃으로 삼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전 등 중도장애인과 고령자 인구가 늘어나고, 노동력을 갖춘 장애인이 늘면서 특수한 대상을 중심으로 한, 그리고 그 주변을 타깃으로 한 틈새시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관광학·여가학에서 관광은 ‘일탈적’ 행위이며, 이는 모든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 행위이다. 사람은 일상 공간을 떠나 변화를 추구하려는 동기가 내제돼 있기 때문에(Yuan & McDonald, 1990), 관광객의 행위는 당연한 것이다. 관광을 통한 일탈적 행위의 심리적 과정을 이해해 본다면, 관광은 일상의 규정된 생활과 유형화된 삶과 반대로 평소와 다른 심리상태 및 욕구를 갖게 되며 이것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탈성을 통한 한 개인의 심리적·정서적 효능감은 곧 그 개인의 안녕(well-being)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관광이나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이들에게 존재한다. 또 관광은 노동이라는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구분해서는 안 되며, 역설적으로 정서적 환기(emotional ventilation)를 통해 개인이 복지를 추구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즉, 노동과 관광은 순환적 구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관광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일련의 여가권리라 할 수 있다.
시장성 확보 절실
무장애 관광은 정책이나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며 이제 출발선을 떠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혜적인 인식으로 무장애 관광을 접근하거나, 복지적 관점으로만 이를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무장애 관광과 장애인 관광은 분명 다른 것이며, 더 많은 소비자를 유입하고 보편적인 형태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산업과 시장의 성장이 동반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무장애 관광은 제도적 지원 외에도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초 토대가 절실하다. 예컨대 얼마만큼의 수요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통계 조사도 전무하며, 장애인을 무조건 돈 없는 소비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 중 신체적 제약이 있는 국민 역시 관광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장애 관광은 시장에서 출발하나, 결국 미래복지정책의 일환으로서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적 계기로서 인식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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