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법 제15조 개정, 정신장애인의 삶을 바꿔낸다는 것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본문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2021년 12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정신장애계는 환호했다. 정신장애인을 장애인 복지체계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근거로 쓰이던 독소조항이라는 점에서, 「장애인복지법」 제15조 개정은 정신장애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레모니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법조항 하나 바꾼다고 정신장애인이 사는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는 없다. 법개정에 따른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시간만 1년이고, 지금은 바로 그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부에서도 입원제도개선협의체, 자립지원협의체 등 당사자, 가족, 의료계, 법률가, 장애계, 시설(종사자)과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논의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보다 앞서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에서는 서둘러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서 정신장애인은 ‘등록 정신장애인’과 ‘미등록 정신질환자’를 포함한다. 중점적으로 법 개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복지서비스 영역이었으나, 입·퇴원 및 입원심사 제도 역시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 역시 변혁의 배에 함께 태울 기회였다. 영역별로 분과를 나누고, 분과별 법 개정방안을 연구하고 자문을 받았다. 몇 차례의 워크숍을 거쳐 벚꽃이 한창일 때 개정법 초안을 완성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그 사이 몇 번의 토론회와 설명회, 간담회가 이어졌다. 이해관계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반영한 법안 수정은 지금까지도 한창이다. 아마 법들이 통과하기 직전까지 새로고침은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은 정신장애계에 몰아치는 태풍 같은 여정의 중간점검 정도가 될 것이다.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 방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방향을 아주 거칠게 나눈다면, 입 원제도 개편과 권익옹호체계 구축을 담게 될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방안과, 복지서비스 확충과 지역사회 통합을 주축으로 하는 사회권적 기본권 보장방안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둘도 애초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자유권적 기본권 보장방안에 대해 먼저 살펴보면, 보호의무자제도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보호의무자에게는 입퇴원 절차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권한과 의무가 부과된다. 보호의무자라는 이유로 당사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거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하 ‘보호입원’) 및 동의입원 과정에서는 사실상 입·퇴원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 이 제도는 과거 일본의 「정신보건법」을 그대로 계수한 것이지만 일본에서도 이미 몇 년 전 폐기한 바 있다. 보호자가 사라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신건강복지법」에서 보호자를 삭제한들 민법상 부양의무자는 그대로 남아 기능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입을 모아 폐지를 외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호의무자에게 입·퇴원 신청권이 있는 보호입원은, 사전적 구제수단이나 조력 체계가 없고, 입원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이 없는 당사자의 신체의 자유 및 기 본권 침해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이와 유사하게 보호의무자에게 입·퇴원 동의권이 있는 동의입원은, 강제입원 요건과 절차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일부 악용되며, 보호의무자의 동의 없이는 퇴원이 불가하여 자의입원으로서의 의미가 형해화된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하라는 의견표명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들, 그리고 서구권 국가에서 이송 외에 입·퇴원 절차에서 가족이 관여하는 것을 지양하는 추세인 점까지 감안하여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안에서는 보호의무자제도, 보호입원, 동의입원제도는 과감하게 삭제하였다. 대만의 경우, 최근 강제입원을 행정입원으로 일원화하고, 국가에서 입원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사례관리가 작동하고, 강제입원율이 낮아지는 효과성을 입증한 점도 한몫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강제입원과 강제치료를 폐지하여야 할 것이나, 현실적인 측면을 감안하여 행정입원을 남기고, 행정입원 신청자에 친족, 후견인, 생계를 같이 하는 자를 포함하는 안을 채택했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입원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입원치료 외에 위기쉼터, 외래치료지원, 공공이송체계 등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위기대응체계를 두텁게 만들었다. 특히 그동안 공공이송체계의 부재는 불법의 온상을 조장해왔다. 응급상황에 처한 정신장애인에게 이동이 필요할 때 경찰관과 구급대원은 움직이지 않았고, 입원이라는 선택지밖에 없으므로 입원동의(평가)를 해야 하는 경찰로서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의료기관은 급성기 환자를 받지 않으려 했고, 위기쉼터와 같은 대안 공간은 터무니없이 부족 했다. 그 구멍에서 활개를 친 것이 사설응급이송단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넓은 차원에서 경찰력과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료계 내에서도 이 모델이 잘 실행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거라고 말한다.
사회권적 기본권 보장방안
정신장애인에게 사회권은 자유권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다. 시설과 병원에서 나온 이들이 지역사회 인프라와 서비스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는 곳은 시설, 병원, 길거리 아니면 교도소임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병원과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올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따라서 개정법안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을 함과 동시에 퇴원목표기간, 전환계획, 주거계 획, 재활계획을 포함한 퇴원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여기에는 의료기관과 정신건강복지시설, 정신건강복지센터, 동료지원센터, 지역공무원 등이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퇴원하는 즉시 지역사회기반치료, 재활과 회복 및 자립 생활을 촉진하기 위해 단기거주할 공간과, 지역사회 자원연계 등의 전환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에 대하여도 사회 재활, 회복 지원, 지역사회 활동지원에 관하여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하게끔 하고, 전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동료지원인, 절차조력인 등으로부터 의사결정지원을 받도록 하였다.
자립은 황무지에 혼자 서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것들과 기대어 서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자립의 핵심도 비 정신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일자리와 주거다. 개정법안은 정신장애인의 직업재활 및 고용 지원을 위해 직업지도, 직업능력 개발 및 적응 훈련, 취업 알선 및 유지 지원, 정신장애인에게 적합한 직종 개발 및 보급, 고용에 유리한 정당한 편의제공을 규정하고,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주거지원을 위해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지원 주택 등을 제공하여 정기적인 방문과 생활지원, 자원연계를 포함한 주거지원서비스체계를 구축하도록 규정하였다. 또 다른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가족지원을 위해 현행법의 정보제공에서 나아가 역량 지원, 상담 및 휴식지원, 가족지원가 양성 및 활동지원, 가족단체 지원 등을 명문화하였고, 정신장애인이 정신건강상 위기상황에 일시적 휴식과 안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위기쉼터를 설치, 우선 고려하도록 하였다. 이전보다 더 구체화된 법 조항이 기능을 하려면 이번에야말로 하위법령과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병원에서의 퇴원 및 퇴원 이후 지역사회에서의 삶에 사회가 보다 책임성과 공공성을 가지고 임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정신건강심의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기존의 입원 기간 연장 심사, 퇴원 또는 처우개선 심사뿐만 아니라 퇴원계획 및 퇴원지원에 관한 사항도 심의하도록 하였다. 즉, 정신건강심의위원회가 지역사회에서 당사자의 퇴원과 자립지원에 심층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사전정신의료 및 돌봄의향서 사업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사전정신 의료 및 돌봄의향서란, 당사자 스스로 응급 또는 위기상 황에 어떠한 의료 및 돌봄서비스를 받고 싶은지, 가령 의료기관 선정이나 조력인 지정 등을 평상시에 작성해 두고 유사시 본인의 자기결정권이 최대한 존중되도록 하는 장치이다. 장기적으로는 미등록, 초발, 급성기 정신질환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위와 같은 정신건강복지 법상의 서비스를 받게 되며, 만성화된 등록 정신장애인의 경우 본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장애인복지법상 또는 정신건강복지법상의 서비스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변화는 계속된다
좁은 지면 안에 담지 못한 많은 내용이 남아있다. 입원 적합성심사제도의 개편,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 정신건강권리보장원의 설치, 정신요양시설 문제, 인식개선 방안 등등. 특히 자립지원은 이번 법안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어느 모로 보나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수많은 당사자 리더, 동료지원인이 배출되었고, 그들의 역량이 사회 곳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개정법안은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에 의한 독립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같은 경험을 한 동료, 즉 경험전문가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정신질환자동료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동료지원인을 양성하며, 체계적인 동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최근 위계에 의한 납치와 감금, 폭행사건이 연이어 보도되었다.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속아 사설 구급차에 실려간 채 실종된 이와, 사설 응급이송단에게 신체를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심정지로 사망한 이의 소식이었다. 이 어처구니없고 황망한 일들이 2022년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배경에는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의 혐오와 방치, 장애계 내에서의 차별과 배제가 있고, 이것을 지워나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을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를 설득하고, 때로는 현실과 손잡은 지금 이 법안의 목적과, 밤새 토론하고, 가끔 얼굴을 붉히고, 끝내 눈시울을 적시며 함께했던 이 태풍 같은 여정의 목적지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 같은 일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그 마음이 살아있는 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여정이 있는 한 정신장애인의 삶,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작성자글. 김도희/서울시복지재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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