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후견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결격규정의 문제점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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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보험업법 제84조 제2항 제1호는 ‘금치산자, 한정치산자’가 되면 보험설계사 자격이 상실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를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으로 개정하고자 하는 개정안이 제출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의되고 있다. 위 개정안은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이 개시된 성인은 보험설계사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시험을 응시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또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사람의 자격을 자동적으로 박탈하는 효과가 있다. 위 개정안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장애가 있는 성인의 권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험업법 제84조 제2항 제1호 개정안의 문제점
모든 성인은 법률행위 및 준법률행위를 스스로 해야 하며, 그것이 어려울 때에는 본인이 선임한 대리인, 또는 법률상의 법정대리인이 본인을 대신해 의사결정을 한다. 본인이 미리 대리인을 지정하지 못한 경우, 그를 위한 법정대리인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후견인이다. 후견인은 법률행위 및 준법률행위를 대리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고, 그때의 본인을 피후견인이라 한다. 그런데 피후견인 중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이 보험설계사 시험을 합격해서 보험설계사로 등록하는 것을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 위 개정안의 취지다. 또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성인이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으로 되면 보험설계사의 자격이 자동적으로 박탈되도록 한다. 위 개정안은 행위무능력자제도 당시 여러 행정입법에 도입됐던 결격조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어만을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금치산자가 피성년후견인, 한정치산자가 피한정후견인에 해당되기 때문에 위 개정안은 단순히 용어를 순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위무능력자제도가 성년후견제도로 바뀐 이후 장애, 고령, 치매, 뇌사고 등으로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의 인권 문제가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됐다. 위 개정안은 장애인과 고령자의 인권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과연 위 개정안이 단순히 용어를 순화한 것에 불과한지, 설사 그러하더라도 과연 종래와 같은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금치산자의 명칭이 피성년후견인으로, 한정치산자가 피한정후견인으로 용어만 변경된 것은 아니다. 피성년후견인도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고(민법 제10조, 제947조의2), 피한정후견인 중 동의권이 유보되지 않은 피한정후견인은 행위능력이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한정치산자와는 다르다. 물론 피후견인 중 행위능력이 제한된 사람도 있고, 그 경우 행위무능력자제도 하의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와 각각 유사할 수 있다. 그 경우에도 성년후견, 한정후견의 개시가 결격사유가 되는 법률규정은 문제가 있다. 피성년후견인 및 피한정후견인이라고 해서 본인의 잘못과 무관한 ‘장애, 질병, 사고, 고령’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장애가 있기 때문에 후견인에 의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심판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들이 보험설계사 시험을 보지 못하게 막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는 보험설계사로 등록돼 활동하던 중 일시적인 질병이나 장애로 의료계약과 의료처치에서의 동의권 행사에서 후견인의 지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의 경우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가족을 보호자라고 해서 본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보호자의 동의가 있으면 본인의 동의 없이 의료적 처치를 하는 관행이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없어진 관행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법적 근거와 성인인 본인의 동의 없이 수술과 치료가 자행되고 있다. 이런 관행으로 인해 우울증, 뇌사고 등으로 치료에 대한 소위 ‘의료치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 내용을 이해한 후에 하는 동의(informed consent)’를 하기 곤란한 경우, 그 동의를 대행하기 위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개시하는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다.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제약되거나(성년후견) 부족한 경우(한정후견) 가정법원에 의해 선임되는데, 이때의 사무처리가 모든 사무처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또한 ‘지속적’이라는 용어도 영구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 상당한 기간이면 지속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료행위에 동의할 능력이 상당한 기간 제약되거나(뇌사고 등으로), 부족한 경우(우울증 등으로)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신청했을 때 그 요건이 충족되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무에서 성년후견은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전반적으로 영구적으로 제약된 경우 개시된다. 그러나 한정후견의 경우 일부 가정법원은 의료동의를 할 능력이 일시적으로 부족하더라도 특정후견 대신 한정후견을 개시하기도 한다. 특정후견인은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권을 대리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가정법원 내에 있기 때문이다.1)
그런데 일시적인 장애나 질병 때문에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개시되면 이미 수행하던 직업의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가혹하다. 그 직업을 수행하려면 다시 시험 등을 거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폐해가 가장 심각한 직업의 대표적인 예가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우울증 또는 뇌사고로 치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하기 어려워 가족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개시한 경우 공무원의 지위가 자동 박탈된다(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1호).
이런 법규정은 현실에서 매우 큰 부작용만을 가져 온다. 가령 현실에서는 의료처치에 대한 동의를 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권한 없이 본인의 동의를 대신하고, 본인이 휴직서를 작성할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가족이 대신 작성해 제출하는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누적될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법을 준수하면 할수록 불의의 손해를 입는다는 인식만 확산될 것이다. 종전의 보험업법 제84조 제2항 제1호나 개정안 모두 실효성은 적은 반면 부작용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형평의 관점에서도 이런 규정은 타당하지 않다. 만약 본인이 뇌사고나 우울증이 생기기 전에 미리 다른 사람에게 대리권을 줘, 그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권 행사를 대리하도록 했다면(선진국에서 널리 활용되는 사전의료지시서-Advanced Medical Directives-로 대리인을 미리 지정해 둔 경우), 그 사람은 결격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대리할 수 있고, 휴직서를 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결격조항은 이런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제재의 기능 이외에는 긍정적 효과가 없다.
그러므로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개시됐다는 이유로 자격을 결격시키는 것은 넌센스이자, 시대착오적인 동시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에 위배된다.
외국의 입법례
영국은 후견2) 개시가 공법상·사법상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 가령 선거권 행사의 경우에도 후견이 개시되더라도 피후견인이 이를 행사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선거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전적으로 피후견인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정신질환자를 위해 후견이 개시됐다고 해서 그 사유만으로 피후견인의 자격이 제한되거나 박탈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3)
독일 역시 후견4)이 개시됐다는 사유가 공법상·사법상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선거권의 경우 모든 사안에 대해 후견이 개시된 경우에 후견법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그 사실을 통지해야 하고, 그 경우 피후견인의 선거권은 박탈된다.5) 그러나 그 후 후견인의 권한이 축소되면 박탈된 선거권은 회복된다.6) 실무에서는 모든 사안에 대해 후견을 개시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7)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70여 개의 결격조항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2013년 3월 14일 동경지방재판소에서 피후견인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공직선거법 제11조 제1항 제1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판결에 대해 일본 법무부가 항소했지만, 각 정당들이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이로써 일본은 결격조항 폐지로 나아가는 데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UN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 위반
UN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 제2항은 “협약국은 장애인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다른 사람과 동일한 기반 위에 법적 능력(legal capacity)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legal capacity는 권리능력 및 행위능력, 법적 자격 내지 권한을 망라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지, 협소하게 권리능력 또는 행위능력으로 이해할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능력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후견이 개시됐다는 이유만으로 행위능력을 제한하거나 법적 자격을 제한한다면 그것은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를 위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12조 제3항은 “협약국은 장애인이 자신의 법적 능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필요할 수 있는 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의사결정능력이 없을 때를 대비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것 역시 제3항에서 말하는 “적절한 조치”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의사결정능력상의 장애로 후견이 개시된 경우에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제도를 두도록 하는 것 역시 제12조 제3항의 지원조치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한편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 제4항은 “협약국은 법적 능력의 행사에 관한 모든 조치가 학대(abuse)를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하고 효율적인 안전망을 국제 인권법에 적합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 안전망은 법적 능력의 행사에 관한 조치가 그들 자신의 권리, 의사 그리고 선호도를 존중할 수 있고, 이해관계의 충돌과 부당한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고, 개인의 상황에 상응하고 또 거기에 맞추어진 것이어야 하며, 가능한 한 가장 단기간 동안에 적용되는 것이어야 하고, 권한 있고, 독립적이며, 공평한 기관 또는 사법기관에 의해 정기적으로 재검토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안전망은 당해 조치가 개인의 권리와 이익에 영향을 주는 정도에 비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후견제도를 둘 경우 그 운영에 있어서 준수해야 할 원칙, 즉 성년후견제도의 운영원칙에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법적 능력 또는 법적 권한의 행사에 제한을 둘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어야 한다. 즉 개인별 상황에 맞춰야 하며, 가능한 한 가장 단기간에 한정해서 법적 권한 행사에 제한을 둬야 한다.
질병 또는 장애를 이유로 법적 자격, 권한을 박탈할 때의 일반원칙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장애가 있는 장애인, 고령자에 대해 후견이 개시됐다 하더라도 후견 개시의 사유는 매우 다양하며, 동일한 사유가 있더라도 후견이 개시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후견 개시 사유 자체는 법적 자격의 제한 또는 박탈사유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견 개시라는 사유만으로 법적 자격을 제한하거나 박탈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사유 없이 과잉되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어서 우리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다(헌법 제37조). 설령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격조항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더라도 그것이 국제인권법을 위반한 것이며,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피후견인의 법적 자격 또는 능력을 제한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정당화하는 다른 사유가 있어야만 할 것이고(권리 또는 권한제한의 정당사유), 각 사유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제한해야 할 것이다(비례성의 원칙). 정당성과 비례성의 원칙이 준수되지 않는 모든 결격조항은 위헌이자, 국제인권법 위반이며, UN 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적 권한, 자격, 능력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사유는 어떤 것인가?
피후견인 또는 의사결정능력 장애인 본인 또는 제3자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현저한 가능성이 있을 때 법적 자격, 권한,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사유가 있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무한정하게 이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각 사유에 맞게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서 제한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원칙을 현행의 결격조항에 적용해 보면, 모든 결격조항은 위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삭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개별 사유별로 판단하는 어떤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사유별로 법적 자격, 능력, 권한을 제한하거나 박탈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원 또는 권한 있는 기관의 판단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판단 권한의 부여, 권한 행사의 요건 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결격조항을 삭제하는 것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별도의 입법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합리적 대안
우리나라는 현재 약 10,000여 명의 성인이 후견을 이용하고 있다. 선진국의 예를 보면 인구 10만 명당 100명 내지 300여 명 가까이가 법정후견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를 감안할 때, 현행의 성년후견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8) 향후 5년 내지 10년 이내에 성년후견, 한정후견 등을 활용하는 사람이 약 5만 여명은 넘을 것으로 추계된다. 그렇다면 보험업법 제84조 제2항 제1호의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40만 명의 보험설계사 중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이 개시된 사람 중 많아야 400여 명에 불과할 것이다. 다시 그 중 성년후견 및 한정후견이 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설계사로서의 직업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보험업법 제84조 제2항 제1호나 그 개정안은 이들 400여 명이 성년후견, 한정후견을 이용하지 않은 채 무권대리에 의존하도록 유인하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가령 보험업법 제84조 제2항 제1호를 전면 삭제하더라도 현실에서는 10만분의 2 내지 3 정도의 위험성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위 개정안처럼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을 결격사유로 삼는 개정안을 도입하게 되면 국회의 다른 위원회에도 영향을 미쳐 동일한 내용의 결격조항이 존속되도록 유도하게 될 것이다. 반면 10만분의 2 내지 3 정도의 위험성을 대비한 개별적 접근방법을 취하게 되면, 실제적 위험도 방지하고, 동시에 장애인, 치매환자, 고령자, 뇌사고자의 인권존중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아시아에서 최선두에 선 인권존중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결국 일률적인 처리가 아니라 개별 사정을 감안하여 필요한 경우 직무를 일시 정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한편 질병에 걸려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 중 유독 성년후견인(또는 한정후견인)이 선임된 사람들만 공법상 및 사법상의 자격을 제한 내지 박탈하거나 공법상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이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사회활동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므로, 이들의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하게 한다. 동시에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법상태의 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이 의사결정능력상의 장애나 그 원인이 된 질병으로 인해 직무 또는 직업활동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자신이나 제3자의 재산 또는 신체 및 생명에 위해를 가할 현저한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절대 다수의 사안에서는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 등은 그 이전에 해 오던 직업활동의 수행을 중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 계속적 직업활동의 수행과 그로 인한 자기나 제3자에 대한 위해의 우려가 있다면, 그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도 있을 것이다. 즉 이 경우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의 보호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직무 또는 직업 활동의 수행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이 이들의 복리나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어디까지나 보충성의 원칙을 좇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즉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의 직무수행을 일률적으로 박탈하거나 제한하기 보다는 개별 사정에 따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일률적인 자격제한 내지 박탈 제도를 없애는 대신 개별적, 구체적 사정에 따라 법원 또는 권한 있는 기관의 판단에 의해 직무 또는 직업활동의 수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이들의 사회활동참여를 보호하고 이들의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고려를 한다면 보험업법에서는 제84조 제2항 제1호를 삭제하고 대신 다음과 같은 개정안을 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 목적은 피성년후견인이나 피한정후견인의 공법상의 권리행사나 사법상의 권리 또는 자격의 취득 및 수행에 있어서도 유사한 질병에 걸린 이들과 다르게 취급하지 않고자 하는 것에 있다.
직무정지를 가정법원에서 결정할 경우의 입법안은 아래와 같다.
제84조의2 (직무수행등의 금지명령)
① 가정법원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이 모두 충족된 경우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기간 동안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의(보험설계사로서의) 직무 또는 직업활동(이하 직무수행등이라 한다)을
금지할 수 있다.
1. 직무수행등이 피성년후견인등이나 제3자의 재산 또는 신체·생명에 위해를 미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2. 금지명령이 없다면 직무수행등을 계속할 상당한 위험이 있는 경우
3. 직무수행등의 위험성에 대해 피성년후견인등이 의사결정능력이 없다고 의심되는 경우
② 가정법원은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개시심판을 할 때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권자의 신청으로 제1항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성년후견인 또는 한정후견인이 선임된 이후에는 성년후견인 또는 한정후견인의 신청으로 제1항의 직무수행등을 금지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사유가 없어진 경우 제2항의 신청권자는 가정법원에 금지명령의 철회를 신청할 수 있다. 가정법원이 정한 제1항의 기간이 지나서도 금지명령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제2항의 신청권자의 신청으로 금지명령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유: 법적 권한, 자격, 능력을 제한하는 권한은 법원이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 중에서도 후견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 (장차)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판단 기법을 가질 것이고, 동시에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가정법원에 이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권한 있는 행정기관(보험설계사의 경우 금융위원회)이 개입해 직무활동을 중지하도록 할 경우에는 후견인, 본인, 기타 이해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위 입법안과 유사한 조건 하에서 직무정지(가령 등록을 유보하거나 휴직을 명하는 등)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결정에 대해서는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으로 불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인식에 울림을 주는 작은 배려
장애, 고령, 치매, 뇌사고 등으로 보험설계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본인이나 타인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를 이유로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개시됐을 때 가정법원 또는 권한 있는 행정기관의 판단으로 그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개시됐을 때 보험설계사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겠지만, 이런 작은 배려가 장애, 고령, 치매, 뇌사고를 당한 성인의 인권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엄청난 울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국민 사이에 준법정신을 드높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 반면 현행법이나 개정안과 같은 규정은 현실에서 국민들의 탈법과 편법을 부추기는 기능을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1)입법과정에서는 의료 동의 이외에는 별달리 법률행위나 준법률행위를 대리할 필요가 없는 경우 특정후견을 개시하여 그 수요를 충족시키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법률성안에서 특정후견의 경우 민법 제947조 제3항을 준용하는 규정을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실무가들을 중심으로 위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2)영국의 정신능력법(the Mental Capacity Act)에 따르면, 법정후견은 Deputyship라고 하고(제15조 이하에서 이에 관한 규정이 있음), 임의후견은 Lasting Power of Attorney라고 한다(제9조 이하에서 이에 관한 규정이 있음).
3)이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The British Medical Association and the Law Society, Assessment of Mental Capacity, pp. 97, the Law Society (2010) 참조. 이 때 정신능력법에서 규정한 의사결정능력 판단기준에 따라 무능력이라고 판단될 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위 책에서는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독일 민법은 법정후견(Betreuung)에 관하여 제1896조 이하에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은 임의후견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는데, 학자들은 민법의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이 의사결정능력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그 효력이 발생하게끔 대리인을 두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해 왔다(소위 후견적 대리인(Vorsorge Vollmacht).
5)연방선거법 제13조 제2호는 위와 같은 피후견인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선거법도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 절차를 규정한 것이 독일 가사소송 및 비송 사건 절차법(FamFG) 제309조 제1항 제1문, 제2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W. Zimmermann, Betreuungsrecht, 4. Aufl., FamFG § 309 Rn. 1 ff. 참조.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모든 사안”에서 전화 및 우편 개봉·발송권한(제1896조 제4항)과 임신중절에 관한 권한(제1905조)은 제외된다.
6)사망 이외의 사유로 후견인의 권한이 종료되거나 후견인의 권한이 축소된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 그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독일 가사소송 및 비송 사건절차법 제309조 제1항 제3문).
7)이에 관하여는 제철웅, 성년후견인의 민법 제755조의 책임, 법조 670호(2012년 7월), 24면 참조.
8)성년후견제도 하의 성년후견 유형, 한정후견 유형은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에 위반된다. 따라서 향후 이 두 유형의 후견은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유형의 후견을 없애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를 논외로 하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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