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
본문
‘거주시설 장애인의 권익옹호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2월 1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개최됐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총련)와 자유한국당 이종명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장총련이 지난 2011년부터 7차년도에 걸쳐 실시한 ‘장애인거주시설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따른 함의 및 제언 등을 토론했다. 발제는 마산대학교 김용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았으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조문순 사무국장,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인권지킴이센터 강희설 센터장,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국 정상영 팀장, 안양시장애인인권센터 최승민 센터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의 딜레마
국내에서는 해마다 거주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거주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는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시설거주인에 대한 인권실태조사가 의무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설 내 학대와 인권침해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현황(2016)’에 따르면 2014년부터 2년간 857곳의 장애인거주시설 중 약 10%인 91개 시설에서 120건에 달하는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한 장애인거주시설의 인권실태 전수조사는 거주인의 인권문제에 영향을 끼쳐 왔다. 김용준 교수는 인권실태 조사 시 나타난 사례들을 종합한 결과, 순기능적 측면의 변화뿐 아니라 역기능적인 측면들도 발견되고 있어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생존권 차원의 문제가 그렇다. 꼭 먹어야 하는 약물을 거부하는 경우, 목욕 등 씻기를 거부하는 경우 등 거주시설 내 장애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일이지만 인권의 문제와 충돌되면서 시설 입장에서 적극적인 대처의 어려움을 느낀다. 또 이 같은 조사가 강력하게 진행될수록 인권실태조사 기관과 시설의 대립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김 교수는 시설거주인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정책적으로는 우선 장애인거주시설 인력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365일 근무해야 하는 장애인거주시설 특성상 생활재활교사가 2교대나 3교대를 할 수 있도록 인력배치가 돼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1실 당 거주인원을 8인에서 4인으로 축소하거나, 1인당 돌봄보조인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나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에는 거주시설 내 인권지킴이단을 설치 및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충분한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거주인의 문제행동 등 돌발행동이 발생했을 때 시설에서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매뉴얼의 제작 및 보급이 시급하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치료의 목적에서 거주인을 일시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인 안정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실천적으로는 시설거주인과 직원을 대상으로 전문화된 인권교육 커리큘럼을 보급하고, 거주시설이 지역사회와 단절되지 않도록 교류확대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거주시설 시스템의 근원적 문제 해결해야
발제에 대해 조문순 사무국장은 현장 경험자의 입장에서 일부 반박 의견을 내비췄다. 조 국장은 “현장에서 거주인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인권침해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왜 이러한 행동들이 계속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거주인들의 이런 행동을 단순한 문제가 아닌 하나의 메시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발제자의 ‘딜레마’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인권실태조사를 계기로 시설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공유되기 시작한 만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인권지킴이단 운영에 대해서는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면서 “긍정적인 측면도 일정부분 있지만, 원장의 권한에서 좌지우지되는 면도 상당하기 때문에 활동비를 올려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3자의 감시체계보다는 거주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인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조 국장은 “시설이라는 공동체 구조적 특성상 개인적인 지향점이나 목표가 충분히 발의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권침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보다 원론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2차 피해 방지와 공익제보자 보호 방안 강구해야
김예원 변호사는 2차 피해의 양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에서의 2차 피해 문제와 문제 발생 방지 방안을 짚었다. “어떤 범죄 등으로 받은 피해가 1차 피해라면, 2차 피해는 사건 이후 관련 기관, 가족, 지인 언론 등으로 퍼진 소문 또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의해 피해자가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특히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에서는 ‘불쌍한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주기까지 했는데, 참다못해 저지른 실수였을 뿐’이라는 식의 시선이 일반적이다. 장애인 인권침해 피해자는 장애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피해자로서 받는 2차 피해를 이중적으로 받게 되지만 이 점을 고려한 2차 피해 방지대책은 전무하다.”
한편 국내에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법률로 ‘공익 신고자 보호법’이 있다. 이 법에 따라 공익신고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변보호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부당한 인사조치 등의 불이익을 예방하는 등 강력한 공익신고자 보호 내용을 두고 있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비밀 역시 철저하게 보장된다.
결국 김 변호사는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거나, 공익제보자가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에서 현재 법제도의 충실한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설 내부 비리 속에 인권은 없어
정상영 팀장은 직권조사 경험상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이것이 묵인되는 데는 장애인거주시설의 사유화와 비민주적 운영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설을 조사하다 보면 산악지역이나 값비싼 땅과 관련한 비리사건에 연루된 경우가 많다. 과거 60~70년대 선한 의도로 시작된 기관과 법인들이 2, 3세대를 내려오면서 사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공공물품을 함부로 사용하고, 직원들에게 사적인 업무를 시키는 등 직원의 인권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거주인의 인권 보장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따라서 내부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와 부적절한 시설운영자에게 강력한 책임 추궁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
정 팀장은 발제자가 발표한 정책 및 실천적 제언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의 입장을 보이는 한편, △시설 인력의 사유화 견제 장치 마련 △인권지킴이단의 외부위원 확대 △외부 감시 체계로서의 발달장애인 지원센터 및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발전 등의 의견을 추가적으로 제시했다.
탈시설 이후 다양한 거주형태 나타날 것
강희설 센터장은 먼저 이날의 자리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토론을 이어갔다. “탈시설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탈시설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 과정은 민주적이고 안전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시설 내 인권보장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또한 시설 외에도 공동생활가정 등의 인권실태조사도 필요하다. 탈시설화가 가속화될수록 다양한 거주형태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 안에서의 인권 감시도 우리의 미래 과제다.”
강 센터장은 “지금까지 제시된 인권보장 가이드라인을 실제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가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지만, 장애 관련 인권침해 범죄들이 속속히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제시됐던 예방을 위한 권장사항들은 정책화되지 못한 채 잊혀졌다”고 지적하면서, “장애인 인권문제를 학대로만 좁은 시선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거주시설 서비스 전 과정에서 어떻게 인권을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사자들 삶의 선택권, 좌지우지 않아야
최승민 센터장은 거주시설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일지 근본적인 질문을 먼저 던지며, 시설이라는 폐쇄적 특성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에 따르면 미국의 펜허스트 탈시설 정책 이후 진행한 연구 결과 장애인들의 자립적 기능이 증가하고 도전행동이 감소하는 등 상당수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 이는 우리나라 시설 모델에 있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시설 거주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침해를 방어할 수 있도록 정보제공, 의사소통 지원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종사자가 인권적 측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체계화된 공식 매뉴얼을 제작해 보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