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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으로 내몰린 중증장애인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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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이하 공단) 무기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문재인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민 일자리 정책에 장애인이 제외돼 있고, 특히 소외된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개 창출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 폐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개혁 등 3가지 요구안을 내세워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농성 50여 일차에 접어든 취재 당일, 공단 내부가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외치는 내용의 현수막과 종이들로 채워진 가운데, 전장연 등 단체 회원들과 장애 당사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와 민간 곳곳의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특히 발달, 뇌병변 장애유형이 많은 중증장애인의 취업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행한 ‘2016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19.7%로, 61%인 전체 인구 고용률의 삼분의 일 수준에도 못 미친다. 15세 이상 전체인구의 100명 중 약 60명 이상이 취업하는 동안, 15세 이상 중증장애인의 경우 20명이 채 안 되는 인원만이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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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중증장애인으로 구분되는 장애 2급의 김지수 씨(가명·31)는 지난 10여 년간 수차례 구직과 퇴사를 반복한 끝에 6개월째 실업자 상태다. 김 씨는 “근로자의 90% 이상이 중증장애인인 직업재활시설 대부분에서 최저임금보다 현저히 낮은 임금을 주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심지어는 더 늦게까지 일을 하고도 한 달에 20~30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아 경쟁이 정말 치열하다. 하지만 나는 기초생활수급이나 가족에게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어렵게 들어간 직업재활시설을 나와 일반 회사를 전전해야 했다. 직업재활시설이 아닌 평범한 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더 어렵지만, 겨우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장애 특성으로 괴롭힘 등의 차별을 받거나 일에 능숙하게 적응하기 어려워 등 떠밀리듯 그만두게 되는 일이 많았다. 나 같은 중증장애인은 가족의 도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중증장애인으로서 느껴온 열악한 노동 현실을 토로했다.

 

진단도 처방도 잘못된 장애인 고용정책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일자리 토론회’에서 한국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동욱 교수는 2013년부터 5년간 시행된 제4차 장애인고용촉진 5개년 계획에 대해 “장애인 취업지원 및 훈련 서비스 확대, 인적·물적 편의제공 확대 등의 성과가 있었으나, 장애인고용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업체가 절반에 이르며, 특히 중증장애인은 더 열악한 고용환경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전장연의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역시 발제문을 통해 “장애인의 노동할 기회 보장을 위해 장애인고용법이 시행된 지도 20년이 넘었지만, 장애인 고용 정책의 진단과 처방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90년대 제정된 「장애인 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고용법)은 2000년 전면개정을 거치면서 지역 직업재활시설의 설치 근거가 됐다. 직업재활시설의 보호고용을 통해 중증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추후 일반사업장의 경쟁고용으로의 전이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제도, 기능보강사업, 고용장려금 등 각종 직업재활시설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직업재활시설의 중증장애인이 일반사업장으로 전이되는 경우는 드물다. 박 대표는 오히려 직업재활시설이 지역사회로부터 장애인을 격리시키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가 또 다르게 지적한 문제점은 최저임금법 제7조에 명시된 최저임금적용제외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신청해 허가를 받을 경우,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2017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적용제외 인가를 받은 일반사업장 및 직업재활시설 등의 노동자는 2012년 3,436명에서 2016년 8,108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때문에 많은 중증장애인이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으로 노동의 기회를 갖기 어렵고, 또 그 문을 어렵사리 통과하더라도 최저임금적용제외로 인해 현실적으로 누군가의 경제적 도움 없이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생산성과 효율성 무시 못 해”

중증장애인의 노동 문제에 대한 지적에 대해 담당 공공기관은 ‘공감과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 한계를 제쳐 둘 수 없다’는 반응이다. 같은 날 토론에서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 김환궁 과장은 정부 노력의 불가피한 한계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전장연 등 장애계 주요 요구에 대해서는 ‘노력하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하며, 구체적 방법에 대한 내용은 생략했다.

김 과장은 “지금까지 정책에 대한 성과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체감은 미미할 수 있으나, 고용장려금도 일정 부분 인상됐고, 근로지원인 제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일반사업장에서 장애인을 고용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이 2배 이상 증가하면서 이곳의 중증장애인 근로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최저임금도 보장되니 이 정도면 괜찮은 일자리라 생각한다. 장애계에서는 공공일자리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건 사기업이다. 직업재활시설 등을 통한 직업훈련으로 중증장애인이 더 많은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그럼에도 미흡하다고 평가되는 고용노동부의 장애인 일자리정책에 대해서는 큰 책임과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표의 지적에 대해 한국장애인직업재활 시설협회 신직수 사무국장은 생산성과 불충분한 정부의 지원으로 최저임금은커녕 국내 직업재활시설이 운영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직업재활시설 측도 최저임금 보장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014년 이후 직업재활시설의 매출은 증가했으나, 사실상 수익금은 감소한 한편 임금은 오르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근로 장애인 임금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없이 전적으로 생산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수익에 따라 임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직업재활 시설에서 경쟁적 고용시장으로 전이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도 생산성이다. 직업재활시설에서 충분한 훈련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근로자가 이직하는 경우 생산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반 사업장으로의 전이 유도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장애’ 아닌 ‘왜곡된 노동 개념’

일각에서는 노동에 대해 전통적 해석만을 고수한다면, 국민 전체의 노동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노동권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노들장애학궁리소의 김도현 연구활동가는 4차 산업혁명 등 기술발전의 여파로 노동자들이 기존 일자리를 잃는 일이 늘어나고, 대책으로 기본소득 논의까지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더욱 노동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동을 흔히 상품 그 자체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노동은 인간 활동의 또 다른 이름일 뿐, 한 인간과 분리해 동원하거나 비축할 수 없는 것이며, 더 생산하거나 덜 생산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1994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채택된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도 이 내용을 천명한 바 있다.”

덧붙여 김 활동가는 “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국가가 노동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실제로 여러 중증 장애인이 권리옹호활동이나 동료상담, 인권활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과 국회의원이 높은 임금을 받고 하는 정치활동의 차이는 노동으로서의 인정 여부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전장연을 포함한 장애계가 중증장애인 노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결코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오히려 충분한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다수의 중증장애인은 기술의 발전으로 언제 기계가 대신할지 모르는 단순 생산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낮은 생산성을 보충하기 위해 지원되는 예산도 상당하다. 이에 전장연은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사회적 활동을 종합적 직무로 구성해 그 업무를 ‘사회적 공공일자리’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장애인 동료상담 활동 △장애인 인권옹호 활동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 △장애인 민원 안내 활동 △장애인 문화 예술 활동 등이 그것이다. 이미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평생교육기관, 비영리단체 등에서 이런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사회적 공공일자리’는 국가가 고용주가 돼 사회의 인권적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때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생상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개인의 특성과 역량에 따라 공공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

더불어 박 대표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에 대한 당위성과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일반사업장에서의 최저임금 보존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엄연히 UN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에 어긋나는 사안이며, 2014년 이미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취약한 노동자 계층을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최저임금의 기본 취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폐지되는 게 맞다. 기업 부담완화의 방안으로 사업주에게 지급되던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으로 용처를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단가표로는 최저임금을 온전히 보전하기 어려움으로 중장기적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체계화된 지원고용제도 역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제도는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직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현재 퍼스트잡, 커리어플러스센터 등 민간사업수행기관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본부 및 각 지사가 실시하는 중증장애인 지원고용 사업에서 이 같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각 전달체계의 내용과 처우가 제각각이다. 고용 현장에서 중증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데 직무지도원의 역량이 크게 좌우되는 만큼 해당 인력의 처우기준을 단일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고용공단 농성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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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52일째인 지난달 11일, 전장연은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날씨에도 고용공단이 입주해 있는 남산스퀘어빌딩 외벽에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3대 요구안의 목소리가 담긴 대형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거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 날 전장연의 정다운 정책조직국장은 “고용노동부와의 실무협상을 통해 TF팀을 구성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과연 어느 정도 우리의 요구안이 반영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농성으로 불편을 겪는다는 민원이 들려온다. 그들은 단 며칠 업무에 지장을 받는 것뿐이지만 우리는 그런 일할 곳조차 없다. 노동은 생존의 문제다. 우리의 요구안이 얼마만큼 현실화되고, 또 예산으로 결정되는지에 따라 농성이 빨리 끝날 수도 있고 장기화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의 의지와 신뢰성이다. 담당 기관이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만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정부차원의 논의와 협의가 부족한 탓이라고 보인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책임자로서 의지를 가지고 농성장을 방문해 확실한 약속을 할 때까지 농성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면서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sousms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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