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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사과를 받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이유

인권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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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았다. 여전히 모란공원의 땅바닥은 언 눈으로 굳어 있었고,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밖에 비추지 않았으나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날씨가 좋았다기보다 그날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포근해 보였다. 아마도 그날의 의미가 좋았던 것이리라. 지난 1월 2일은 장애인활동가 우동민 열사의 유족들과 동료들에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사과하기로 한 날이었다.

사과를 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 참으로 긴 세월이다. 나의 새해는 추모제 참석으로 시작됐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다시 상기했고,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삶을 되새겼다. 무엇보다 소수자들이 기댈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동료들의 애도까지 막았던 인권위

우동민 열사를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두 가지다. 한 장면은 그를 처음 만난 날이고 다른 장면은 그를 떠나보낸 날이다. 첫 만남은 연대로 웃었으나 마지막 만남은 차별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인권단체들은 2010년 11월 4일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7층(인권상담센터)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인권단체만이 아니라 참여연대, 여성단체들도 한 목소리로 현병철 위원장은 물러나라고 했다. 11월 1일 문경란, 유남영 인권위 상임위원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비민주적으로 인권위를 운영하는 현병철을 비판하면서 사퇴한 지 3일만이다.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긴급회의를 했고, 즉각적인 규탄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국가인권기구를 망치고 이명박 정부에 부역하며 인권을 후퇴시키는 위원장이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날 우동민 열사를 처음 봤다. 농성장에서 즐겁게 결의를 북돋아주는 활동을 했다. 현병철을 규탄하고 망가진 인권위를 즐겁게 풍자하는 피켓만들기를 했다. 우동민은 피켓을 만드는 동안 연신 웃고 있었다. 동글동글 사람을 푸근하게 하는 웃는 얼굴은 아직 내 카메라에 담겨 있다. 11월 22일 장애인활동가들이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이듬해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가서 본 동료들의 침통한 얼굴을 잊을 수 없다. 1월 4일 인권위 건물 앞에서 장애해방열사장을 치렀다. 영정을 들고 인권위 11층 배움터로 가던 길이다. 동료들은 마지막으로 그의 건강을 빼앗아간 농성장소를 한 바퀴 돌고 가려고 했다. 인권위는 또 장애인활동가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를 껐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 결국 휠체어를 타지 않은 활동가들이 영정을 들고 11층 배움터까지 계단으로 걸어갔다. 계단에서 만난 당시 손심길 사무총장과 김영혜 상임위원은 최소한의 부끄러움 없이 애도하는 활동가들을 소란 피우는 사람 취급했다. 우리는 “인권은 몰라도 죽음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냐.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그가 농성하던 11층을 잠시 들리는 것까지 막고 엘리베이터도 끄고 너무 하지 않냐”고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결국 배움터 문을 열어줘 활동가들은 우동민 열사의 영정을 들고 배움터를 한 바퀴 돌았다. 인권위의 장애인차별로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7년간의 거짓말, 7년간의 은폐

피해자들이 인권침해로부터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선 가해행위에 대한 인정과 사과,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 이 모든 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인권위는 인권침해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은폐했다.

엘리베이터를 끈 것은 단 2시간뿐이었으며, 난방을 공급하지 않은 건 건물주의 조치라 우리는 책임이 없으며, 전기를 끊은 적도 없다고 했다. 무려 7년간 거짓말을 했다.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유엔인권이사회에 가서도 거짓말을 했다. 사과는커녕 장애인활동가들이 폭력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한 조치라는 식이었다.

작년 10월 30일 국가인권위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출범했다. 필자도 국가인권위 모니터링을 10년 넘게 한 사람으로서 혁신위에 참가했다. 과거반성과 재발방지의 첫 사건으로 ‘우동민 사망 및 장애인인권활동가에 대한 인권침해’를 다뤘다.

2012년 현병철 위원장 연임 인사청문회에서도 현병철 위원장과 손심길 사무총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적극적으로 해명자료를 내며 은폐했다. 혁신위는 당시 배움터에 농성하던 장애인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청원경찰의 이야기를 들었다. 구체적인 피해자 진술 외의 것으로 인권침해의 내용을 증명해야 했다.

그동안 인권위는 ‘장애인활동가들이 거짓말을 한다, 장애인활동가들이 심했다’ 등의 말을 해왔고 당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도 사실이 밝혀진 건 아니니까 단정할 수는 없다며, ‘적당한 중립의 자세’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곤 했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권위 직원들조차 사실을 모르면서 ‘설마 인권위가 난방을 끄고 전기를 끄겠냐’고 말할 때면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그럼 설마 장애인활동가들이 거짓말을 하겠냐고!

 

새롭게 드러난 인권침해 기록

피해자의 증언과 사진 말고 그들의 인권침해를 밝힐 증거를 찾았다. 과거 인권위가 만들었던 자료를 보고, 당시 인권위 건물이었던 금세기 빌딩의 관리업체인 포스메이트의 일지를 봤다. 인권침해가 일어난 12월 2일 밤부터 12월 10일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문서를 살펴봤다. 증거들이 하나둘 기록돼 있었다. 이렇게 증거기록이 많은데 그동안 사람들은 이걸 왜 못 봤는지…….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은 첫째, 장애인활동가에 대한 인권침해는 이미 사전에 논의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장애인들이 12월 2일 밤부터 인권위 건물 전체를 점거해서 과잉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미 11월 29일 인권위의 인권침해는 예고돼 있었다. 운영지원팀에서 일일보고한 <장애인단체 점거농성 경과보고⑸>에는 “향후 단전, 출입제한, 경찰력 요청 등의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장애인활동가들이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 반나절 동안 여러 층을 점거해서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11월 22일부터 시작된 농성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인권위가 나서서 농성자들을 괴롭혀 나가게 하려고 한 것이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11월 22일부터 ‘장애인활동지원법 제정 관련 요구와 현병철 사퇴’를 걸고 농성에 들어왔다. 농성초기인 12월 2일 낮까지 인권위는 11층 배움터에 있는 난방공급이나 장애인활동가들의 출입을 제한하거나 활동보조인 출입을 막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인활동가들은 교대로 농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둘째, 밝혀진 것은 일과 시간 외 난방공급은 임차인이라 하더라도 인권위가 할 수 있고 그전에도 했다는 기록과 12월 4일 난방이 전혀 공급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었다. 인권위는 그동안 설사 난방공급이 안 됐다고 하더라도 임대건물이라 그건 인권위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건물관리업체인 포스메이트가 매일 작성하는 <관제/방재 상황일지>를 보면 11월 27일(토) 시간 외 난방을 인권위가 신청했다. 12월 3일 전에는 장애인권활동가들이 농성하던 11층 배움터에 시간 외 난방이 공급된 것이다. 그런데 12월 4일(토) <관제/방재 상황일지>에는 보일러나 온수 가동시간이 없었으며, 에너지 사용량도 “0”으로 나와 있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난방을 아예 끊은 것이다.

 

은폐가 가능했던 무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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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는 2010년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인권위의 인권침해가 있었고 이에 대해 인권위가 사과하고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인활동가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7년 동안 장애인활동가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우겼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난방을 하지 않아 건강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갔던 사람들이 있는데도 부정했다. 7년 동안 병원에 실려 갔던 문애린 활동가를 비롯한 장애인활동가들의 속이 문드러졌을 것이다.

반면 이러한 인권침해 사실을 인권위 직원들 대다수가 이번 혁신위 보고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놀랍다.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이렇게 무심할 수 있다니, 인권옹호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니…….

한 술 더 떠서 인권위 직원들 중 일부는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혁신위가 근거도 없이 우동민 열사의 죽음에 인권위가 사과하라고 권고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혁신위는 우동민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무엇인지는 추가조사를 더 해야 하지만, ‘사망의 큰 책임이 인권위의 인권침해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인권침해 사실이 있었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고, ‘우리 때문에 죽은 건 아니야’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답답하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는 대단하다. 적어도 이후에 농성자 등 싸우는 인권옹호자들의 인권을 보장할 근거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국가나 기업이 농성을 빨리 끝내게 하려고 농성자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지 않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 공포된 것이므로.

작성자글.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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