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자조집단 활동, 그 중요성과 지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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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과 자조집단
그동안 국내에서 장애인의 권리실현을 위해서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 보장, 권한 강화(empowerment), 사회적 참여 등이 강조돼 왔다. 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자조단체가 구성돼 주도적으로 활동해 오고 있으며, 장애 관련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있어서도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전반적인 흐름과는 다소 배치되는 양상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발달장애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으며, 이들에 의한 스스로의 활동보다는 타인에 의해 주어지는 보호와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 온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모습에는 논리적으로 사고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결여돼 있다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오랜 편견과 더불어 그들이 자기주도적인 활동을 경험하고 본인들의 목소리를 낼 자조그룹이 형성돼 있지 않은 환경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발달장애인의 자조집단이 형성돼 활동해 왔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피플퍼스트(People First)’ 등과 같은 전국적인 발달장애인 자조단체가 결성돼, 발달장애인에게 리더교육, 자기옹호훈련, 동료상담 같은 활동을 제공하는 한편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주체가 된 자조집단 활동이 발달장애인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는 데 있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일부 장애인부모단체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이 구성돼 활동하기 시작하고, 최근 제정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발달장애인 자조단체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법적으로 명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 자조집단 활동의 의미
발달장애인 자조집단를 정의하는 데 있어 발달장애인에 의해 계획되고 결정되어야 한다는 ‘주체성’과 ‘주도성’이 강조되어 왔다. 예를 들어, 호즈미 코우이치(保積功一. 2007)는 모임의 성숙 정도나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은 발달장애인들이 서로 같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로서, 서로의 생활이나 생각을 이해하며, 당사자인 본인들만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펄스크(Perske. 1978)는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이 “발달장애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요구를 하는 자발적 조직”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조집단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강조한다. 콜드웰(Caldwell. 2010)은 자조모임 활동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다양한 생활 경험을 공유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자기표현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국내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은 어떤 활동을 강조하고 있는가?
최복천 외(2015)의 최근 사례연구에 의하면 국내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은 크게 ‘사회참여활동’, ‘자립생활역량’, ‘자기옹호역량’ 강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그 활동영역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참여활동’에 대한 강조는 발달장애인이 현재 처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발달장애인이 자조단체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사회적 상호작용과 생활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또한 ‘자립생활역량 강화’를 위한 활동은 성인 발달장애인이 가능한 한 자립적으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개인적인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행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위해서 그동안 한정된 장소와 프로그램에 의해 제한된 틀을 벗어나 성인 발달장애인으로서 누려야 할 일반적인 삶의 기회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 자체도 발달장애인 본인들의 선택에 따라 지역사회 내의 일상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관 중심의 프로그램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기옹호역량’을 위한 활동들은 발달장애인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상담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망이 형성될 수 있는 다양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주장하고,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권리옹호활동을 배우고 실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 자조단체 활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이라는 점이 강조되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을 위해 어떠한 지원이 필요할까?
발달장애인 자조집단은 기본적으로 발달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되고, 발달장애인에 의해 운영된다는 기본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자조단체 활동을 전개해 가는 데 있어 다른 집단과는 달리 일정 정도의 기관 지원이나 조력자의 지원이 요구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와 관련하여 표출돼 온 주요 지원 욕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최복천 외, 2015).
첫째, 발달장애인이 표출하는 주된 요구는 자조단체 성원들이 자유롭게 모이거나 활동을 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공간에 대한 지원이었다. 더불어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이 소득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을 지원할 재원이 갖추어지지 못할 경우 필요로 하는 활동을 행하지 못하거나 자조모임이 해체되는 경우도 있어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이 정책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
둘째, 발달장애인 자조단체가 다른 자조단체와 비교해 볼 때 특별한 성격을 지니는 것 중의 하나는 이들 활동에 있어 ‘조력자’가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며, 조력자가 어떤 역할과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자조단체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활동 그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력자는 정보제공, 의사소통 지원, 지역사회 자원 연계, 구성원들 간의 갈등 중재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술을 담보하는 것과 더불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과 관계에서의 평등성을 지향하는 의식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조력자는 지시하거나 결정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본인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발달장애인 자조단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욕구에 충실한 활동들이 자조단체별로 이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자조단체들 간의 교류도 중요하다. 특히 자조모임 초기 형성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다른 이들의 활동사례들을 경험하면서 자조활동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일어나기도 하고,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자긍심과 연대감이 확대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자조단체들 간의 교류가 단순히 1회성 행사가 아니라, 발달장애인들이 집합적인 힘을 확인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중요한 터전이 된다는 인식 하에 적극적인 지원이 강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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