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장애인 정책, 이게 최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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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김땡땡 씨의 사연
울진군에 사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땡땡 씨. 땡땡 씨는 회의일정에 참석할 겸, 사람들도 만날 겸, 경산시에서 약속을 잡고 울진군 특별교통수단(이하 편의상 장애인콜택시라 표기, 약칭 장콜)을 알아본다. 시외 이동은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하니, 약속날짜 역시 두 달 전까지는 확정돼야 한다. 울진군 이동지원센터에 전화를 걸고 예약을 시도한다. 아뿔싸. 두 달 치 예약이 이미 꽉 찼다! 장애인콜택시 말고는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는데… 울진군은 기차가 다니지 않고, 시외·고속버스는 휠체어가 탑승할 수 없다. 날짜를 조정하거나, 리프트차량과 운전자를 섭외해서 부탁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일정을 포기하는 수밖에.
요즘처럼 교통이 편리한 시대에 이 무슨 얘긴가 싶겠지만, 이건 실화다! 경상북도 대다수 시·군의 중증장애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다. 한번 상상해 보시라. 당장 오늘 어떤 급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두 달 전에 완벽하게 스케줄 정리를 해놓고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니! 울진군 장콜 이용규정을 만든 사람은,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참 계획적으로 살고 계신가 보다. 다행히 일정이 조정돼, 장콜을 예약했다 치자. 울진군에서 경산시까지의 왕복 이용요금은 4만4천 원이다. 김땡땡 씨의 한 달 수입은 장애인연금 20여만 원이 전부. 한 달 살림의 1/4 가량을 사용해야만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장콜은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관외요금이 시외버스 요금의 2배를 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중증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비싼 값을 치루는 셈이다.
그나마 울진군은 왕복운영을 하고 있지만 (왕복운영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 다른 시·군은 왕복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북 장콜은 통합된 운영기준 없이 지자체별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시·군을 벗어나면 이용체계가 달라질 뿐더러 차량이 부족해 시외이동 예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울진군 내 이동은 어떨까? 필요할 때 예약해서 즉시 이용하는 ‘콜택시’면 좋겠지만, 관내 이동의 경우에도 3일 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이용가능한 버스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울진군에 도입된 저상버스는 무려 ‘0대’! 그러니 장콜은 김땡땡 씨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장콜 역시 단 3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1대는 시외이동 예약이 있으면 울진군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동권 꼴찌, 놓치지 않을 거예요
‘2011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꼴찌’
‘2013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꼴찌’
‘201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꼴찌’
Ctrl C+Ctrl V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력에서 보듯이, 경상북도는 몇 해 전부터 ‘이동권 꼴찌’의 타이틀을 독점해 왔다.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2016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상북도에는 2016년 기준 총 115대의 특별교통수단이 운행되고 있다. 현행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 제5조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의 법정기준대수를 1급 및 2급 장애인 200명당 1대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경상북도는 총 180대의 법정대수를 도입해야 한다. 물론 이 도입기준 역시 매우 모호한 것이어서, 장애계 일부에서는 일찌감치 법정기준대수 200% 도입을 요구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경북은 기초지자체에서 돈이 없다며 운영비를 만들고 있지 않으니, 최소한의 법정대수조차 운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토부는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통해 2016년까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기준 보급대수 100%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2017년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까지도 보급률이 65.3%에 불과하다. 전국 7개 특별시 및 광역시, 10개 광역 도 단위에 순위를 매기면 단연 최하위 기록이다.
법정기준 대수? 아이고, 의미 없다
이동권 꼴찌라는 낙인(?)의 힘이 큰 탓인지, 경상북도는 최근 3년 새 장콜 차량을 집중 확대해 왔다. 경상북도가 법정대수를 채우기 위해 차량을 구입하고, 각 시군에 배정한 것이다. 그러나 부랴부랴 차량을 구입 한들, 시·군 단위에서 열악한 재정을 이유로 운영비를 만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실제 2016년 기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대수 차량 197대는 모두 도입이 완료됐지만, 시·군 단위에서 운영 예산을 마련하지 않아 실제 운행률은 60%도 채 미치지 않고 있다.
저상버스 현황은 더 심각하다. 2016년 기준, 경상북도에는 총 91대의 저상버스가 보급돼 있다. 경상북도는 2016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30%인 340대를 저상버스로 도입해야 하지만, 2016년 현재 보급률이 7.6%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체 23개 시·군 중 단 5개 지역만이 저상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즉, 나머지 18개 지역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는 뜻이다. 이에 경상북도는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구입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각 시·군에 저상버스 구입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시·군 단위에서 열악한 재정과 도로요철 등의 이유로 도입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까지 도입이 완료됐어야 할 법정대수가 언제 충족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이쯤되면, 지키지도 않을 계획에 뭐하러 ‘법정기준’이라는 거창한 말을 갖다 붙였나 싶다.
단순히 이동권 꼴찌기록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면, 시외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경북도가 시·군과의 연계방안을 어떻게 마련하고 통합해 나갈 것인지, 재정이 부족한 기초지자체의 운영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농·어촌 및 산간지역 지형에 맞는 교통수단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연구하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상북도가 의지를 가지고 이러한 대책을 실행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례로, 올해 4월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한 특별교통수단 광역콜센터의 경우, 각 시·군의 반발에 부딪혀 시스템 통합조차 이루지 못했다. 시외이동을 연계하고 통합운영을 추진하기 위해 도입된 광역콜센터가 본래의 취지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도 차원에서 겨우 정책이 만들어져도, 시·군으로 내려가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답답한 상황. 도 단위에서 겪는 익숙한 벽들 중 하나다.
경상북도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정책, 없어도 너무 없다!
비단 이동의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자립해 살기 위해서는 집, 돈, 활동보조, 교육, 문화생활, 관계 등 여러 영역에서의 다각적인 지원과 경험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시설이나 집에서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꾸릴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의 경험과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경북에서 만약 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시도한다면, 그러한 시간을 충분히 통과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지원과 경험의 장이 보장될 수 있을까? 바꿔 말하자면, 경상북도가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결심하고, 시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체계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안타깝게도, 경상북도는 아직 탈시설·자립지원 정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에 핵심적인 요소인 주거와 활동보조 정책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주거공간인 자립생활 체험홈 등에서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자립생활센터는 모두 도내 단 2곳이다. 즉 나머지 21개 지역에는 자립생활 체험홈이 한 개도 없다. 거주시설퇴소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자립생활정착금의 경우, 1인당 지원금액이 1천만 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성인 기초생활수급자로 자격이 제한돼 있고, 임차보증금으로 사용할 경우 지원 후 3년간은 용도를 변경할 수 없다. 즉, 기초수급자가 아니면 아무리 소득이 없어도 지원받을 수 없고, 집 보증금으로 정착금을 사용했다면 살림살이를 사거나 생활하는 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돈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수년간 이어진 지역 투쟁으로 경북 활동보조 추가지원 제도가 신설되고, 그 기준 역시 완화돼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낮은 수가, 상시적인 고용불안, 돌봄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인해 활동보조인 수급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기준을 완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역시 산재해 있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고령화가 진행된 지역일수록 서비스 인력이 부족해지고, 남성 활동보조인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으니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나 활동보조 사각지대에 또 다시 내몰리게 되는 장애인이다. 탈시설 정책이라 할 수 있는 체험홈·장애인자립 생활센터는 고작 2개, 그나마 있는 정착금은 지원자격이 너무 까다롭고, 활동보조 추가지원은 작은 지역으로 갈수록 활동보조인 수급이 어려운 상황. 이러한 조건들은 결국 자립생활 체험홈 또는 센터가 없는 지역의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한 장애인, 재가장애인 등 소위 지금의 제도에서 또 다시 제외되는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탈시설·자립생활, ‘함께 살자’는 당연한 이야기
이 협약의 당사국은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인정하며, 장애인이 이러한 권리를 완전히 향유하고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여기에는 다음의 사항을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가.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
나.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생활과 통합을 지원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 보조를 포함해, 장애인은 가정 내 지원서비스, 주거 지원서비스 및 그 밖의 지역사회 지원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다. 일반인을 위한 지역사회 서비스와 시설은 동등하게 장애인에게 제공되고, 그들의 욕구를 수용한다.
위 내용은 ‘UN장애인권리협약’ 19조에서 천명하고 있는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의 일부분이다. 한국은 지난 2008년 12월, 위 협약을 비준했고 2016년 현재 전 세계 170여 개국이 ‘UN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국으로 있다. 19조의 내용은 간단하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상북도는 여전히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배제하고, 격리시키는 ‘시설수용’ 중심의 장애인복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상북도 내 장애인복지과가 독립된 과로
설치되고 자립담당계도 신설됐지만, 거주시설 중심의 장애인복지정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인 변화는 체감하기 힘들다. 경북에는 현재 88개의 거주시설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서울·경기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이다. 최근 5년간 경북의 거주시설과 거주 장애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그간 무수한 시설 인권침해와 비리 문제가 언론에 등장하고,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이 탈시설·지역사회 자립생활로 변화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시설과 시설거주인은 증가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경상북도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야만 한다.
포항에 사는 이모모 씨의 안부를 물으며
경북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체계가 너무나 취약한 탓에, 체험홈 입주를 하지 못하고 바로 자립을 한 탈시설 당사자 이모모 씨가 있었다. 그는 모든 일상생활에 활동보조가 필요한 최중증장애인이었는데, 포항의 한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다 임대아파트 한 채를 얻어 나갔다. 며칠 전 지진이 있던 날, 지진 진원지가 포항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모모 씨에게 얼른 전화를 걸었다. 그가 16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수화기 너머로 별 일 없으시냐 물었고,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활동보조 24시간은 안 되냐고 물으시기에 경북은 그렇지만 계속 싸우고 있다고 답했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누가 모모 씨 집으로 가지?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뒤에 지진이 나면? 센터가 그와 가까이 있으면 좋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모모 씨의 안부를 물으며, 탈시설-자립생활-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함께 사는 것은 결국 개인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풀어가야 하는 것인데, 국가와 지역사회가 각자의 책임과 고민을 끊임없이 외면해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시간이면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시대에, 누군가는 두 달을 서둘러 차편을 알아봐야 하고, 딱 한 번 사는 인생의 자유를 찾는 시대에, 누군가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시설로 보내어지는 아이러니. 그렇기에 우리는 가리워진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지역사회에 등장하고, 말하고, 싸운다. 탈시설·자립생활은 경상북도가 추진하는 여러 사업들의 목록 중 하나가 아니다. 경상북도가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증진을 위해서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인가, 즉 장애인복지정책의 궁극적인 방향, 가치, 철학의 문제다. 더 이상 수용시설 중심의 정책은 장애인 ‘복지’가 아니라는 것. 경상북도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이라는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 함께 살기 위한 경북 장애인 정책의 답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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