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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장애계의 고인 물, 장애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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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의 복지관은 기사의 '비판적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1980년대 초 시작된 국내 장애인복지관의 역사가 40년을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 장애인복지 거점 기관’이라는 초기의 명성이 유명무실하게, 장애계에서는 지역사회 내 장애인복지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데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다. 장애인의 탈시설과 효과적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방안 논의가 활발한 이 시점에서 장애인복지관이 가야할 방향은 과연 어디일까.

 

장애인복지관은 무얼 하는 곳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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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A씨. 국내 대다수의 중증장애인이 그러하듯 한정된 반경 내에서 어렵게 생활을 유지해오던 어느 날, 그와 가족은 한 지인을 통해 ‘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의 존재를 알게 됐다. 덕분에 운 좋게도 A씨는 복지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지만, 상담 이후 돌아온 건 특별히 원하지는 않아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되는 몇몇 교육 및 재활 프로그램 계획 정도. 이마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를 기다려야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설명이었다. A씨는 내가 도움 받을 구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복지관이 우리 동네에 왜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국내 장애계에서 지역사회 복지관 역할에 대한 논란은 복지관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다. 장애인복지관은 1981년 유엔총회에서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를 계기로 국내에 하나둘 들어섰는데, 이전까지 주로 격리생활시설이나 집 안에서 소외돼 온 장애인의 복지를 증진시키겠다는 목적에서 일본, 유럽 등 장애인 재활기관의 모델을 참고해 구축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역사회 자립을 목적으로 한 장애인복지는 치료와 기능향상에 집중했기 때문에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이와 관련된 서비스 요구가 무엇보다 활발했다. 1982년 시립서울장애인복지관 개관을 시작으로 2011년 195개소에서 점차 늘어나,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국내에 총 231개의 장애인복지관이 있다.

하지만 재활, 교육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지역사회 복지관이 점차 늘어가는 만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장애인들이 서비스 이용 대기자명단에 오르게 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A씨와 같이 복지관이 수용하지 못한 나머지 인원은 ‘장애인복지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조차 모르는 채 살게 된 것이다. 오랜 대기 끝에 서울 지역 복지관에서 몇몇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한 장애인 당사자의 부모는 “복지관 프로그램이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단편적이고 당사자의 서비스 폭이 좁은 몇몇 프로그램만으로 아이가 앞으로 지역사회를 살아가는 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에 늘 갈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제자리걸음 중인 ‘장애인복지관’

이 같은 복지관의 한계와 맞물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그 주변 환경, 즉 ‘사회’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장애패러다임의 변화로, 사회적 모델이 강조되면서 복지관에도 권익옹호활동, 지역사회활동 등 당사자가 지역사회 한 주민으로서 주체적으로 지역사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복지관에서 이런 시대적 흐름과 장애계 이슈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장애인 삶의 질 향상에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업에만 힘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서초구립한우리정보문화센터의 성희선 관장은 현재 복지관 체계가 이 같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같은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영에서만 해도 상당수의 복지관에서 장애인이 아닌 종사자의 입장이 주가 돼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장애인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하던 과거에는 그 방향만이 정답인양 복지관 종사자도, 이용자도 별다른 의심 없이 향했다. 그래도 수요에 비해 공급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복지관 입장에서 특별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이렇게 타성에 젖어 정작 장애인당사자의 목소리는 뒷전이 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복지관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큰 변화는 아직까지 없다. 여전히 지역사회 내 한정된 장애인만이 한정된 복지관의 서비스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과거에 비해 복지관은 더 늘어나고, 종사자의 임금은 늘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지역사회 장애인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장애인당사자 입장 전달체계 부족

결국 복지관을 향한 장애계의 비난은 지금까지 이뤄져 온 복지관 운영 방향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지만, 종사자들 역시 비판의 내용들을 전혀 모르거나 묵인해 온 것만은 아니다.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회복지사의 길로 접어든, 관리자급 이하의 종사자일수록 이미 고착화된 복지관 시스템 안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복지관 체계에 회의감을 느껴 결국 그만두거나,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속 종사한다는 것이 한 복지관 종사 경험자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복지관에서 종사자 개개인이 담당하고 있는 사업량이 절대적으로 적지 않다. 복지관 예산에서 70~90% 이상이 인건비와 행정운영비로 쓰이고, 정작 사업을 운영할 예산은 늘 부족하니, 그 비용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또는 일반기업에서 할당받은 단기 프로젝트 사업에서 충당한다. 이러한 프로젝트 기간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정도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업은 물론 사업을 담당하던 인력마저 유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불안정하게 사업에 쫓기고 있는 것이 상당수 복지관의 현주소다. 때문에 현장 사회복지사들은 각종 사업들의 보고서 작성과 행정처리에 집중하느라 정작 장애인 당사자를 대면할 기회를 갖기 어려운 구조다. 나 역시 복지관에 있는 동안 최대 12개의 큰 프로젝트 사업을 동시에 진행한 적이 있다. 서비스 당사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게 소원이었고, 이것이 복지관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종사자들이 장애인의 목소리보다 사업과 평가결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안정한 복지관 운영 실태와 함께 장애인 당사자의 삶과 복지관 현장과 거리감 있는 평가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면서, 서울시에서는 ‘서울형 시회복지시설 평가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지난 2016년 한 차례 시범평가를 진행했다. 2016년 11월 진행된 서울형 사회복지시설 시범평가 결과 보고회에서 서울시의회 박양숙 보건복지위원장은 “양적 성과와 문서중심의 중앙평가는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시범평가로 서울시의 지역적 특성과 복지환경을 반영해 보다 질적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취지를 밝혔다. 해당 평가에서는 기존까지 중요시되지 않던 당사자의 권리와 주체성, 지역 특색에 맞는 복지관의 역할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아직 시범단계에 있어 종사자들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과, 새로운 평가를 통해 어느 정도 당사자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인지는 숙제로 남아 있지만, 당사자의 주도성과 복지관의 자율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평가되고 있다.

 

지역사회 장애인 자립을 위한 노력

지난 2016년 서울시립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남부복지관)은 개관 30주년을 맞아 앞으로 복지관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전 직원과 함께했다. 남부복지관의 송주혜 국장은 장애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남부복지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정한 당사자 중심 서비스 실현’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작년부터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연계해 개인예산제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관에 20년 이상을 종사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종사자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때도 있어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복지관 30주년을 계기로 관장님을 포함한 직원들과 변화된 장애패러다임의 변화에 공감하고, 기존의 복지관 체계에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사자 중심 서비스 제공’이 단순히 복지관 내에서 이용자의 욕구를 묻고, 그에 따라 최대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복지관 내에서 한정적 선택해야 한다는 데에서 비장애인과의 차별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봤다. 전문 도구를 활용해 특히 발달장애 당사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예산을 산정해 할당된 예산을 지역사회에서 사용하는 개인예산제가 장애인이 지역사회 주민으로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복지관 종사자들은 이 과정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조력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 한 가지 변화로 오랜 기간 운영해 온 이미용실을 최근 폐쇄했다.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진행하던 사업이 결국 장애인과 지역사회와의 단절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성에서 내린 결정이다. 과거 진행된 한 실태조사에서 지역사회 많은 주민들이 장애인복지관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용실을 폐쇄하는 대신 복지관 이용자들이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지역사회 여러 미용실을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장애 요소 제거를 조력하는 역할을 복지관 종사자들이 할 계획이다. 두 방법을 둘러싸고 입장간의 여러 쟁점이 있다. 합의점을 찾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도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복지관 차원에서 진정한 ‘당사자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겪어야 할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지역 내 유관단체와의 네트워크 구축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이하 영등포복지관)은 주민조직화를 통해 지역사회 장애인이 보다 안정적으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력하고 있다. 영등포복지관의 조윤경 국장은 이 방법이 지역사회 장애인의 자립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국장애인차별 철폐연대와 같은 장애단체뿐만 아니라 지역 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단체와 기관들과 긴밀하게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복지관 안이 아닌 밖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장애인의 자립기반을 조금씩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장애인복지관’이 비장애인을 만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서울형 평가의 영향 있었지만, 종사자들에 대한 관장님의 신뢰와 기다림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관계를 형성해 간다는 것이 정형화된 평가지표로는 증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서서히 비장애인이 주류인 사회로 스며들어야 신뢰감도 쌓인다. 그렇게 한 마을모임의 운영위원으로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도 생겼다. 주민들과 공공기관조차 복지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른다. ‘장애인이 행복한 복지관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들어야한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의 이명묵 관장님의 말에 크게 공감했고, 이것이 우리 영등포 복지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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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의 핵심은 ‘당사자’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모든 복지관이 재활과 교육사업보다는 오로지 자립을 위한 사업에 집중해야 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역사회 장애인의 자립 지원을 위해 각 지역마다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의 역할 차이는 무엇일까. 앞으로의 복지관의 모습에 대해 성희선 관장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국내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생겨난 데에도 결국 복지관이 해당 역할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자립지원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복지관 모델이 없기 때문에 자립생활센터 모델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복지관과 자립센터 역할의 모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사회 장애인복지관의 유효성은 여전하다. 일부 복지관에서 이미용실 서비스를 복지관 내가 아닌 지역사회로 돌린 것처럼 복지관 내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가 모두 복지관 밖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들로 단기간에 가능한 일도 아닐뿐더러, 그 모든 것이 당사자들이 원하는 방향이라고 단정내리기도 어렵다. 장애인복지관만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전문가 혹은 행정가가 아닌, 장애인 당사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정혜란 기자  sousms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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