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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마음으로 듣고, 가능성을 보라

사람중심계획 전문가 잭 피어포인트- 린다 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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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에서는 사람중심계획과 개인예산제를 주제로 2017년 장기기획을 진행해 왔다. 사람중심계획의 도구를 통해 발달장애인 개인의 꿈과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우는 과정, 그리고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사례들을 다루면서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과정들을 선보였다. 지난 9월, 사람중심계획의 기본 개념과 그에 따른 도구들을 설계한 잭 피어포인트(이하 잭)와 동료 린다 쿤(이하 린다)이 내한했다. 국내에 앞서 활발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해외의 사람중심계획을 지켜 본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배제와 소외를 없애기 위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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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내전 상황을 겪는 아프리카에서 지낸 때가 있었다. 당시 다양한 약자들의 고통을 목격하며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 경험이 캐나다로 돌아온 뒤의 활동에 영향을 줬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내가 시작한 활동은 학교 내 장애 학생에 대한 것이었다. 교실에서, 더 넓게는 학교에서, 더 넓게는 지역사회에서 배제 또는 소외되는 학생들을 보고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 사람중심계획을 향한 첫 걸음이었던 것 같다.”

잭은 사람중심계획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먼 과거의 아프리카를 떠올렸다. 사회정의에 기울었던 관심이 특정한 경험을 통해 확장되면서, 사람중심계획을 만드는 기초 동력이 된 셈이다. 잭이 무엇보다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한 이유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누적돼야 자연스럽게 불합리한 현상을 바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장애 학생들은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여 있는 듯 했지만, 사실 모두가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교사 등 학교 내 비장애인 성인들이 장애 학생을 한 명의 아이로 보기 이전에 의료적 기록으로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장애와 상관없이 아이를 아이 그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들에게 아이의 성장 스토리를 들려달라고 했고, 점차 아이와 아이를 둘러싼 지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걸 알게 됐고, 당사자와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한 사람중심계획을 구상할 수 있었다.”

 

당사자를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

글을 아는 아이와 글을 모르는 아이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 사용하게 된 도형화와 주위의 조력자들을 모아서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던 것 등은 현재 사람중심계획의 도구로 발전했다. 하지만 도구나 방법의 발전보다 강조된 것은 ‘경청’이다. 잭과 린다는 사람중심계획을 설계하고 이를 활용하는 활동을 지금까지 해오면서 무엇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린다는 결국 당사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당사자 안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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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획을 수립할 때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그 전까지는 지역사회 등 당사자 외 공동체 내에서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방법은 당사자 안에 있다고 판단했고, 당사자 없이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상황을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을 실행하는 과제도 당사자와 주변인이 나눠가지게 했고,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실행하면 주변인들이 도와주는 개념으로 진행할 수 있게 했다.”

잭은 사람중심계획을 실행하는 입장에서 시혜적인 관점을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미리 평가하지 않도록 강조했다. “당사자들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해준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당사자들과 함께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중심계획을 실행하면서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귀로 들으면 자신이 가진 지식을 기반으로 당사자의 욕구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꿈에 대해 묻는 것에 인색해 진 이유가 바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실행 여부를 떠나 마음으로 듣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보는 과정이 사람중심계획의 본질이다. 당사자의 꿈과 비전을 존중해야만 계획을 실행하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다.”

 

정부 정책화는 경계할 지점 많아

본지에서 간담회 등을 통해 열띤 토론을 나눴던 개인예산제도 언급됐다. 사람중심계획과 개인예산제를 묶어 함께 가는 것에 대해 린다는 선행 조건이 충족돼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말했다. “사람중심계획과 개인예산제는 충분히 관련이 있다고 본다. 사람중심계획의 일면에는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두 가지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우선 탄탄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또한 촘촘하게 짜인 계획에 따라서 개인예산이 잘 집행될 수 있으려면 조력자의 역할이 더 강조돼야 할 것이다. 이것들이 충족됐을 때, 개인예산제가 사람중심계획을 뒷받침하는 좋은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린다와 잭 모두 사람중심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법제화 및 제도화 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잭은 미국의 예를 들며, 기계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 사람중심계획을 도입하고 있다. 그들은 업무처리를 쉽고 빠르게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활용했다. 당사자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사람중심계획에 적절한지 아닌지 결과가 나온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사람중심계획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고, 그것은 사계절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듯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예를 든 것과 같은 시스템은 앞서 이야기한 중요한 가치들을 모두 잃고 있다. 사람중심계획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다. 정부차원에서 정책화를 통해 확산을 목표로 하면 기계적인 활용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사람중심계획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적정하다고 생각한다.”

이어 린다는 계획 그 자체를 결과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많은 정부에서 사람중심계획을 실행하면서 특히 계획 수립에 중점을 둔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고 완성되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계획이 다 세워지면 사진으로 남기고 끝내버린다. 사람중심계획은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행동하면서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하고 또 다시 계획을 세우는 방식으로 당사자 삶을 따라 계속 가는 과정이다. 어떤 단어나 문장, 장면으로 결과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가 바뀌고, 당사자의 삶이 바뀌어나가는 과정 없이 계획 세우기를 과제로 생각하고 완성된 계획을 결과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만나고 공유하고 쌓아가길

사람중심계획을 받아들이고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실무자들을 위한 조언도 이어졌다. 린다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습하면서 멘토들뿐 아니라 서로가 풍부하게 대화를 통해 경험을 나누길 바란다”며 “어려운 사례가 있다면 공유하고 각자 생각하는 해결책에 대해 논의하는 등 지속적인 만남의 기회를 만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잭은 사람중심계획을 통해 발견된 좋은 사례를 당사자 및 가족 등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을 추천했다. “사례가 퍼져나가면 사람들은 사람중심계획의 긍정적인 효과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실천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좋은 사례도 쌓일 것이다. 사람중심계획 도입 단계이니만큼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실천의 의미를 다듬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길 바란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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