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이 아니라 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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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웨덴인가?’ 미국과 일본, 유럽 선진국들의 복지정책을 일일이 살펴본다 해도, 최종 지향점은 언제나 스웨덴으로 향하게 된다.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국토를 가졌지만, 인구는 940만 명에 불과한 나라. 국민 중심의 복지가 가장 완성도 높게 실현되고 있다는 스웨덴은 언제나 복지의 최종 해답지를 제공할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총 25명의 대규모 연수팀을 조직해서,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4일까지 11박 13일의 스웨덴 장애인 정책 연수를 다녀왔다. 그리고 연수기간 동안 현지의 12개 기관과 16회 미팅을 진행한 강행군의 성과를, 9월 18일 서울 이룸센터에서 연수 결과 보고대회의 형식으로 발표했다.
장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복지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는 지난 3월부터 스웨덴 연수 준비에 착수해서 연수팀 구성 및 연수 기관 선정을 거친 뒤, 11박 13일이라는 짧지 않은 스웨덴 현지 방문을 실시했다. 귀국 후 7월 말에 연수 결과 자체 보고회를 가졌고, 이번 보고대회는 부모연대 전체 회원들과 장애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유의 장으로 마련됐다.
현지 연수는 3인이 1개조가 돼서 하나의 주제를 집중 탐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날 보고대회는 탐구와 기관 방문을 직접 담당했던 서은경, 김신애, 민자영, 조경미, 강금조, 조소영, 한인선, 문상엽 씨가 각각의 주제별로 발표를 맡았다. 정책 연수의 대상은 크게 두 분야로 나눈 서비스 지원 체계와 분야별 지원 정책이었는데, 이를 다시 세분화해서 장애인 복지 체계 및 서비스 판정절차, 정책 모니터링, 탈시설 및 자립생활 정책, 가활 서비스, 소득보장 및 고용, 사회적 협동조합, 거주시설, 주간활동 및 레저스포츠, 활동보조 등의 주제에 집중하며 제도와 현장을 살폈다.
“개인의 변화에 맞춰진 기존의 재활 (Rehabilitation) 중심의 복지정책이 아닌, 장애인을 둘러싼 인적 물적 환경 변화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태의 가활(Habilitation) 중심의 복지정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복지관과 치료실 등 재활 중심으로 진행되던 기존의 서비스를 가활 중심 서비스로 전환해야 한다. 장애를 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대회에서 큰 호응을 얻은 스웨덴의 여러 복지정책 중, 참가자들의 관심은 가활 서비스에 집중했다. ‘선천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 기능이 발달하기 이전에 장애를 입은 사람을 위한 재활’을 뜻하는데, 제도와 환경의 틀에 맞추는 재활과는 다르게 사람 그 자체를 우선시한다. 평생지원을 고려해서 아동과 청소년, 성인과 부모에게 각각의 서비스를 지원하며, 무엇보다 ‘임상으로 입증된 방법만 서비스로 제공’한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라서 개념의 이해가 쉽지
않은데, 가장 간단한 예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키가 170cm인 사람한테 160cm 크기의 침대에 맞춰 생활하라는 게 ‘재활’이고, 그에게 180cm 크기의 여유 있는 침대를 제공하는 게 ‘가활’이다. 장애 자체를 중심으로 사람이 환경에 맞춰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바꾼다는 의미가 된다. 장애를 ‘비정상’의 상태로 보고 ‘정상’의 틀에 다가가도록 만드는 게 재활이라면, 가활은 사람 그 자체를 긍정하며 그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도록 문을 열어놓는다. 이건 ‘왜 스웨덴’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만큼,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첨부하는 그림의 예처럼, 담장 밖에서도 야구 경기를 볼 수 있게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겠다며 딛고 올라설 사과상자를 제공하지만, 사회의 현실은 가진 자들 중심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데 비해, 스웨덴은 담장 자체를 없애버리는 정책을 쓴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환경을 위해 모든 장벽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장애인이니까’ 사회의 틀에 맞춰야 하는 게 아닌, 신체적 정신적 고유성을 존중받으며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변화시킨다. 장애가 더 이상 장애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신을 도입해야 한다
스웨덴의 ‘시설폐쇄법’ 또한 보고대회의 뜨거운 이슈였다. 스웨덴 역시 1950년대 전후까지는 수용시설이 확충됐지만, 이후 경증장애인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환경을 만들었고, 1994년에 시설폐쇄정책이 수립됐다. 1997년에 ‘정신적장애인에 대한 시설폐쇄법’이 제정됐고, 1999년 12월 31일자로 스웨덴의 모든 요양시설은 운영을 중단했다. 아동정신과 의사였던 칼 박사(Karl Grunewald, 1921~2016)라는 선구적 인물이 시설과 전문병원의 폐해를 조사한 뒤 폭로함으로써, 국가 복지정책의 대전환을 이뤄낸 것이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아동정책과 가족정책이 큰 인상을 남겼다. ‘국민의 집’이라는 개념 또한 마찬가지다. ‘집(가정)의 기본은 공동체와 동고동락에 있다. 훌륭한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 이런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이런 정신을 담은 ‘국민의 집’이라는 연설문이 발표된 게 1928년이었다. ‘모든 사람을 참여시키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라는 틀은 그런 기반 위에서 만들어져 왔던 것이다.”
“스웨덴의 개인 맞춤형 공적 서비스 지원 체계는 국내 장애계, 특히 발달장애 정책개발을 위한 선진 사례로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서비스 신청과 접수, 조사와 판정, 연계 등의 모든 과정이 공무원과 관계기관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진행되고 제공된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엄청난 투자가 공적 지원체계의 뒷받침이 된다. 스웨덴은 지자체 차원에서 4조7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한다. 연방정부 차원에선 20시간 이상의 활동지원 서비스에 연간 5조 원 이상의 예산이 지원된다. 다양한 소득보장제도에도 연간 3조 원 이상이 투입된다.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시간의 제한이 없고, 2명의 활동지원이 가능하다. 전체 인원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적은 장애인들에게 우리의 복지예산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훨씬 많은 지원이 된다는 거, 당연히 복지의 질과 혜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장애정책의 국제적 표준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권리협약)’임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게 됐다. 스웨덴은 2009년 1월에 권리협약을 비준했고, 이 협약의 내용이 국내법에 반영되도록 법 개정에 적극 움직이고 있다. 개인의 고유성 보호를 강조한 제17조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신체적 및 정신적 고유성(integrity)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와 제26조 ‘당사국은 장애인이 최대한의 독립성, 완전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및 직업적 능력 그리고 삶의 전 분야에서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동료집단의 지원을 포함해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 바로 스웨덴의 가활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권리협약을 국내 모든 장애관련 법과 제도에 도입하고 적용해야 할 시급한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특별초청강연자로 초빙된 신필균 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은 스웨덴에서 오랜 기간 지냈고 현지의 정책연구원으로도 직접 활동했던 경험담을 참석자들에게 전한 뒤,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동시에 진행될 거라 예정된 헌법 개정의 내용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현행 헌법 제34조 5항에는 ‘신체장애자’라는 표현이 존재한다. 1987년 당시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 표현 역시 ‘장애인’이 아닌 권리협약의 규정 그대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또한 헌법이 너무 추상적이다. 현행 헌법 제34조 2항에는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이렇게 막연한 문장으로 돼 있는데 구체성을 담아야 한다. ‘모든 국민은 질병·장애·노령·실업·사망·출산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적절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를 포함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렇게 바꾸자는 개정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보다 합리적인 중지를 모을 수 있는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은 마침발언을 통해, ‘우리의 현실에 맞는’이란 전제조건을 앞세우며 법과 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정부를 비판했다. 스웨덴의 훌륭한 법과 제도를 충분히 반영하는 게 가능한데도, ‘우리의 상황’이란 논리를 대며 가장 절실한 주요 내용부터 누락시키는 게 정부의
태도라는 것이다.
“부모연대를 포함한 장애계의 기나긴 운동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쳐왔다. 진정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정부는 부양의무제 폐지를 받아들이고 ‘국가부양제’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탈시설이 아닌, 완전한 ‘시설폐쇄’를 정부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말로만 선진국을 외칠 게 아니라, 선진국다운 복지정책을 선진국 수준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 길에 부모연대가 앞장서겠다. 이번 스웨덴 연수를 포함해서 그동안 진행했던 부모연대의 모든 해외 연수를 종합해서, 빠른 시일 내에 각국의 발달장애 복지정책 비교와 분석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권리협약이 우리의 권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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