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의 디딤돌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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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장애인 인권과 권익증진에 영향을 끼친 디딤돌 판결과 걸림돌 판결이 선정됐다. 올해 선정된 판결은 디딤돌 판결 7건, 걸림돌 판결 4건, 주목할 판결 2건 등이다. 특히, 올해에는 테마주제로 지적장애인의 의사능력과 시설종사자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양형기준에 대한 판결을 추가 선정했다. 자료집은 2017년 11월 15일 「2017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보고회」를 통해 공개된다.
디딤돌 판결
면접과정에서 청각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차별구제 청구소송
조리외식과 교육훈련생 선발과정에서 청각장애인에게 아무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채 장애를 이유로 선발과정에서 불합격시킨 사건이다. 법원에서는 이를 장애인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해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명했다. 이 판결은 정당한 편의 제공은 굳이 먼저 요구하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해 당연히 제공돼야 하는 것을 천명한 점, 면접에 임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제공돼야 하는 정당한 편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설시한 점, 장애를 원인으로 한 차별행위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뇌병변장애인의 특수교사 임용시험 불합격처분 취소소송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역사회에 온전히 참여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적절한 편의와 사회적인 태도’임을 확고히 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용시험 현장에서 장애를 가진 시험 응시자가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아 스스로의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만 같아 기쁩니다. 오랜 꿈을 어렵게 이룬 저로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행복함과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 소송 당사자 인터뷰 중
특수교사 임용고시에 응시한 뇌병변장애인이 1차 시험과 2차 수업실연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2차 시험 중 면접에서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지 못해 불합격한 사건이다. 법원은 면접과정에서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한 점은 중대한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채용 시험에서의 정당한 편의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단한 첫 번째 판결로서 공무원 채용시험의 절차를 바꾸고, 채용 분야에서 장애인에 대한 권익 보장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적장애 아동 성매수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항소심 사건
그동안 피해자와 가족들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출석을 요청해서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갔어요. 그러면서 다시 자신의 경험을 상기하며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피해자는 힘들어 했죠. 그걸 지켜 본 가족들도 힘들었고요. 피해자가 앞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 인터뷰 중
경계성 지적장애를 가진 청소년에게 간음 또는 성매매를 강요한 것에 대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사건으로, 이 사건의 원심 재판부 판결에서는 피해청소년이 자발적 성매매의 대상이 됐다는 취지로 가해자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하 아청법)의 성매매와 성폭력행위의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구제하기 위한 보호법익에 의거해 가해자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아청법의 보호법익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성매매 관계에서 성매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취약성과 위력관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계기됐다.
틱 장애의 장애인등록신청을 거부한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원고의 틱 장애가 장애인복지법 상의 정신적 장애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2조 1항 [별표1]의 장애인의 종류 및 기준에 관련 규정이 없어 장애인 등록 신청을 반려한 사건이다. 법원은 이에 대해 장애 정도의 경중을 불문하고 등록대상 장애인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규정에 위반된다고 판결해 장애인등록 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했다. 이 판결은 의학적 판단기준에 전적으로 의존한 장애의 개념을 사회통합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개선하는 것에 기여할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피고인의 수사절차상 권리보장이 되지 않은 경우 증거능력을 불인정한 항소심 사건
지적장애인 피고인 A에 대해 수사기관은 그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A의 조사과정에 국선변호인이나 신뢰관계인을 동석시키지 않았으며 조사는 장시간에 걸쳐, 며칠 간 연이어 이뤄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렇게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제출한 것에 대해 형사소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정하는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결은 수사기관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장애등급변경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의 판결까지 집행정지 신청을 인정한 사건
‘선고 후 25일까지 효력정지’를 명한 것은 혹시라도 원고가 1심 판결에 대해 불복해 항소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도록 한 것입니다. 즉 판결 송달 기간과 항소제기 기간 등을 고려해, 그 기간에 집행될 가능성에 대비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지요.
- 사건 담당 박길성 부장판사 인터뷰 중
12년 전 뇌전증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원고가 장애와 관련해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는데도 장애등급이 하향조정된 것에 대해 행정소송 판결까지 처분의 집행정지를 요청한 사건이다. 법원은 장애등급변경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판결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변경된 처분이 그대로 적용돼 생계유지 곤란 등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인정해 효력정지 기간을 사건의 판결 선고 후 25일까지 연장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제1심 판결 선고 후 해당 장애인이 겪을 혼란상황에도 장애인의 생존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재판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판결이다.
정신보건법 제24조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
구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에 의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한다)가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해 헌법에 불합치하다고 판단한 판례로, 가족이나 부양의무자들이 성인을 그의 의사에 반해 폐쇄시설에 감금시켜 치료받도록 하는 오랜 관행에 경종을 울린 최초의 사법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걸림돌 판결
시설 거주 장애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종사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건
시설 종사자가 거주 장애인을 수시로 폭행하고, 강제로 제압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혀 사망에 이르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의도된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의사소통이 곤란하고 자해로 인한 상해의 위험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물리력의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과 피해자들이 타 장애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을 저지하는 등의 제재적 성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종사자가 장애인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것은 솜방망이 판결이라고 보여진다.
경계성 지적장애인의 임금착취 피해에 대해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적용해 일부 청구만 인정한 사건
7년 동안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근무한 경계성 지적장애인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으로, 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3년간의 최저 임금상당의 임금에 대한 청구만을 인용했다. 임금 착취를 당하는 지적장애인이 시효기간 안에 임금 청구를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판결은 임금채권의 단기 소멸시효제도가 악용된 사건이며, 지적장애인의 의사능력을 획일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이는 재판부가 지적장애와 의사결정지원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이 드러난 판결에 해당한다.
2층 버스의 휠체어 전용공간 확보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사건
2층 광역버스가 휠체어 전용공간 규격을 지키지 않았다며 운수회사를 상대로 휠체어 전용공간 확보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법원은 2층 광역버스에 대해 ‘저상버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휠체어 전용공간 확보의무가 없으며 장애인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는 재판부가 ‘장애인 이동권’을 장애인이 당연히 누리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보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판결이다.
뇌경색으로 뇌병변장애인이 된 유치원 교사 직권면직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한 사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뇌경색이 발생한 A씨에 대해 유치원 교사로서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며 직권면직 처분을 내린 사건으로, 법원은 해당교사가 원아를 직접 교육하는 것 외의 별도의 보직이 없으며, 인사발령은 해당 지역 원아들의 피해가 불가피하고, 2년간의 질병휴직 기회를 이미 부여했다는 이유로 원고의 직권면직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의 현재 신분으로는 다른 직무로의 배치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 일정한 교육훈련기회나 자격취득의 기회를 부여한 후 다른 직무로 배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법원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기각한 판결이다.
주목할 판결
염전사건의 피해자인 지적장애인에게 농촌일용노임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채무를 인정한 사건
이 판결은 장애인의 소득을 산정하는 데 있어 최저임금이 아닌 농촌일용노임을 적용된 판결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피해 장애인이 종사한 농・어업분야는 고도의 지적활동이 필요한 분야가 아님에도 구체적인 근로능력에 대한 평가 없이 지적장애인이기에 40%의 노동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부분은 장애인 차별적 시각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청주 축사 노예 사건 피고인에게 행위에 비해 낮은 양형을 선고한 사건
‘청주 축사 노예 사건’으로 알려진 장애인 학대 사건으로 재판부는 19년 동안 지적장애 2급 피해자를 농장 내에 있는 창고에 기거하도록 하면서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킨 피의자들에게 손해배상을 명했다. 이 사건 판결은 유인죄를 계속범으로 보고, 미지급 임금의 범위를 전체 기간으로 인정해 비장애인에 대한 장애인의 묵시적 주종관계를 고려한 좋은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형을 고려하면서 미흡한 인권의식으로 인한 범행을 참작사유로 기재했다. 이는 비장애인과 중증장애인 사이의 권력관계를 외면한 것으로, 피고인들의 범죄행위에 비해 선고형이 낮게 적용된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다.
테마 판결
‘지적장애인 의사능력’, 판결에 영향을 주는 시각 차이
사법부가 지양해야 될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의사능력을 낮게 보고 판결을 내리는 경우, 다른 하나는 겉으로 보기에 티가 잘 안 나고 일상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경우입니다. 지적장애인 의사능력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쪽의 편견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인터뷰 중
■지적장애 3급인 장애인이 근보증 당시에 의사능력이 없었으므로 근보증 계약이 무효라는 판결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이 휴대전화 가입신청을 할 당시에 의사능력이 있었으므로 계약이 유효하며, 그로 인한 채무가 존재한다는 판결
■정신분열 질환을 가진 지적장애인이 체결한 부동산 매매계약이 의사무능력 상태에서 체결된 것이므로 무효라는 판결
■지적장애 3급인 장애인이 체결한 거래 약정은 의무무능력자의 계약체결로 무효이므로 그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명한 지급명령에 기초한 강제집행을 불허한 판결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 처벌 낮추는 양형사유
‘훈육의 목적으로 일정부분 폭행을 가할 수 있다.’ ‘자해를 할 수 있고 주변의 다른 장애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손과 발을 일정정도 제한할 수 있다.’ ‘보호자들이 장애인을 해당시설에 위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는 식의 재판과정에서 사법기관이 거론하는 내용을 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들을 봐도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아직도 낮은지를 전적으로 보여준다고 봅니다.
- 전라북도 장애인권리옹호센터 몫소리 김병용 센터장 인터뷰 중
■재활원 생활 재활교사로 근무하던 사람들이 시설 거주 장애인을 폭행했으나, 집행유예가 선고된 판결
■거주시설 생활재활교사가 26회에 걸쳐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폭행을 가했음에도 낮은 형량이 나온 판결
■목사부부가 미신고 장애인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강제노동을 시키고 상습폭행을 가한 사안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판결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발가락으로 피해자의 엉덩이 및 항문을 수 차례 찔러 소위 ‘똥침’을 가한 사건에서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된 판결
■장애인복지시설 종사자가 장애인들에게 양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일명 ‘제압복’을 강제로 입히고 감금한 사안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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