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현실과 벽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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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꼴지, 경북
경상북도는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큰 도 지역입니다. 10개의 시, 13개의 군, 2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는 이 넓은 땅덩어리에는 약 17만 명의 등록 장애인이 살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등록 장애인 현황(2017년)에 의하면, 경상북도에는 2016년 12월 기준 총 169,643명의 등록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저는 이곳 경상북도의 10개 시 지역 중 경산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산은 대구지하철 연장으로 시내 지역까지 지하철이 연결돼 있는, 경북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지요. 사무실 역시 비교적 역에서 접근이 용이한 곳에 위치하고 있고, 경북 지자체 중 유일하게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도 충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산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차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 태반입니다. 버스도 안 다니고, 인도와 도로요철이 심한 읍·면 지역은 중증장애인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가깝습니다. 이에 우리 센터 장애인당사자 활동가들의 생활반경은 어쩔 수 없이 접근 가능한 시내 인근을 잘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교통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경산시가 이럴진데, 다른 경북 타 시·군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저상버스는 23개 시·군 중 단 5개의 시 지역만 도입돼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뒤늦게 도입되기 시작한 특별교통수단은 아직 법정대수 조차 운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경북은 국토교통부에서 실시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서 2013년, 2015년 연속 최하위 지역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16년 광역시도별 교통복지지수 17위 꼴찌라는 불명예까지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증장애인은 이동조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사람 만나러, 여행 가러, 교육받으러 가는 것 어느 하나 쉽지 않습니다. 거리에서, 동네에서 장애인을 이웃주민으로 마주칠 일도 없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로 ‘장애인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다!’며 외쳤던 서울의 시간이, 2017년을 살아가는 경북 땅에서 여전히 멈춰 있는 것 같습니다. 통계에 보고된 경북 17만 명의 장애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시설 외 대안이 없는 지역 장애인들
열악한 이동권 문제 외에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벽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시설’입니다. 지금까지 국가가 시설수용정책을 끈질기게 고수해 왔으므로, 수용중심의 장애인복지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 지역에 비해 장애인당사자들의 투쟁이 늦게 시작됐던 경북은, 시설 중심 장애인복지정책이 더욱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방 공무원들도 지역사회도 장애인은 당연히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기 어려운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경북에는 현재 88개의 거주시설이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2017, 2017년 장애인 복지시설 일람표) 서울·경기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이곳에서 약 2천 7백여 명의 장애인이 먹고, 자고, 생활합니다. 물론 다수의 시설들이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산골짜기, 외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외부의 접근이 어렵고 생활인이 집단적으로 관리되는 시설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인권침해를 야기해 왔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 경북에는 구미, 경주, 포항 등지에서 거주시설 내 인권유린과 비리 문제가 잇따라 발생해 왔지만,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체계가 열악한 지역 여건에서 시설 인권침해의 대안으로 또다시 시설이 호명되고, 탈시설이라는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시설을 정상화해 유지하는 방안들만이 되풀이돼 왔습니다.
시설의 대안이 결코 시설일 수 없지만, 주거지원 정책, 충분한 활동보조 서비스의 보장, 자립생활센터 등 경북은 전반적인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인프라가 매우 취약합니다. 활동보조 추가지원은 올해 들어서야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농·어촌 지역에는 서비스 제공인력이 부족해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자립생활 체험홈과 자립생활센터는 전체 23개 시·군 중 단 2지역만이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어, 나머지 시·군은 현장에서 자립생활을 지원할 전달체계가 전무한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다수의 장애인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유일한 대안으로 ‘시설’을 고민합니다. 시설이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시설 말고는 살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법과 제도가 장애인이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서 천명한 가슴 벅찬 선언들, 장애인당사자들이 치열하게 싸워서 만들어온 법들, 무수한 목숨들의 희생 속에서도 ‘함께 살아야 한다’고 지켜온 우리의 가치들. 그러나 경상북도를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 특히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지원체계가 열안한 지방일수록 법에서 천명하는 ‘권리’들은 속된 말로 ‘포시라운(경상도 사투리. ‘아주 귀하게 대접받고 자라서 험한 것을 잘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뜻한다._네이버 오픈사전 인용)’이야기가 되곤 했습니다.
여전히 장애인의 인권이 보편적 권리의 문제로도 접근되지 않는 지역 현실 속에서, 싸워나가야 할 편견과 만들어가야 할 정책과 인프라도 많다는 걸 여실히 느낍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장 약한 고리가 튼튼해야 전체가 튼튼해지는 법이겠지요. 더 열악한 지역의 현실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북을 비롯한 지역의 현실이 바뀌면 한국사회 전체 장애인의 인권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니까요. 더 많은 장애인당사자 주체들의 목소리가 힘 있게 모여, 경북지역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그 날까지 지역에서, 또 전국에서 함께 싸워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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