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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나의 리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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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다고 해서 마냥 수동적이고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이끌 수도 있고 동지를 지지를 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동료상담에서 장애와 리더쉽을 다룬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는 누구냐는 물음에 ‘투박’이 떠올랐다. 박경석, 박옥순. 이 바닥에선 너무나 유명하신 분들이다. 내 기억에 박경석 대표는 너무나 강렬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식구들과 함께 뉴스를 보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뉴스에선 당시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위해 지하철 철로 위에 드러누워 있는 장면이 나왔고, 철로 위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며 왜 시민들의 이동을 가로막느냐며 인상을 찌푸렸다. 욕하는 노인들도 보였다. 그 가운데 한 아저씨가 목에 사다리와 쇠사들을 감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 아저씨가 무서웠고 이상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난 성인이 됐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장애가 있는 나를 받아줄 곳이 없다는 현실을 알아가고 있었다. ‘난 잘할 수 있는데 왜 안 시켜주지, 집에만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억울했다. 그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를 알게 됐다. 그리고 우연히 장애우대학에서 그 무서운 아저씨를 또 보게 됐다. 박경석 대표였다. 박 대표는 장애운동에 대한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난 후, 질문시간에 왜 그렇게 무섭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는지, 그런 폭력적인 방식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지 물었다. 박 대표의 답은 간단했다. “나쁘게 보면 할 수 없지 뭐” 나쁘게 보겠다는 사람들에게 굳이 장애인이니까 착하고 예쁘게 봐달라고 애원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 장애를 다시 보게 됐다. 엄마 말 잘 듣는 착하고 불쌍한 아이로 살아온 나는, 단순한 고집과 성질로 치부됐던 나의 저항정신을 끄집어내야 내가 내 삶에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나의 리더. 옥순언니는 나를 활동가의 길로 가게 해준 사람이다. 아마 당사자는 기억도 못 할 것이다. 당시 옥순언니는 연구소 부장이었다. 당시 연구소에는 <새벽지기>라는 장애대학생 모임이 있었다. 현재 소장인 영철오빠를 비롯해 현장에서 활동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박옥순 부장은 늘 바쁘게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회의도 많고 야근도 잦았지만, 우리가 가면 언제나 환영해줬고 어린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다.

그러던 중, 내가 두 번째 직장에서 부당해고 당하고 연구소 인권팀의 도움으로 고용센터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 경험은 인간을 참으로 처참하게 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을 꺼내 진술해야 하고, 다시는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 했다. 할 수만 있으면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옥순 부장이 날 불렀다. “왜 먼저 얘기 안 하냐? 고민 있으면 먼저 얘기해야 할 것 아냐.”

그때 난 다시 사회에 나가 비장애인들과 부딪치며 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장애복지(운동)를 공부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학과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다들 짜기라도 한 듯 사회복지과를 권유했다. 그토록 원하던 곳에서의 두 번의 경험이 실패했고, 그 상황이 고되다고 해서 전공이 아닌 다른 일로 바꾸는 것이 마치 내가 실패자인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고, 먼저 장애복지 일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분들께 죄송스러웠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박옥순 부장은 “너의 이런 경험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앞으로 후배들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했다. 나는 엄청난 지지와 기운을 받았다. 새로운 목표를 얻은 것이다. 그 뒤 나는 현장과 실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장애인 복지 일을 하면서 많은 장애인단체와 인연을 맺었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사실 이 두 분과 사적으로 만나거나 따로 이야기하진 않는다. 가끔 집회현장에서나 만나 인사하고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다. 무지했던 나에게 엄청난 기운과 삶에 목표를 심어줬다는 사실도 자신들은 모를 것이다. 아마 이렇게 공개적이고 일방적인 고백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고 뜨거움을 나누며 장애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고 든든하다.

사실 최근 센터 내에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다른 활동가들은 나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했다. 솔직히 이럴 때 나는 난감하고 괴롭다. 리더로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모든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 놓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본 진정한 리더는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함께 가는 것이고, 해답을 찾아주기보다 그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리더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밞고 있다.

작성자글. 김민정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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