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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장애여성의 여성 정체성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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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cornellie/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청년기 여성의 여성 정체성 인식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어 왔다. 여성의 고학력화와 사회적 진출은 여성들을 출산, 돌봄 노동에 집중됐던 여성의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게 했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및 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역할 수행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이로써 청년기 여성들은 기존의 가부장제 여성 프레임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이 평가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장애여성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장애여성의 여성성에 대한 연구는 결혼, 출산, 양육 등을 다루는 등 이성애와 결혼 제도 내에서의 여성성 선택에 초점을 맞춰 다뤄져 왔다.

본 연구는 변화 조류 내에서 청년기 장애여성의 여성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탐구하고자 했다. 특히 장애여성으로서의 몸의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여성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20~30대 여성 5명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시행했고, 인터뷰 녹취록을 토대로 여성 정체성 변화와 관련된 이슈를 추출했다.

 

전통적인 여성성과의 충돌

기존의 장애여성의 성 정체성을 다루는 문헌들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인터뷰에 참여한 장애여성들은 가족과 연애 관계 내에서 전통적 여성성과 관련된 다양한 억압들을 경험한다.

엄마가 뭐, 제가 장애가 있으니까 애를 (낳아) 못 기를 것 같아서 결혼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실 때도 있죠. (연구참여자 A) 그 어머니가 알고는 집안을 다 뒤집으셨어요. 굳이 저한테 안 할 말, 할 말을 해서 저도 같이 뒤집어 엎었어요. 그래서 (남자 친구가) 중간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을 보다가 음…그냥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우리 집에서 되게 귀하게 자랐는데 내가 왜 이런 수난과 수모를,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들은 1차적으로 가족 내에서의 억압을 경험한다. 부모들은 장애가 있는 자신의 딸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자녀를 과잉보호하거나 자녀의 연애 및 결혼에 대해 방어적 태도를 견지한다. 장애를 가진 딸의 연애와 결혼에 회의적인 가족의 장벽을 넘어서 가까스로 연애에 성공한 후에도 ‘연애 상대방의 부모’라는 장벽에 부딪힌다. 다섯 명의 연구참여자 중 두 명이 연애 상대방의 부모와의 갈등을 경험했으며, 그 중 연구참여자 B는 ‘우리 집에서 귀하게 자란 내가 왜 이런 수난과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연애 관계에 종결을 고했다.

 

장애여성의 몸과 여성 정체성의 변화

장애여성의 여성 정체성을 이해하는 근간은 ‘몸’에서 출발한다. 장애라는 특성과 여성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지닌 장애여성의 정체성은 결국 ‘몸’에서 형성되는 이미지와 ‘몸’으로부터 재단되는 역할 그리고 ‘몸’에서 비롯되는 기능적 측면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본적 토대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며, 특히 여성에게 ‘몸’ 혹은 외모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박명숙, 송사리, 2015). 장애여성의 성 정체성을 다루는 연구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주요하게 지적했다. 이은미(2005)의 연구에서는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못한 신체 손상과 외모를 가진 여성들은 자존감 손상을 경험한다고 보고했다. 박명숙과 송사리(2015)의 연구에서 장애여대생들은 미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고 싶지만 이에 무관심하고 회의감을 느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들도 역시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이라 여겨지는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회의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것에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또 이제 점점 근육통, 이게 많이 생기면서 이제 자세가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스트레칭 하는 법, 그 다음에 거북목 아니면 어깨가 라운드된 부분은 이제 어떻게 좀 교정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몇 가지 운동법을 알게 돼서 집에서 짬나는 대로 하고 있는데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구참여자 B)

장애가 있기 때문에 재활 명목으로 운동하는 게 습관이 돼서 웬만한 여자애들보다는 살짝 체형이 좋아요. (본인의 신체의 불편함이나 장애가 있어서 섹슈얼리한 스킨십을 할 때 두려움이나 고민을 해본 적이 있으세요?) 그런 건 없어요. 왜냐면 몸매가 예쁘다든지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연구참여자 E)

연구참여자 B와 E는 각각 휠체어를 이용, 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이들은 장애에서 오는 근육통, 근육경직과 같은 2차 질환을 예방하고,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 체력관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연구참여자 E는 ‘몸매가 예쁘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며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구참여자들의 인식은 장애여성을 ‘무기력하고, 나약하다’라고 여기는 기존의 인식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연구참여자 E는 수영, 요가뿐만 아니라 벨리댄스를 배우며 그 안에서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직접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두 다리가 절단된 이후 장애를 정상화하거나 가리기를 거부하며 의족을 드러내고 사진을 찍는 패션모델, 장애인들이 가지기 어렵다고 간주되는 ‘섹슈얼리티’를 드러내기 위해 누드 사진을 찍는 모델들처럼 장애여성의 몸 이미지에 대한 세상의 해석에 맞서려는 자발적인 시도들은 장애여성 개인의 몸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장애여성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Garland-Thomson, 2002).

변화하는 여성성의 ‘선택’ 2012년 ‘한국의 성인지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25~39세 여성의 비혼율은 35.5%로 2000년 대비 18.3% 증가했으며,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낼 의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30대 여성의 52.7%가 ‘있다’고 대답하는 등 2000년대 이후 비혼율은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들도 모두 적극적으로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에 크게 억압을 받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근육병이 있으면 아이를 낳는 데 좀 힘들단 말이에요. 낳을 수는 있는데 몸이 굉장히 망가지니까. 결혼… 결혼을 하는데는… 솔직히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데, 할텐데, 그냥 사실 아이가 없다면 결혼을 안 하고 동거로 지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구참여자 D)

소수자인 친구들이 많다보니까. 그러니까 뭔가 일반적인 삶을, 회사에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렇게 일반적인 삶을 사는 친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서. (결혼에 대해) 크게 압박을 느끼지는 않고요.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들은 전통적 여성성에 부과되는 결혼과 출산, 양육을 장애가 있는 몸으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강요됐던 왜곡된 여성상에 균열을 시도하는 사회 분위기 내에서 비혼을 선택하고자 하고 있다. 장애여성으로서 전통적 여성상을 수행할 때 겪게 되는 위험뿐 아니라 결혼 후 가사 노동 전담, 파트너 중 남성이 자신의 부모에 대한 효도를 여성에게 강요하는 문화, 출산 및 육아의 전담과 이에 따라 ‘경단녀’가 되는 위험들을 감수하지 않고, 출산과 육아에 드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투자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비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즐겁게 살자’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에요. 물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지만 그렇죠, 그 즐겁게 사는게 중요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내 시간을 쓰는 게(아까워요). 내일 죽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가지고. (연구참여자 E)

여행 가고 이런 것도 되게 좋아해서, 그냥 뭐, 어떤 성취보다는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연구참여자 A)

이들은 가정과 사회생활을 하며 장애여성에게 부과되는 다양한 억압에 직면하고 이에 대응하며 살아왔다. 또한 현대 청년들에게 부과되는 다양한 청년문제들, 높은 실업률, 비싼 등록금 그리고 이에 따른 정서적 불안을 함께 견뎌왔다(김홍종, 2015). 청년, 장애인, 그리고 여성에게 부과된 곤경에 직면한 연구참여자들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히려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꿈꾸게 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청년기 장애여성은 전통적 여성성 이데올로기에서 새로운 여성성과 마주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실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적 여성성에서 비롯된 억압을 이겨내며, 대안적 방안을 선택해서라도 스스로의 여성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확립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매 순간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고자 노력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장애 등급과 상관없이 몸을 운용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지체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수행됐다. 또한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들은 주로 대학 및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고학력 여성이기 때문에 청년기 장애여성의 정체성으로 일반화해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에서 살펴보았듯이 장애여성은 연령대, 그리고 공유하고 있는 문화에 따라 정체성 변화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장애여성들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17년 한국장애학 2호에 게재된 홍서윤, 문영민의 논문 ‘청년기 신체장애여성의 여성 정체성 형성 경험 연구’를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

김홍중(2015).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한국사회학, 49(1), 179-212.
박명숙, 송사리(2015). 장애 여대생이 경험한 여성 정체성 인식에 대한 연구 : 장애 특성 뒤에 숨겨진 여성성, 한국장애인복지학, 29, 49-71.
이은미(2005).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아시아여성연구, 44(1), 97-130.
Garland-Thomson, R. (2002). 보통이 아닌 몸, 손홍일 역(2015). 서울: 그린비.
『연합뉴스』, 2013.05.16., “25-39세 여성 미혼율 10년 전의 두 배 근접”,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3/05/16/0901000000AKR20130516144000005.HTML

작성자글. 문영민/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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