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인 중심 사회에 가려진 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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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라클 벨리에(The Belier Family, 2014)’에서 주인공 폴라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즉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이다.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듣는 폴라는 음악가가 되길 꿈꾸고, 이런 폴라에게 부모는 “네가 농인으로 태어나길 바랬다”고 말한다. ‘농’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이 대사가 가진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폴라의 부모가 농을 단순히 장애로만 봤다면 사랑하는 딸에게 절대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폴라의 아버지 로돌프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장애가 아니다. 나의 정체성이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한 장면 |
농인=청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사전적 정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거나 전혀 들리지 않는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장애인복지법상 청각장애인의 장애등급은 청력 손실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청력 손실이 특정 데시벨 이상인지에 따라 6급에서 최고 2급까지 장애등급이 나뉘며, 청각장애와 다른 유형의 장애를 중복으로 가지는 경우 장애 1급 판정을 받기도 한다. 흔히 ‘청각장애인’과 같은 의미로 ‘농인’을 혼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청각장애인을 듣지 못하는 사람, 농인을 듣지 못하는 동시에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농아사회정보원 김상화 원장은 두 단어의 접근법부터가 엄연히 다르다며 두 용어의 차이를 설명했다. “‘청각장애’는 의료적, 병리학점 관점에서의 정의다. 이 용어는 그 대상이 가진 신체적 한계에만 집중한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생긴 것이 ‘농인’이라는 용어다. ‘농인’이란 장애를 떠나 그들의 존재 그대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화적 측면의 정의라고 볼 수 있다”
농아인협회 전 부장이자 현재 인권단체 장애인정보문화누리에서 활동 중인 김철환 활동가 역시 두 용어는 대립된 개념이 아닌 관점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으로 불리는 사람은 법률적으로 명시된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농인’은 문화적 요소가 가미된 용어이기 때문에 구성 요소를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화를 제1언어, 즉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기본적인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코다와 농문화를 공유하는 여러 주변인까지도 아우를 수 있다. 반대로 청각장애인이라도 농문화 집단의 구성원이 되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듯 ‘청각장애인’과 ‘농인’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난청인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청각장애라는 장애유형을 대표하는 단체로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청각장애인협회가 있지만, 두 단체가 다소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청각장애인협회의 김재호 회장은 “두 단체는 장애유형이 비슷하나 분명 차별화가 필요하다”면서 두 단체 구별의 이유를 설명했다.
“청각장애인협회 회원의 대부분은 중도장애를 입은 사람들로, 농문화가 체화되지 않고, 수화언어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무엇보다 청력재활을 통해 자신이 원래 소속돼 있던 사회로 복귀하길 희망한다. 물론 농인과 같이 수화를 배우면 좋겠지만, 그것은 강요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왜 농문화인가
농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운동은 1990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김철환 활동가의 설명에 따르면 1995년 핀란드 헌법에 농문화를 독자적인 문화로 명명하는 작업이 처음 이루어지면서, 이를 필두로 유럽 각지에서 수화언어 관련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청각장애인으로서 시혜적인 혜택을 구걸하지 않고, 문화적·언어적 소수자로서 당당히 살아갈 것을 주장하는 ‘농문화 선언’이 이어진다. 결정적으로 2006년 UN에서 장애인권리협약(CRPD,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 채택되는데, 여기에 ‘농인의 문화를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농을 바라보는 인식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이에 따라 수화언어를 영어 등의 청인언어와 동등한 위치의 언어로서 인정하고, 농문화를 계승・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수화 시, 수화 극, 농 영화 등 농문화가 예술형태로 구현된 데프 아트(Deaf Art)도 발전하게 된다. 김상화 원장은 농문화가 형성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엄밀히 말해 ‘청각장애 문화’라는 말은 맞지 않다. 장애는 결코 문화가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농인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쪽 감각이 후퇴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하듯 농인은 소리를 듣는 청인과 비교해 인간으로서 전혀 뒤떨어지거나 열등하지 않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다. 그들을 청인과 같이 개조하는 건 힘든 일일뿐더러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 나치가 유대인의 민족성을 폄하하며 억압하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농인은 구화 못지 않게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수화라는 언어로 소통하고, 그들의 문화를 형성해 나가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낀다”
김철환 활동가는 농문화가 생존의 문제와 관련이 크다고 말했다. “문화란 인류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다. 문화가 인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견도 일면 맞지만, 일차적으로 문화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형성된 것으로 본다. 농인 역시 문화라는 경계 안에서 동료를 만들고 집단을 구성하며 세대에 걸쳐 그 문화를 공유하며 자신들의 입지 내지는 정체성을 확인한다. 즉 이들에게 농문화란 소수자로서 청인 중심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전략인 셈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문화
실제로 농사회 안에서 농인들은 수화로의사 소통하고 농문화를 공유하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농인가정에서 자라 초중고 과정을 농학교에서 마친 농인 대학생 A씨는 대학이라는 청인사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귀가 들리지 않는 사실이 문제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인 학생이 대부분인 대학에서는 모든 게 청인 위주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인 B씨는 “성인이 될 때까지 수화를 배우지 않고 언어훈련을 받으며 청인학교에 다녔다. 아무리 언어훈련을 한다고해도 당연히 청인과 비교했을 때 듣고 말하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어 항상 소외감을 느끼고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성인이 된 이후 우연한 기회에 수화를 배우고 농사회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때 비로소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농인들은 그들만의 끈끈한 결속력을 보이며 청인에게는 다소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농사회는 워낙 소규모이기 때문에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의 김세식 상임이사는 “농사회 규모가 워낙 작고, 또 연대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사소한 소문이라도 모두에게 퍼지는 건 눈 깜짝할 사이다. 하지만 서로 오해가 생기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한번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마주칠 일이 많기 때문에 금방 관계를 회복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상화 원장은 농문화를 한마디로 ‘시각의 문화’라고 정의한다. 그만큼 농문화에서 시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농사회에서 한글이름 대신 ‘얼굴이름’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얼굴이름이란 그 사람의 특징을 살려 수화로 만든 이름으로, 자음과 모음을 수화로 일일이 표현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한글이름 대신 사용하는 것이다. 주로 얼굴에 보이는 점의 위치, 얼굴형, 헤어스타일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들이 많은데, 제3자가 지어주기도 하고 원하는 경우 본인이 직접 지어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수화언어 역시 농문화의 시각적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는 항상 테이블에 화분이나 컵 등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를 습관적으로 제거하거나, 또 화질이 좋은 스마트폰 영상통화 어플에 대한 정보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농문화만의 특징이다.
또 여느 문화들에서와 같이 농문화에서는 세대별 차이가 나타난다. 50세 이상의 세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청문화에 폐쇄적이고 농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등 농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젊은 세대에서는 대체적으로 인공와우 수술이나 보청기 등의 보조기기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며 청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농문화를 위협하는 청인 중심 사회
‘농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수화’인 만큼 여느 문화에서보다 농문화에서 수화라는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수화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청인이라도 각종 매체 등에서 수화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화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청인들이 수화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수화가 한국어와 언어체계가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국수화라고 해도 한국어와는 언어체계 자체가 엄연히 다른 독립적인 언어다. 때문에 평생 수화언어만을 사용한 농인들은 한국어의 언어 체계를 잘 알지 못해 한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또 아무리 한국어 훈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청각을 통해 한국어를 습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투에 차이를 보이거나 특히 조사(助詞) 사용에 어려움을 느낀다.
김상화 원장은 이런 농문화 특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한 청인 중심적 사고는 농문화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청인이 수화를 잘 알지 못해 많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예회 등에서 한국어 노래를 어순 그대로 수화로 바꿔 보이곤 한다. 예를 들어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라는 가사를 수화로 표현할 경우, 수화에서 ‘가을’은 ‘바람이 불어 가을’이란 의미로 바람을 나타내는 동작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 가사는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의 의미와 비슷하게 된다. 결국 농인들은 여기서 그 어떤 예술적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결코 수화가 한국어에 비해 표현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한국의 작품성 있는 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 많은 한계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농인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지극히 청인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 원장은 이외에도 ‘농인을 위한 행사’라는 타이틀로 청인이 주도하고 농인은 구석에 손님처럼 앉아 있는, 주객이 전도된 행사에서 농인의 장애를 부각시키고 시혜적 혜택을 강조하는 행위 역시 농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협하는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철환 활동가는 한국사회에서 농문화가 소수자의 문화로서 인정되고 자리 잡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한국사회에서 이질적인 문화는 더 받아들여지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도 2015년 12월 31일 수화언어법이 통과됐지만, 추진 초기에 있었던 ‘농문화 지원·육성’ 조항이 입법과정에서 결국 빠졌다. 수화언어법에는 농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소수문화는 그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규제의 대상이 되고 결국 쉽게 소멸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법률적 명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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