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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립 지원,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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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자립생활주택

지난 2015년 11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됐다.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초석으로서 기대를 모은 발달장애인법의 시행이 한 해를 훌쩍 넘긴 현재,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요구해온 목소리는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을 위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완전한 자립을 위한 지원은 다양한 과제를 안고 고민과 시범운행을 반복하는 중이다.

 

자립을 위한 발판, 자립생활주택

서울 용산구의 주택가, 빨간 벽돌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는 평범한 현관문을 열면 전동휠체어가 놓여 있다. 방 세 개에 거실로 구성된 집은 여느 집들이 그러하듯 방금까지 사람이 지낸 흔적으로 가득했다. 문마다 사용자의 이름이 붙어 있는 각각의 방들은 방 주인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취향에 맞는 장식품들과 건강상태 등에 따라 꼭 필요한 물품들이 곳곳에서 오랫동안 자리한 티를 냈다.

해당 집은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자립생활주택으로, 자립에 대한 욕구를 가진 장애인 세 명의 보금자리다. 일반적인 가정집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풍경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거실에 세워져 있는 ‘일상생활훈련’ 게시물과꼼꼼하게 위험에 대비한 화재 관련 장치들이었다. 일상생활훈련 게시물에는 개인별, 구역별로 훈련하고 익혀야 할 일들 목록이 정리돼 있었다. 거주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지원인력과 함께 자연스럽게 목록의 일들을 익혀나가는 중이었다. 반찬을 만드는 등의 복잡한 요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주인들이 직접 집안일을 해결했다. 거실 중앙 벽에는 비상대피도와 화재안전수칙이 게시돼 있었고, 소화기 사용법도 쉽게 설명돼 있었다. 또한 부엌 천장에는 열기를 감지하는 장치가, 가스렌지와 연결된 가스 밸브에는 자동 개폐장치가 설치돼 만에 하나 발생할 화재 사고를 예방했다. 가스 밸브 자동 개폐장치는 30분 이상 가스밸브가 열려 있지 못하게 한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냄비를 불에 올려두고 집 밖으로 나간 사건도 있었다. 30분 경과 후 가스밸브가 자동으로 잠겨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집 안은 연기로 가득 찼었다고 한다. 자립생활주택 운영기관인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이하 생활연대)에서 자립생활주택을 준비하면서 철저하게 화재 사고에 대비한 것이 빛을 발했던 사건이자, 모든 자립생활주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위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거주인들은 취업을 통해 직장을 다니거나 주간활동을 했다. 한 거주인은 물품을 모으는 것을 선호해 동네 고물들을 집 안에 쌓아두고 폐기하지 못했는데, 생활연대에서는 그러한 욕구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취업이 가능한 고물상을 찾아 연계했다. 그 외 거주인들 또한 모두 각자의 성격과 욕구에 맞는 주간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자립생활주택에 거주한 거주인은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자립생활주택을 떠나 독립할 예정이다.

 

인력부족에서부터 유형간 벽까지

기자가 방문한 자립생활주택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주택 가형’으로 상대적으로 경증인 장애인들의 거주와 자립생활훈련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모든 장애를 아우르는 주택이지만 실제로는 50% 이상의 거주인이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이 생활연대 유신희 팀장의 설명이다. “자립생활주택 가형은 어떤 장애를 가졌든 자립의지만 있다면 입주할 수 있지만, 과반수 이상의 인원이 발달장애인으로 채워져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변처리, 의사소통 등을 기준으로 경증에 속하는 발달장애인들만이 가형에 입주할 수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중증발달장애인들만을 위한 ‘자립생활주택 다형’이 마련됐다. 다형은 운영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까지 체계가 구체적으로 잡혔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같이 만들어가는 단계다.”

가형과 다형의 차이점은 입주 가능 조건과 입주인 수, 지원인력, 예산 등이다. 가형과 나형(자립생활가정)은 각 3명의 입주 인원 제한이 있고, 다형은 2명만 들어갈 수 있다. 가형과 나형은 두 곳 모두를 1명의 담당자가 전담하는 반면, 다형은 다형만을 전담하는 1명의 담당자가 지정된다. 담당자 외에 발달장애인 개인에게 주어지는 활동보조서비스가 지원인력이 되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모든 자립생활주택은 지원인력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신변처리, 언어, 사회적 활동 등 대부분의 활동에 지원이 필요한 중증발달장애인들이 거주하는 다형에서는 전담인력 1명으로는 지원이 어려워, 보조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뉴딜 일자리를 통한 추가 인력도 확보하고자 하지만, 충원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 조아라 활동가는 인력난이 결국 입주 가능한 장애 정도와 거주인의 욕구를 제한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내놓은 다형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중증발달장애인 대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구성된 인력 형태로 중증발달장애인 입주자 모두를 개별지원하기란 어렵다. 그러다 보면 한정적인 지원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발달장애인만 입주시키게 되기 때문에 최중증발달장애인은 다시 갈 곳이 없어진다. 또한 이미 입주해 있는 중증발달장애인의 생활도,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해 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운영 상황에 따라서 입주인들의 삶이 조정되는 셈이다.”

열악한 지역 내 인프라 기반도 어려움으로 지목됐다. 대부분의 자립생활주택 운영기관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기 때문에 센터 자체적으로 지역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신희 팀장은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주택이지만,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일부 거주인들에게는 일상생활 속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지역공동체가 필요하다”며 “자유나 자립생활의 의미에 대해 체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로움으로 인해 시설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택 유형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모였다. 유형별 주택 운영을 지켜본 유신희 팀장은 “입주 후 훈련 결과 등의 변화에 따라 가형에서 다형으로, 다형에서 가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형에 입주한 발달장애인이라고 해도 자립생활주택 거주 과정에서 훈련을 통해 역량이 향상되면 가형으로 갈 수 있고, 가형에 입주한 발달장애인이 힘들어하는 경우에는 다형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조아라 활동가는 나아가 주택 유형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택 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 간에 칸막이를 치고 특정대상만 다형에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는 구분 없이 누구나 어디든 들어갈 수 있게 해야 더 많은 발달장애인들의 탈시설과 자립을 도모할 수 있다. 현재 다형 운영 방식 이상으로 모든 자립주택에 대한 지원 수준을 높여서, 입주 기준에 맞는 특정 대상자가 없다고 해서 주택을 비워두지 않게 해야 한다.”

 

직업재활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한 취업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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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자립을 위해 거주지 확보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취업이지만 발달장애인의 취업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다. 장애인개발원 최한나 직업재활팀장은 학령기 이후 발달장애인들이 취업해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등을 졸업한 발달장애인들의 절반 이상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특수학교 졸업 이후에 대학이나 전공과 1,2학년 과정을 위해 진학하는 발달장애인들도 적지 않지만 교육 과정의 연장일 뿐, 그 과정이 끝난 발달장애인들의 취업률도 마찬가지로 절반을 넘지 못한다.”

장애인 취업 지원은 현재 장애인개발원에서 진행 중인 직업재활 사업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장애인단체, 장애인복지관, 직업재활시설 등 대부분 기관에서의 취업 지원 과정은 취업 알선 및 취업 후 적응지원으로 진행된다. 일반 취업시장에서 당사자가 직접 경쟁고용에 뛰어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취업 연계가 이루어진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보호고용으로 취업에 연계되는 경우가 많고 급여는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직업센터 김민영 팀장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한 독립 퇴근이 어렵거나,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적합한 직무배치, 적응기간의 부재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취업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발달장애인의 취업 연계 성공률은 상대적으로 인지능력이 좋은 경증발달장애인에 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증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쉽게 취업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발달장애에 대한 업체주들의 이해도가 낮아, 업무 능력이 전무하다고 판단해 고용을 꺼리거나, 신체적 능력만을 보고 업무 능률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가졌다가 실망해 고용이 오래 유지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김민영 팀장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업체주들도 발달장애인 근로자에게 적절한 환경 조성을 힘들어한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게 되면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단순하고 명확한 업무를 맡기고 갑작스러운 업무 환경 변화 등을 지양해야 한다. 직장 내 대인관계 및 사회성에 대한 부분도 꾸준히 지켜봐야 하고, 업무에 익숙해짐에 따른 업무 능력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여서도 안 된다. 이 외에도 발달장애인 개인마다 고유한 특성에 맞는 업무와 환경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최저시급 이하를 주면서 고용한 입장이어도 업체주들이 모든 걸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장애인개발원은 선진국의 장애인 취업 시스템을 차용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까지 시범사업으로 진행되는 ‘퍼스트잡 지원사업’은 병원, 마트, 인쇄소 등 지역사회 사업장에 장애인 근로자와 현장 직무지원인을 배치해 직업훈련과 동시에 취업 연계를 실시하는 사업이다. 최한나 팀장은 퍼스트잡 지원사업을 통해 업체주들이 발달장애인의 가능성을 목격하길 기대하고 있다. “퍼스트잡 지원사업은 현장에서 장애인이 업무를 익혀나가는 훈련 과정을 업체주 및 비장애인 근로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직무지원인의 주도 하에 발달장애인들이 업무에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업체주들의 고용 의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훈련 과정에서 고용된 사례도 있어 내년부터는 시범사업이 아닌 연중 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마련되야 할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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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이하 발달센터) 문회원 센터장은 거주와 취업을 포함한 발달장애인의 전 생애주기별 지원이 맞춤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학령기 이전에 발달장애를 인지하는 지점에서부터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쉬운 35살 이상까지, 국가 시스템 전체가 발달장애인의 20살 이후 독립에 목표를 둬야 한다. 현재는 국가 시스템이 생애주기별로 꼼꼼하게 발달장애인을 자립으로 이끌어주고 있지 않다. 발달장애를 알게 되는 과정도 환경에 따라 다 다르고, 학령기에 이르러 교육하는 방향도 부모님에 따라 달라진다. 발달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관련 서비스도 산재해 있는 것들을 일일이 찾아서 신청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설치됐지만, 민간서비스가 발달한 현장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발달센터가 공공전달서비스체계로서 자리를 잡으면 생애주기별 발달장애인들의 욕구가 데이터화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욕구들이 발달장애인 자립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달센터는 발달장애인 개인에 맞춰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정보 제공 및 서비스 연계를 통해 발달장애인이 평생계획을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기관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설 거주 비율이 높은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서는 발달센터만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드러났다. 발바닥행동 조아라 활동가는 발달센터의 성공적 정착 외에, 탈시설지원센터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시설로 유입되기 쉽다. 시설 문제를 발달장애인 자립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때문에 탈시설을 보다 빠르게 추진할 기구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같은 요구를 듣고 탈시설지원센터 설치를 약속한 바 있다. 물론 설치 이후 센터가 가지는 역할과 권한이 과제로 남겼지만, 일단 센터가 설치되면 대구 희망원처럼 시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시설을 해체할지 주도적으로 계획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자립생활주택의 약점을 보완할 새로운 주거 지원 제도도 시작점에 놓여 있다. ‘서포티드 하우징’이라는 지원 주택 사업이다. 서포티드 하우징은 기본적으로 노숙환경에 놓여 있는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거리 아웃리치를 통해 입주자를 선정한다. 표면적으로 노숙인을 위한 제도지만, 시설 내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도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 이성재 차장은 사업이 정착함에 따라 입주대상자의 직접 계약을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운영기관과 공사가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입주대상자가 계약 과정에 개입하지 못한다. 입주대상자는 법력 효력이 없는 운영기관과의 별도 계약 서류를 작성하는 정도다. 아직은 서포티드 하우징 사업이 시작 단계이고, 법적인 발판도 마련돼야 하겠지만, 추후에는 이 사업의 기본 철학을 완성시키기 위해 입주대상자가 직접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 시작하는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 발달센터 문회원 센터장은 “현재 국내 발달장애인 지원 시스템은 태동기”라고 말했다. 생활연대 유신희 팀장은 “발달장애인의 주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국가에서 여러 시도를 해본다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했으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 또한 “시스템이 갖춰진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성과를 논하기도 어렵지만, 열의 있게 시작되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분명 현재의 발달장애인 지원 시스템에 허점이 많고 발전해 이뤄야 할 목표까지 갈 길이 멀지만, 활발하게 발돋움하고 있다는 평가들이었다. 나아가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마련되길 바라는 기대감도 비춰지고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조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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