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4] "제가 살아온 날들을 다시 되돌아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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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복지사회의 새로운 바람, 자원활동
"제가 살아온 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효과 높은 사회봉사명령제
소년범과 성폭행범을 중심으로 시행되던 사회봉사명령제도가 올해부터 성인범에게까지 확대됐다. 시행 7개원간의 성과를 평가해본 결과 시행되지 않았던 지난해에 비해 놀랄만한 재범방지율을 보여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점차 봉사명령 대상자와 봉사영역도 확대되고 있는데 특히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는 시설은 명령대상자들이 가장 큰 감동과 심리적 변화를 가진 곳으로 손꼽고 있다. 현재 사회봉사명령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한 장애우시설의 현장을 찾아봤다.
"명령"받아서 하는 사회봉사
상도동에 사는 김주철(가명·42)씨는 매일 7시경이면 출근을 준비한다. 벌써 20일째 다니는 것이라 출근하는 마음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느낌이다. 목적지는 중계동에 위치한 천애재활원, 그는 여기서 말하자면 "봉사활동"을 한다.
그런데 사실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 결코 아니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한 달 동안 사회봉사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처지다. 올해 3월 차를 몰고 가다가 한 학생을 치었는데 그 학생이 병원으로 옮긴 후 얼마 안 있어 결국 사망해 구속됐었다. 어렵게 합의를 보고 재판을 받았는데 집행유예와 함께 "사회봉사명령 240시간"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을 하게 되니 한 달간 "봉사"만 해야하는 셈이다.
"맨 처음 그 판결을 받았을 때 울화와 함께 한숨이 나왔죠. 그동안 사고 뒷수습을 하느라 날린 돈도 적지 않은데 또 꼬박 한 달 동안 돈벌이가 안되는 일만 하라니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하루 빨리 생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올해부터 생긴 그 봉사명령제도라는 게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사실 여기서 피치 못하게 봉사활동을 하게 되기 전에 그는 길거리에서 장애우들을 만나도 관심이 없어 쳐다보지도 않았었다고 한다. 천애재활원이란 곳에 배치될 때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쓰레기 줍기나 도로정비 같은 일이 아니라 그늘에서 쉬엄쉬엄 일하는 것이니 운좋은 편이 아니냐는 얘기를 보호관찰소 담당자한테 듣긴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힘으로 거동이나 주변정리를 잘 못하는 성인지체장애우,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제때 청소를 하지 못해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도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이력이 붙어 수월하다. 자신이나 다른 활동자들의 손길이 시설이 청결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원에 도착하면 할 일이 눈에 보여 자발적으로 손을 걷어 부치고 일을 하게 됐다.
"다시 찾아오고 싶습니다"
시간만 채우면 그 다음날로 떠나는 사람들이고 대부분 기간이 한 달을 넘지 않은 형편이라 봉사명령자들의 인원은 대개 들쑥날쑥이다. 바로 어제 명령기간이 끝난 사람이 두 명, 현재 남은 사람이 두 명이다. 김 씨를 비롯한 봉사명령자들의 하루 일과는 화장실 청소에서부터 시작한다. 각 방마다 돌며 방을 쓸고 소독약을 잔뜩 묻혀 방을 깨끗이 닦고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 잠시 딴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또 대소변을 치워달라고 이끄는 손길이 있다. 그리고 원 주위의 잡초를 뽑다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천애재활원에서 사회봉사명령대상자들이 일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부터, 재활원 담당사회복지사 김봉성씨는 "사실 중고생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오다시피 해서 일손이 당장 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울보호관찰소측에서 사회봉사명령자들을 받아달라고 협력을 요청해와서 이들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있는 성인들이라 중고생들과는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직원들과 같이 꼬박꼬박 장시간 일을 하니 얼마나 긴요한 일손들인지 모른다. 일이 손에 익을만 하면 봉사명령기간이 끝나 아쉬울 뿐이다.
김주철씨는 "이런 시설이 산교육장이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절감했기 때문에 나중에 자식들과 함께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몸이 불편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달려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김 씨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집행했던 적지 않은 사람들도 이후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가끔 방문을 한다고 한다. 어쨌든 죄를 저지른 상태에서 만난 시설의 장애우들의 해맑은 모습은 건강한 자신의 몸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만들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고 사회봉사명령자들은 한결같이 소감문에 적고 있다.
전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마약사범으로 2백 시간의 사회봉사 명령판결을 받아 장애우시설인 "우성원"에서 봉사를 하기도 했다. 박 씨는 성실한 태도로 봉사명령에 임해 칭찬이 자자했었는데 이후에도 가끔 위문품을 가지고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지난해 한총련사태로 구속됐던 학생들이 봉사명령을 받아 상이군인들의 때밀이나 외출보조원 등으로 일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천애재활원에서 사회봉사명령을 마친 석기철(가명)씨는 "처음 재활원에 갔을 때는 시간만 때우려는 마음으로 갔었지만 원생들과 대화를 한 후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가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6시에 일이 끝나면 다시 일터로 향하는 이중생활을 현실 속에서 한 달을 보내야 했지만 장애우들의 손발이 되고 친구가 되었고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졌다"는 글을 남겨놓고 갔다. 이후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 많은 결연후원회원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글/한혜영 기자
사진/ 윤선애 객원기자
재범률 0.1%로 감소
우리나라에서 보호관찰대상에게 사회봉사명령제도를 실시한 것은 89년부터이다. 우선 소년범이나 성폭행범을 대상으로 시작됐다가 탁월한 재범방지효과가 검증되자 법을 개정하고 인원과 조직규모를 보충해 올해 1월부터 성인범까지 실시하게 된 것이다.
글/ 함께걸음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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