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현장이야기 1] 차별의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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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현장 이야기]
차별의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들
서울 중계동에서 5년째 무료진료하는 중계장애인진료소, 주민호응 높아
93년 9월부터 시작된 무료진료소
서울에서 빈민장애우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노원구 중계동 시영아파트 3단지 내에는 평화종합사회복지관이 있다. 그 평화종합사회복지관의 어린이집은 2주에 한 번씩 진료소로 바뀐다. 중계장애인진료소가 문을 여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료진료소 |
1993년 9월 시작된 중계장애인진료소는 현재 11명의 전문의들이 카톨릭의대, 간호대, 이화여대 간호대생들과 함께 중계동과 인근지역 장애우들을 진료하고 있다. 참여하는 모든 전문의들은 질병에 걸린 장애우를 진료하고 약을 지어주는 것 외에도 정기적으로 건강상태를 검진하는 일도 한다. 또 연로하거나 몸이 불편해 진료소까지 직접 걸어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방문진료도 하고 있다.
진료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그러나 의료팀은 그 전부터 진료소에 나와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진료가 끝난 후에는 환자들의 차트를 확인 정리한 후 평가회의를 하고 나면 황금같은 일요일은 다 가고 만다.
현재 정부는 생계가 어려운 장애우들에게 의료보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빈민장애우들은 일반병원에서도 의료비를 크게 부담하지 않고도 진료를 받을 수는 있다. 또한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통합교육, 통합고용 등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통합을 외치고 있는데 왜 이런 중계장애인진료소가 필요하게 된 것일까?
이 진료소를 4년째 이용하고 있다는 하반신마비 장애우 조면환(45)씨에게 그 대답을 구할 수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당뇨와 고혈압까지 있어 약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복용하고 있다. 약값에 의료보험이 약간 적용된다고 해도 매일 먹는 약값은 만만치 않다. 또한 멀리 있는 병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비싼 돈을 내고 택시를 타거나 어렵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장애우를 맞는 일반병원 간호사와 의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해도 정부에서는 그 돈을 제때에 병원에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장애우 환자를 노골적으로 꺼린다. 그러니 진료를 받는 동안 내내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이고, 간호사나 의사도 사무적으로만 대하기 때문에 그들은 차라리 장애우만 진료하는 이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일반병원에 비해 낙후된 시설에 보잘 것 없는 의료기구와 장비뿐이지만, 이 진료소의 분위기는 따뜻하다. 자원활동을 하는 대학생들도 진료를 하는 의사들도 장애우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진료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찬찬히 물어보며, 상담까지 해준다. 그래서 조 씨는 매달 이곳을 찾는다.
그렇다고 불편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11명의 의사 외에는 모두가 실습생들이기 때문에 서투른 것도 많다. 또 수술이나 엑스레이 촬영같은 진료는 할 수 없다. 대신 인근에 있는 병원을 소개시켜 줄 수 있을 뿐이다. 특히 이만봉(67·전신마비)씨는 약을 타는데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나 진료소에 4년간 다니면서 환자들은 병원사정을 의사만큼이나 훤히 알기 때문에 실습생들의 작은 실수를 보거나 정밀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크게 불평하지는 않는다. 그건 진료소에 있는 의사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하튼 중계장애인진료소에는 이들 말고도 3년 혹은 4년동안 꾸준히 진료를 받으러오는 단골(?)환자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고혈압과 당뇨와 같은 성인병에 합병증까지 있는 복합질환자들이다. 또한 이들의 연령대가 40, 50대 후반이어서 어디가 많이 아프지 않더라도 꾸준히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진료는 물론 생활상담에 소식지 발행까지 폭넓은 활동 벌여
중계장애인진료소는 지역의 장애우를 위해 여러 가지 복지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진료소팀은 맨 처음 평화종합사회복지관으로부터 등록장애우명단을 받아 장애우가정을 일일이 방문했다. 방문 때는 간단한 건강체크와 상담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일지에 남겨둔다. 이 일지의 내용은 장애우들의 개인의료정보로 현재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또한 지역장애우들에게 의료서비스를 하기 전에 그들의 생활실태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지역장애우실태조사와 욕구조사도 실시하였다. 방문일지와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세미나를 하면서 어떤 의료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진료날짜와 진료과목, 그 밖의 건강 상식, 장애관련 정보 등을 실은 소식지를 발간해 환자와 지역장애우에게 배포했다.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오랫동안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비디오도 상영하고 있다. 예약제도 도입하려고 했지만 나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더 번거롭기 때문에 실시하지 않고 있다.
그런가하면 95년에는 그동안의 의료활동을 평가받기 위해 지역 장애우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아주 긍정적으로 나와 의사와 실습생들에게 힘을 주었다.
많은 장애우들이 이곳에서 진료를 받은 후 건강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매일 진료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진료를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는 내용도 있었다.
또 올해 6월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의료기구를 지원받아 장애우 약 90명에게 종합검진을 실시했다. 그동안 장비부족으로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인의협이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종합검진을 실시한다는 이들의 취지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협조해 준 것이다. 지역 장애우들도 좋아했지만 진료소 사람들에게도 무엇보다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재정과 행정상 어려움 때문에 제자리걸음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이 모두 다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빈약하기만 한 재정과 행정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사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료소는 장애우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참신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지만 생각만 간절할 뿐이다.
중계장애인진료소는 약 90명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회원들은 현재 장애인 진료소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이들과 과거에 진료를 했으나 지금은 다른 일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의사와 학생들이다. 이들은 진료소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실습하는 대학생들이 시험기간이어서 진료소에 나올 수 없을 때, 나와서 일을 거들고 있다. 이들이 내는 회비로 의료기구와 약품, 사무용품 등을 사는 데는 조금 빠듯하기 때문에 몇몇 의사들이 사비를 더 내서 운영을 하고 있다. 하루 평균 40명 가량 되는 환자들에게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중계장애인진료소는 누가 소장이고, 누가 과장이라고 딱히 조직체계가 짜여있지 않다. 그래서 재정, 행정상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가 고민하고 함께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각 영역별 전문의가 어떤 낳은 한 명의 환자도 진료하지 못하고 잡무만 보는 때도 있어 이 방법이 꼭 좋을 수만은 없다. 이런 문제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진료소가 지역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진료소는 현재 평화복지관에 있는 어린이 집을 진료소로 이용하고 있지만, 이 장소 역시 임시적으로 빌려 쓴 것에 불과해 지역의 장애우들에게 안정적인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전문 사회복지사가 지역장애우들의 현황과 그 밖의 것을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현재 진료소에는 사회복지사도 한 명 없다.
김윤태 교수(의정부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역시 현재 진료소의 행정은 거의 마비상태라고 털어놓는다. "평화종합사회복지관의 어린이집에서 진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지관에 장애우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복지관의 사회복지사가 지역 장애우 명단을 파악하는 일이나 진료가 있는 날 건물 관리도 해 주었지만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도 자주 바뀌면서 진료소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장애우복지단체와도 전혀 연계가 되지 않아 진료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지역장애우들의 열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면 더 이상 그들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각오로 중계장애인진료소는 그 해결방안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
글/노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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