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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작은 집에서 살지만 큰 마음 품고 살아요"

원주 "작은집" 식구들의 홀로서기 그리고 더불어 살기

본문

유명하지만 평범한 빨간 벽돌집 
 

원주 작은집-빨간 벽돌집식구들

  강원도 원주시의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 태장동에서 "작은집"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무나 붙잡고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린아이들도 "작은집이요?"하면서 빨간 벽돌로 만든 집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만큼 태장동에서 작은 집은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유명세와는 달리 꼬마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주 평범한 집이 있을 뿐이다. 작은집 마당에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고 대문이 없는 작은집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넓고 큰 마루와 그 마루를 중심으로 방과 화장실, 부엌이 있다. 다른 가정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가정집이다. 그래도 작은집이 여느 다른 가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성인이 된 장애우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다. 남성장애우 5명과 장애여성 2명이 모여 생활하는 곳이 "작은집"이다.

  작은집은 1989년에 강복희(35·뇌성마비)씨가 처음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방 두 칸과 부엌, 재래식 화장실이 전부인 자그마한 집이었다. 현재의 "작은집"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방에서 화장실이나 부엌에 가려면 마당을 지나야 하는 옛날 집이었기 때문에, 장애우가 살기에 적합한 집은 아니었다. 그래도 부족하게 나마 작은집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복희씨의 고집과 부모님의 이해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복희씨가 작은집이라는 장애우공동체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평소 "원주기독병원 작업 재활원"을 통해 알고 지내던 황인성(28·정신지체장애우)씨가 스무 살이 되면서 생활하던 고아원에서 독립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고아원에서 나와 독립을 해도 인성씨에게는 자립할 만한 집이 없었다. 그런 인성씨를 보면서 복희씨는 독립해서 장애우들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 제 나이가 27살이었는데, 저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인성이를 보면서 부모님이 안계시면 나도 사는 게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의지하고 살면 외로움도 덜하고 다 같은 장애우니까 소외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작은집을 마련했어요. 정말 작은 집이었죠." 

아직도 멀고 먼 홀로서기
 

  89년에 처음 작은집을 시작해서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장애우는 모두 9명이었다. 좁고 불편한 집이었지만 처지가 비슷한 장애우끼리 모여 살다 보니 한 명, 두 명 늘어나 9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작은집이 시작되던 때부터 있던 식구 중에는 복희씨와 인성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른 장애우들은 나름대로의 길은 찾아 독립했거나 작은집과 비슷한 "서로의 집"을 만들어 분가한 식구들도 있다. 현재는 뜻이 맞는 장애우들이 새로 들어와 작은집에는 7명의 장애우가 살고 있다. 대부분 재활원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고, 장이석(30·뇌성마비)씨만이 작은집을 후원하는 후원회 사람들의 추천으로 들어온 식구이다.

  작은집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3년을 살았다. 그러다 91년에 복희씨는 새로운 욕심을 부려 일을 꾸몄다. 집 앞에 있는 밭을 없애고 그 터에 새로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복희씨는 원주시내 교회마다 작은집의 필요성과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보냈다. 재활원을 통해 근처의 군부대에서도 후원을 받았는데, 인력과 장비를 군부대에서 무료 후원해 줘 현재의 작은집을 지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 지은 집의 이름 역시 "작은집"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 근방에서는 "작은집"이 가장 큰 집이었다고 한다.

  사는 곳뿐만 아니라 장애우들이 모여 생활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생활비마련과 가사노동의 어려움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작은집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생활비 대부분은 "작은집 후원회"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외에는 작기는 하지만 식구 중에 신재웅(30·뇌성마비)씨를 비롯한 3명이 재활원의 자립작업장에 나가 볼펜 만드는 일을 하며 받는 20만원의 월급이 더 있을 뿐이다. 한 달에 겨우 백만원이 될까 말까한 액수로, 물가가 비싼 요즘 7명의 식구가 살아가기엔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작은집의 생활을 도맡고 있는 복희씨는 걱정이 많다. 그 중 하나 작은집 식구들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생업을 찾고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자립을 함으로써 작은집 식구들이 실제로도 완전히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살면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장애우끼리 공동체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은 경제적인 부분을 부모나 후원회원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작은집 식구들에게는 마음의 숙제가 되고 있다.

완벽한 독립을 꿈꾸는 작은집 식구들에게는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걱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은집 식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가게나 일감을 찾고 있다. 그런데 자본금도 없을뿐더러 작은집 식구들 모두가 함께 하기에 마땅한 일거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작은집 식구들의 소망은 사람들로부터 "작은집"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여의치가 않다. 태장동에 작은집을 만들고 장애우가 모여 산지도 8년이 넘었는데, 이웃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아직 여전하다. 물론 처음 작은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을 때보다야 나아졌다지만, 복희씨가 어려서부터 태장동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장애우에 대한 이웃 사람들의 거부감은 작은집 식구들을 속상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원주시청 측에서는 작은집 자체를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가정에서 편하게 살면 되지 왜 굳이 따로 나와서 모여 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도와달라는 것도 아닌데, 작은집 식구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마저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정말 어이가 없다. 

서로를 돌보는 작은집 식구들  

  그러나 작은집 식구들은 주위의 시선과 상관없이 똘똘 뭉쳐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집안 일은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분담하고, 의견 차이가 있으면 싸우기도 하고 이야기로 풀면서 말이다. 작은집에서도 사소한 일로 의견 충돌이 생기고, 서로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벅차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사람 사는 곳이라서 생기는 일일뿐이다.

  "물론 의견충돌이 많죠. 서로 자란 환경이 다른데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더군다나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다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런 문제는 우리가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간혹 장애우 보호시설쯤으로 생각하고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냥 평범한 가정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재웅씨의 말대로 작은집은 형제가 많은 가정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작은집 식구들은 서로의 보호자가 돼서 서로를 감싸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할 경우에는 복희씨와 지용래(28·정신지체)씨가 한 팀이 되는데, 복희씨가 방법을 일러주면 용래씨가 거기에 맞춰 국을 끓이고 간을 맞춰 음식을 만든다. 두 사람이 뭉쳐 한 사람의 완벽한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복희씨를 도와 저녁밥과 국을 끓여놓은 용래씨는, 먼저 저녁을 먹고 원주 세무서로 청소일을 하러 나간다. 그러면 복희씨는 재활원에서 퇴근해 돌아오는 식구들의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작은집에 전화를 걸 경우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데, 바로 김성기(26·지체장애)씨다. 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돕기 힘들고, 식구들 중에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성기씨가 전화를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작은집에서 가장 어리광을 피우는 귀염둥이는 박용희(28·정신지체)씨로, 항상 웃는 얼굴이고,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집안에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점이 나이가 가장 어린 성기씨에게는 불만(?)이 되기도 한다. 분명히 작은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자신인데 오히려 나이가 많은 용희씨가 어리광을 피우고 귀여움을 받기 때문이다.

  투정 아닌 투정으로 어리광을 피우기도 하지만, 성기씨는 올해 작은집에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작은집에서 생활하고부터 마음을 잡아가더니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올해는 원주에 있는 연세대학교 경법학부에 입학을 한 것이다. 지금 성기씨는 학교가 방학 중이라 작은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복희씨와 이석씨, 재웅씨, 인성씨, 용래씨, 용희씨, 성기씨, 작은집에는 이렇게 7명의 장애우들이 모여 산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애도 다르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활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보다 더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애가 곧 개성인 7명의 장애우가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힘들지만, 개성이 강한 자신을 서로에게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멋쟁이 개성파들이 작은집에서 작지만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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