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2] 다르지만 같은 차별양상, 장애우인권회복의 다양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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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화제 속에 진행된 제3회 한일장애인국제교류대회
다르지만 같은 차별양상, 장애우인권회복의 다양한 모습
대회 이틀째 진행된 분과토론 지상중계
양국의 전반적인 현황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이 지난 1, 2회 한일장애인국제교류대회의 분과토론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3회 대회 분과토론은 장애우의 인권을 대주제로 하여 영역별로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하는 원칙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일본측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발표자들이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생생한 일본 장애우복지의 현실을 소개했다. 참석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그 내용을 중계해본다.
무인가 작업장 5개 연합체 "푹푹의 모임"
▲한일장애인국제교류대회 |
제3회 한일장애인국제교류대회 기간 중 이틀째인 17일 열린 세미나는 "장애우의 인권"을 큰주제로 하여 고용, 교육, 장애여성, 사회환경 네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처음으로 고용부문에 있어 한국은 복지공장과 지원고용제를 중심으로 한 중증장애우고용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함께걸음 박숙경 기자는 "97년 의무고용대상업체의 장애우고용률이 0.45%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서 특히 저조한 중증장애우고용지원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복지공장과 지원고용제도가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원고용의 경우 정신지체인 가운데 경증장애우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기업의 인식부족으로 참여율이 아직은 저조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복지공장도 최근 문을 열자마자 부도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고 충분히 함께 일할 수 있는 장애우를 분리해서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장애우 자립작업장인 "푹푹의 모임"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되기까지 걸어온 과정을 소개했다. 푹푹의 모임은 법인 시설 푹푹월드와 무인가 작업장 5개의 연합체이다. 여기서 "푹푹"은 "천천히"라는 의미로 일본에 건너간 한국여성에 의해 전해진 말이라 고 소개돼 흥미를 모으기도 했다.
발표자에 따르면 푹푹의 모임은 88년 4월 장애우 4명, 비장애우 3명이 많은 지역사회주민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공해비누나 무첨가식품을 제조, 판매하거나 시민자원개발을 위한 이벤트를 하는 수이타 공동작업소가 세워진 것이 푹푹의 모임의 시초가 됐다.
여기에 90년 4월 또다른 장애아동의 일터를 만들기 위해 수이타 공동작업장 관계자의 호소로 부모님, 교사, 시민들이 모여 시민채권으로 자금을 모아 개소한 것이 바로 무첨가 쿠키공장 푹푹하우스다. 쿠키 만들기는 모두 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각자가 좋아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 중학교를 졸업한 장애우와 부모를 중심으로 96년 4월부터 개소했던 작업소 "수이타 공동작업장"도 푹푹의 모임에 참가하게 됐다.
91년 4월, 13평밖에 안되는 푹푹하우스에 16명의 멤버가 들어와서 급하게 장소를 빌려 만든 것이 바로 수이타 제2 장애우작업장이다. 또 장애우 수가 더 많아져서 92년 6월, 제3무첨가 쿠키공장 푹푹월드를 만들게 됐고, 이후 자연식품점, 무농약 야채, 우유, 계란 등을 판매하는 고향광장 "푹푹 숍", 사회복지법인 푹푹복지회, 푹푹베이커리, 재활용 상품을 판매하는 리턴공방, 수이타 자립지원센터 네버렌드 등이 차례로 세워졌다고 한다.
다음 교육분과에서 한국측은 유치부와 초중고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합교육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소개했다. 특수학급은 통합교육의 전형적인 모델은 아니지만 한국적인 현실에서 중간단계적인 통합화의 방법으로 설치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특수학급에는 장애아보다는 일반 학습장애아나 학습부진아들이 대부분이고, 정작 그곳에 있어야 할 경증장애학생들은 특수학교로 몰려 정원을 초과하는 특수학교가 많다. 따라서 특수학급의 제자리찾기는 전체 장애우교육의 근본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첫출발점이라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부모의 수업보조 강요 거부하자
일본측 발표자인 이케다 미치요 씨는 "통합교육을 만들어내는 모임"의 활동을 중심으로 자신의 사례를 발표했다. 지난해에 이어 21세의 자폐아 자녀 마도카군과 함께 참석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던 이케다 씨는 "맨 처음 아들이 진학한 특수학급은 창문이 모두 닫혀 있고 반 아이들도 3명밖에 없는데다 일반 학생들과의 교류도 전혀 없는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후 일반학급 진학을 위해 부단히 싸워나간 이케다 씨는 마도카군이 모든 학교과정을 졸업했지만 이러한 자신의 경험이 다른 부모들에게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재 장애아동교육과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통합교육을 만들어내는 모임"은 전화상담 핫라인을 마련하는 등 일반 학급에서 교육을 받고자 하는 부모들과의 연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케다 씨는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학급에 들어갈 때 부모가 수업시간에 보조자로 참여하는 것이 조건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이를 적지 않은 부모들도 자청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학교는 아이의 성장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부모 곁에서의 자립의 시작인데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부모가 보조자로 출석을 요청하는 일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양국의 시각의 다른 장애여성문제
또한 장애여성분과의 발표를 위해 특별히 이 교류대회에 참가한 기무라 나오미 씨는 "DPI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다.
기무라씨도 자신의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고등학교까지 특수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부 졸업을 앞두고 반강제적으로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시설에 입소하게 됐다. 1년 반 동안 재활치료를 끝낸 후 그 다음에는 생활면에서 그다지 변화가 없는 수산시설(자립작업장)에 들어가는 것이 그에게 놓여진 유일한 길인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장애우라고 해서 이대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서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대로 대학진학을 했다. 교육심리학과 유아교육에 대해서 전공하고 졸업 후 13명 중 10명이 장애우인 회사에 취직했다. 45번째 시험 끝에 합격한 것이었다. 그러나 겨우 사회생활에 적응할 무렵 새로 온 상사는 장애우에 대해 사사건건 언어폭력과 심한 멸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피폐해진 정신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사표를 낸 후 자립생활프로그램과 피어카운셀링(같은 처지의 사람이 상담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인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에는 장애여성문제가 장애계에서도 특별한 관심거리로 다뤄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무라씨를 비롯한 여성네트워크 활동가들은 정신지체여성 자궁적출 반대활동을 열심히 펼쳐 나가고 있다. 또한 일본은 일반적으로 낙태를 불허하고 몇몇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는데 아이가 장애아일 때도 예외의 경우에 해당된다. 따라서 그 여성네트워크는 이에 대한 반대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여성분과 "빗장을 여는 사람들"의 운영위원인 김지옥씨가 자신이 빗장회원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최근 빗장의 움직임을 소개하며 한국 장애여성들의 현실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장애여성문제가 특별히 다른 영역으로 취급되지 않고 일반 장애우문제의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인본측 참가자들은 "한국에서는 어떤 면에서 장애여성이 특별히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할 정도로 별도의 장애여성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입장이어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음 사회환경 분과에서 한국측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의 전정옥 사무국장이 올해 3월 통과된 편의증진법 제정과정을 중심으로 편의시설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편의시설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현실 때문에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이들의 사건일지를 소개하면서 최근 서울시에 요구했던 저상버스 확대도입운동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측은 장애여성이면서 토요나카시 시의원이기도 한 이루베 카요코 씨(47)가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일본 사회환경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처음 외출한 23세 때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외출한 그를 보고 길을 가던 사람들은 "어느 시설에서 왔느냐", "어느 병원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이후 전세를 얻으려고 했지만 장애우라는 사실 때문에 안된다고 해서 비장애우 명의를 빌려야 했다. 임신을 해서 병원에 갔을 때는 의사나 간호사가 당연하다는 듯 "아이를 떼겠지요?"라고 묻거나 이 사실을 부모님은 알고 있는지, 누가 아이를 키울 것인지를 필요 이상으로 묻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시의원으로 활동하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각 자치단체별로 24시간 개호보장이 없기 때문에 생활을 지탱해 주는 사람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우가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많이 유지할 수 있는지는 각 장애우의 역량이 관계된다. 복지행정이 빈곤하기 때문에 한정된 장애우만이 지역사회에 나가는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각 분과별 발표와 토론이 끝난 후부터 진행된 종합토론은 촉박한 시간 여건 때문에 편의시설 하나의 주제를 택해 집중적인 토론을 벌였다. 일본 참가자들은 "한국에 도착한 첫날 가본 63빌딩에도 편의시설이 없어 무척 고생했다"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울 한복판의 큰 빌딩에도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않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매일 장애우들이 그곳에 휠체어를 타고 가서 무언의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일본 장애우들의 말 속에서 한국참가자들은 앞선 일본의 복지정책이 가능하게 된 힘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도 최근 고용자가 정신지체인에게 학대를 하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사기를 치는 사건이 발생해 장애우계의 분노를 샀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기숙사와 직장이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시설 밖에서는 알 수 없었고, 그 고용자는 자선가로 행세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많은 시설사건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다르지만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양국의 장애우 차별실태는 한국과 일본 장애우들에게 새로운 각성과 힘을 주었다. 이번 분과회의는 관심분야별로 나누어 진행되지 않고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진행됨으로써 쏟아지는 질문과 답변을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글/ 함께걸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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