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4] 장애인복지법 개정, 진흥원 때문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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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장애인복지법 개정, 진흥원 때문에 안된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던 정부와 신한국당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5월 26일 당정회의를 거쳐 공개된 이 법안은 일단 그 동안 각계에서 제기됐던 요구사항을 일정 부분이라도 반영하고 있어 내용에 있어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 의혹을 던지는 의견이 많다. 특히 개정안 중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를 흡수통합해 한국장애인복지진흥원이라는 종합연구기관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놓고 열띤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신한국당이 진흥원 설립을 제기한 배경과 그 전망을 알아보았다.
▲장애인복지법개정안논의 |
시늉은 다했다는 평가, 실현가능성에 있어서는 갸우뚱
올해 6월 임시국회에 상정하기 위해 마련한 정부와 신한국당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일단 내용에 있어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시늉만 다했다"고 폄하하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그동안 각계에서 요구했던 내용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정부가 여러 차례 약속했던 대로 현행 장애인복지법상의 법정 장애범주를 확대해 내부질환, 정신질환 등 장애우와 유사한 사회적 제약을 받고 있는 질환자들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또 생활보호대상자면서 중증·중복장애우에게만 지급하던 생계보조수당제도를 장애수당으로 변경하면서 수혜의 폭을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18세 미만의 등록장애아동을 보호양육하는 보호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더욱이 여성장애우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조항이 삽입되기도 했다. 아울러 관심을 모았던 장애우복지시설의 신고제 도입여부도 현재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로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 외에 개인도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17일 열린 신한국당의 개정법안 설명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장애우단체들이 집중 포화를 던진 것은 한국장애인복지진흥원(이하 진흥원) 설립부분이다. 이 진흥원은 편의시설, 재활보조기구, 전문인력양성, 재활서비스 프로그램 개발보급 등 장애우 관련 연구개발 및 훈련기능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전문기관으로 이번 개정안에서 새롭게 제기된 기관이다.
현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부분적으로 장애우복지관련 정책연구 및 각종 조사사업도 실시하고는 있지만 국내 장애우복지 연구수준의 낙후성을 감안할 때 전문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진흥원의 설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신한국당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설립을 위해 기준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를 흡수 통합하여, 체육진흥기금으로 적립돼있는 100억원과 직원 50명, 사무실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올해 3월 통과된 편의증진법에 "편의시설설치촉진기금"이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 적립된 기금을 활용, 연구를 수행할 방침이다. 진흥원의 이사장과 원장 각 1인을 포함한 15인 이내로 구성될 이사 중 1/3 이상은 장애우로 하고 이사 중에 여성을 포함하여 장애우들의 직접 참여를 높이겠다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물론 편의증진법 14조에 편의시설에 관한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편의시설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고, 법제정과정에서 편의시설촉진기금 등을 관리할 별도의 기구가 설치될 가능성은 예견되고 있었다. 그러나 체육회를 흡수통합해 설립되면서 체전개최부터 전문인력양성, 보장구 및 편의시설 연구까지 장애우복지의 전분야를 망라한 거대기구가 탄생할 것이 예견된다.
장애우단체에 생기는 또 하나의 시어머니?
법안 설명회에 참석한 장애우단체들은 진흥원을 놓고 장애우복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를 했다. 그러나 결국 진흥원은 전체 장애우단체의 무력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이유에서 현재의 구상대로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장기철 회장은 "진흥원은 특정 장애우기관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므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포문을 열며 "시군구별로 관리체계가 갖춰져 있는 기존 장애우단체에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김신웅 회장도 "진흥원 설립에 앞서 기존 장애우단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어야 했다"고 성토했다.
한국맹인복지연합회 유정종 회장은 "진흥원 설립 시기가 굳이 99년 1월 이후로 되어 있는 점 등 여러 의혹이 많다"며 "결국 단체장들에게는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삼육재활센터 민군식 이사장은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꼭 있어야 할 기관이지만 진흥원이 체육회 행사나 다른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다른 단체의 기능이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조일묵 회장은 "현재 장애계에 15개의 법인단체가 있지만 체전과 보장구 등을 종합관리하고 복지사업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면서 책임을 지고 수행해나가는 기관이 필요하다"며 "복지진흥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장애우단체들간에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자 당사자격인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의 입장에 눈길이 모아졌다. 체육회 윤흥로 사무총장은 "체육회가 보유하고 있는 체육진흥기금은 장애우 우수선수에게 수여하는 연금이나 이사회 의결사업에 쓰이고 있는 실정이고 현재에 같이 이율이 하락할 경우 연금 주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진흥원의 직원을 50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현재 체육회의 직원이 본부 37명과 곰두리센터 관리직원 10여명을 포함해 49명"이라며 그렇게 다양한 사업을 50명의 인력으로 수행한다는 설립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나섰다. 설명회 이후 체육회 한 관계자는 "진흥원으로의 흡수통합방안에 대해서 장애관련지를 통해서야 알게 됐을 정도로 신한국당이나 복지부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총련, 이사의 과반수를 장애우로 선임 요구
이날 설명회에서 신한국당의 김명섭 의원(당 장애인복지대책위원장)과 함종한 의원(정책조정위원장)등은 예상 밖으로 진흥원에 대해 격렬한 반대의견이 쏟아지자 "진흥원은 다른 장애우단체와는 완연히 구분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일 뿐"이라고 설득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장총련 관계자들은 설명회가 끝난 뒤 대책회의를 갖고 원장 및 이사장 또 이사 중 1/2을 장애우로 선임하는 방안으로 입장을 정리, 신한국당 관계자들에게 재차 그 방안을 수용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장협 장기철 회장은 "그것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법통과를 막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들은 여야간의 공방으로 임시국회의 개회가 늦어짐에 따라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런데 예정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6월 30일게 임시국회가 열리고 결국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그대로 상정된다면 장애우계 일각에서 집단적인 반발이 터져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여야간에 정치적인 충돌을 빚을 변수가 남아있고 지난해 이미 장애인복지기본법을 제출한 바 있는 야당측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신한국당과 정부의 계획대로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장애인복지법이 무사히 통과될지는 미지수이다. 더구나 야당측은 사회복지사업법이 상위법이고 일정상으로도 사업법과 장애인복지법을 동시에 통과시킨다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먼저 사업법 개정을 마무리짓고 다음 정기국회 때나 장애인복지법 개정논의를 진행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 드러난 진흥원을 둘러싼 정부의 구상과 이에 대한 장애계의 반응은 충분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장애우단체에서 그렇게 반대한다면 진흥원 설립 추진계획을 백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장애우복지를 위해 어떠한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다시 논의를 해봤으면 한다"는 한 복지부 관계자의 말은 장애계에 화두로 던져지고 있다.
글/ 한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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