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현장이야기 2] 브니엘의 집을 통해본 장애우 자립작업장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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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현장이야기]
브니엘의 집을 통해본 장애우 자립작업장 실태
심각한 중증장애우 취업, 자립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취업을 하면 뭐합니까? 비장애우 직원의 반밖에 되지 않는 임금과 불편한 편의시설 때문에 입사해도 그만 두고 말텐데, 차라리 지금이 더 나아요."
경기불황으로 인해 직장을 잃은 장애우가 늘어나고 있다. 실직 후 3년이 지나도록 취업을 못한 장애우들이 마침내 스스로 작업장을 만들었다. 올해로 문을 연 지 2년이 되는 서울 구로구 구로본동에 위치한 장애우자립장 브니엘의 집, 장애우 특유의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매출액도 올리고, 장애우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한 몫을 하던 그들에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의 원인이 경기불황만은 아니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중증장애우에게만 닫혀있는 취업의 문
무전기 수출회사에서 근무하던 박상준(33·소아마비)씨는 9년째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어디든 찾아가 일자리를 구해야겠는데 마땅히 아는 곳도 없고 해서 그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전화를 했다. 이름처럼 자신의 취업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공단의 취업상담자는 취업을 시켜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일단 직접 와서 접수를 하고 했다.
그 말에 박상준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공단을 찾아갔다. 이제는 취업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몇 가지 서류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하고, 개인이 운영하는 장애우자립장을 찾아가 보았다. 물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려 볼 수도 있을 문제지만, 대기업은 여간해서는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찾아간 장애우 자립작업장은 비장애우가 운영하는 곳으로 이십여 명의 장애우가 전자부품 조립 일을 하고 있었다. 급한 대로 일을 해보기로 했지만 몇 달 일하지 못하고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고, 장애우가 일하는 작업장임에도 불구하고 계단이 있어서 저처럼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다니기란 어려움이 많았죠. 또 일한 것에 비해 보수도 너무 적었구요."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찾아간 그가 들은 것은 실망스러운 얘기 뿐이었다. 중증장애우를 고용하려는 회사가 없고, 편의시설이 설치된 중소기업이 드물 뿐 아니라 장애우를 고용하기 위해 편의시설을 굳이 설치하려고도 하지 않아 오히려 임금이 싼 외국노동자를 고용해버리고 만다는 설명만 들었던 것이다.
"공단이 왜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증장애우는 굳이 공단에서 알선해주지 않아도 혼자서 얼마든지 취업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증장애우인데 적절한 대책도 없이 실적만 올리려는 공단에 대해 무척 화가 났습니다. 차라리 공단직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로 중증장애우를 위한 자립장이나 많이 짓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 후 박상준씨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보낸 시간이 꼬박 3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는 1996년 3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체장애우 세 명과 의기투합해 자립작업장, "브니엘의 집"의 문을 열었다.
창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융자라도 받으려면 보증인이 필요했다. 가지 것이 맨몸 뿐인 그에게 그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보증을 서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자립자금 일천이백만원으로 일할 방 두 칸과 간단한 기계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일감을 받아와야 하는데 아는 거래처도 없고, 그때 생각해낸 것이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는 것이었다. 다행히 대건전자의 진원국 사장이 광고를 보고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일의 하청을 주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수공일은 마음가짐이 곧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우들은 집중력이 좋아 불량품이 적도 꼼꼼합니다. 또 한 번도 납품날짜를 어기지 않아 계속 거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바뀐 진 사장과는 이제 자주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브니엘의 집 식구들의 성실성과 꼼꼼함으로 거래처는 점점 늘어갔고, 월 매출액은 백팔십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때 그들은 무엇보다 납품하는 회사들이 처음에 가졌던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없앴다는 자부심, 그리고 실력을 인정받은 것에 대해 더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일이 점차 늘어나자 두 칸짜리 방에서 일하는 것이 곤란해져 작업장을 옮겨야 할 상황이 되었다. 더 많은 중증장애우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는 큰 꿈을 안고 그들은 현재의 공간으로 이사했다.
현재 브니엘의 집은 출입문의 문턱이 없고, 입구는 경사로로 돼있는 데다 1층에 위치하고 있어 휠체어장애우가 다니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자신이 휠체어장애우이기에 박상준 사장은 건물을 알아볼 때도 세심한 주의를 한 것이다.
집만 이사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도 바뀌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 두 명이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나가고 새로운 직원 두 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박상준씨도 결혼을 해 아내까지 포함해 브니엘의 집의 정식직원은 네 명이다. 모두 휠체어 장애우다.
경기불황으로 생활비도 벌기 어려운 현실
▲브니엘의집 |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직원을 새로 둔다는 것이 부담일 수밖에 없는 브니엘의 집에 올 6월부터 정진학교의 전공반 실습생 세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장소도 깨끗하고, 일도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어서 안심이 돼요. 특히 사장님이 너무 좋아 실습이 끝난 뒤에도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일하게 됐으면 좋겠네요." 실습생 김재원씨의 어머니는 돈은 안줘도 좋으니 그저 배운 것을 썩히지 말고 출퇴근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고 말한다. 다 큰 자식이 집에만 있는 것을 보는 게 얼마나 안쓰러운지 모른다는 어머니들의 호소를 들을 때면 박 씨는 지체장애우 뿐만 아니라 정신지체장애우들의 고용현실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제법 작업장의 모습을 갖춘 현재 브니엘의 집은 세탁기의 센서코드를 만드는 일, 완구납땜, 완구조립, 카드접기 등의 일을 하청을 받아서 한다. 그러나 회사와 직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몇 차례의 중간단계를 거치다 보니 실제로 들어오는 이윤은 그리 많지 않다.
"저희가 장애우여서 물건을 직접 사오고 배달을 하지 못하니까 가공비에서 운반비는 제하더군요. 또 많이 돌아다녀야 하청을 따올 수 있는데 영업 면에서 어려운 점이 참 많아요."
특히 요즘은 경제불황으로 그나마 있던 거래업체도 중도에 문을 닫거나 임금이 싼 외국으로 수조를 돌려 지난달에는 한달 매출액이 60만원도 채 안됐다. 매월 삼십만원의 방세와 각종 세금 5만5천원(수도요금 1만5천원, 전기요금 1만원, 전화비 3만원)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증금에서 매달 방값을 빼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박 사장은 이 더운 날씨에도 거래처를 찾아 직접 거리에 나섰다. 그러나 며칠째 계속 허탕이다. 다들 고려해보겠다고는 하지만 연락이 없다. 또, 형광볼펜을 만드는 회사는 일감을 주겠다고 해놓고서 며칠 있다가 회의에서 취소됐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박 사장은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우에 대한 벽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중증장애우들이 취업의 문을 열어보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모여 직접 기계를 돌린지 이제 겨우 두 해를 넘긴 브니엘의 집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황이 계속 되는 요즘, 중증장애우가 창업하는데 있어서 선입견을 가진 기업주들이 하청마저 주지 않는다면 브니엘의 집이 다시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 노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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