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이야기] 내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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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이야기]
내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의 한 조그만 동네의 아파트.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적막을 깨기 위해 습관처럼 켜놓은 CNN 채널에선 무언가 계속해서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난 외출을 위한 마지막 점검을 위해 거울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크러치를 짚은 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앵커가 그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다만 나는 "클린턴 대통령"과 "크러치"라는 말에 무조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TV 앞에 섰고 하시모또 일본수상과 나란히 서 있는 그를 보게 된 것이다. 무릎을 다쳐 몇 주간은 치료를 받아야 하며, 휠체어, 브레이스, 크러치 등의 보조기구가 필요할 거라고 얼마 전 보도된 것처럼 클린턴 대통령은 분명 크러치를 짚고 있었다.
기자간담회는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되었고 카메라는 다리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어 가며 힘의 분배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비추었다. 카메라는 또한 하시모또 수상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클린턴 대통령의 크러치를 떨어뜨리는 장면과 함께 답변을 중단한 채 몸을 구부려 떨어뜨린 크러치를 집어 클린턴 대통령에게 주는 하시모또 수상의 모습을 내보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보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난 자연스러움을 볼 수 있었다. 부자유스러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클린턴 대통령에게서 난 당당함을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러움, 그건 나를 인정하는 데서 보여질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두 다리의 길이가 같아지면 그 기능에 상관없이 남 보기에 좋을 것 같아서 몇 년 전 짧은 한쪽 다리를 길게 하려고 수술한 적이 있었던 과거의 내 경험을 기억케 했다. 또 수도 없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꿈꾸며 살아왔던 나를 발견하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해준, 버렸던 나를 다시 찾은 순간이었다.
둘째로 난 "희망"을 갖게 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무릎 부상은 일시적인 장애로 평생을 감수해야 하는 영구적인 장애와는 그 정신적 고통이나 신체적 불편 정도가 같은 수 없겠지만 전 세계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나는 물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분명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애가 대통령의 자격 조건에 아무런 제한이 될 수 없다는. 나는 중학교 시절 학교 복도에 걸려 있던, 휠체어를 타고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보고 "나도 하면 무엇이든 되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1930년대의 인물인 그는 80년대의 중학생이었던 내게 있어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전설적인 인물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었다. 반면 클린턴 대통령은 지금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보다 생생한 모델인 것이다.
장애로 인해 스스로를 구숙하고 구속당했던 30년 세월. 이제 더 이상은 그것으로 인해 나를 가두는 일은 없어야겠다. 나 아닌 남이 되기를 꿈꾸는 일 또한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장애해방의 첫걸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부터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글/ 윤정의 (재미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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