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기념사]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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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기념사]
장애인은 장애인(障碍人)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살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을 실현하려는 꿈과 의지를 담고 창간된 "함께걸음"이 이번 5월호로 100호가 됩니다. 우리는 "함께걸음"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참으로 가슴 벅찬 기쁨을 안고 100호를 맞이하면서 그동안 "함께걸음"을 정기구독하고 후원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함께걸음"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또한 온갖 어려움을 마다 않고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장애우언론지와 장애우전문지의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복지여건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10년 전인 1988년 "함께걸음"이 창간될 당시의 장애우 상황은 아주 형편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는 인간으로서 타고난 천부의 권리와 국민으로서의 기본권리를 박탈당한 채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언론은 이런 장애우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고,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운동했던 사회 운동단체들의 눈에도 장애우의 비참한 현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 사람의 청년장애우가 자신들의 아픔을 모든 장애우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장애우를 차별하는 사회화 싸우기로 결심하고 "함께걸음"을 창간했습니다.
이렇게 창간된 "함께걸음"은 당위적 권리투쟁의 차원을 넘어 장애우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장애우에게 교육, 의료, 취업, 복지, 편의시설, 사회생활 등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장애우들끼리 또는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사는 사랑과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 소개하고, 장애우를 대변하며 정부와 장애우 복지단체에 대한 비판적 감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결과 "함께걸음"은 정부당국과 일부 장애우 복지단체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지만 많은 장애우와 그 가족들 그리고 장애우와 함께 걸어가는 비장애우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함께걸음"은 1991년까지 무가지였다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1992년부터는 유가지로 전환되어 비장애우들에게는 구독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장애우들에게 구독료를 받아도 장애우들의 구독신청이 너무 많아 재정적인 어려움은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현재는 "함께걸음"을 장애우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영세장애우 우선 순위로 선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힘껏 노력하지만 재정적 능력이 부족해 "함께걸음"을 원하는 장애우들에게 모두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100호를 계기로 "함께걸음"의 질을 보다 높이고, 많은 장애우들에게 "함께걸음"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가 "함께걸음"을 창간한 것은 1차적으로는 장애우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비장애우들과 함께 평등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걸음"은 단지 장애우만을 위한 함께걸음이 아닙니다. 사실 장애우와 함께 걷고 생활하는 비장애우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돈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인간 가치를 얻게 됩니다.
사람을 짐승과 비교하여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사람다운 가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사람다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짐승을 무시하지만 사람처럼 부동산 투기를 위해 다른 사람이 살아야할 집을 독점하거나,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살 집을 빼앗는 짐승은 없습니다.
또한 자기 배가 불러도 소화제를 먹으면서까지 더 먹으려 하고 또한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더 먹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일용할 양식을 빼앗거나 독점하는 짐승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은 자기만 배부르고 편안히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특히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살 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애우와 함께 걸어가는 비장애우들은 이 세상 그 어떤 부귀와 영화로도 얻지 못하는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또한 "함께걸음"은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함께걸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모든 이웃들과 함께 걸어가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은 자기 혼자만 살고 함께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잘 살면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은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한 순간에는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은 다른 사라도 못살게 하고 자기도 못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함께걸음"은 이제 장애우의 차별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온갖 차별과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함께걸음만이 아니라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높은 지위에 있는 자와 낮은 처지에 있는 자, 강자와 약자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특히 바로 지금 북한의 배고픈 동포들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길을 우리도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만이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함께걸음"은 창간 때부터 장애인을 "장애우(友)"로 불렀습니다. 이것은 장애우는 모두 친구이고 장애우와 함께 생활하는 비장애우도 모두 친구라는 생각에서 만든 말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는 "불구자", "병신" 따위로 불려졌기 때문에 장애우에 대한 편견과 이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장애우에 대한 잘못된 호칭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 처음에는 낯설던 장애우가 이제는 고유명사화 되었습니다. 장애우에 대한 명칭이 달라지는 것은 곧 장애우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장애우에 대한 이해에 따라 장애우를 세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장애우를 개인적 차원에서 능력 또는 기능이 손상당한 사람으로 이해할 때 "디스에이블드"(Disabled)라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장애우를 사회적 차원에서 불리한 조건에 처한 사람으로 이해할 때 "핸디켑트"(Handicapped)로 말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장애우를 부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긍정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말로 "다른 다양한 능력의 사람-디퍼런틀리 에이블드"(Differently Abled)로 말합니다. 서구 선진사회에서는 이렇게 장애우의 호칭이 달라짐에 따라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정책도 개선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함께걸음이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른 것은 장애우 인식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함께걸음"은 지령 100호를 맞으면서 우리는 장애에 초점이 맞추어진 기존의 용어보다는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진 보다 적극적인 개념의 새로운 표현을 찾는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장애란 말 자체가 부정적 용어이기 때문에 장애우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올바르게 인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걸음은 "다른 다양한 능력의 사람"이라는 관점을 가진 새로운 용어를 찾는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장애우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가 찾는 새로운 용어는 장애보다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 용어입니다. 이 운동에 모든 장애계와, 특별히 언론들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 특히 차별받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걸어가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언제나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글/ 김성재 (발행인, 한신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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