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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함께걸음 10년, 장애우복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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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100호 발간 특집Ⅰ]

 

함께걸음 10년 장애우복지 10년

 

  언론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함께걸음은 100호에 이르는 시기 동안 장애우의 현실을 단지 그대로 비추고 옮기는 일만을 할 수는 없었다. 함께걸음은 열악하기만 한 장애우의 삶의 현장에서 생존권을 제기하는 절박한 외침들을 전하며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각종 장애우 관련 시설과 단체의 비리를 고발하고 감시하는 활동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함께걸음의 창에 비친 숨가쁜 장애우복지 10년의 역사를 함께걸음 100호를 맞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1987년 2월 시각장애대학생 이춘광 씨는 인파에 밀려 지하철 난간에서 전동차와 부딪쳐 추락, 그대로 사망했다. 정신지체장애우 아들 형제를 둔 아버지가 자식을 생매장한 사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척수장애대학생이 휠체어를 타고 한국을 일주하는 동안 국내 여관 등의 숙박시설에서 여섯 번이나 거절당해 노상이나 차 속에서 자야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세상 사람들을 잠시 부끄럽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어느 일간지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려 있다가 언제나 그렇듯이 곧 잊혀져갔다.

  87년, 그리고 그 이전에 일어난 장애우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장애우언론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도 울분과 안타까움으로 꼼꼼하게 자료수집을 해두었던 한 장애우에 의해 함께걸음이 창간된 88년 3월에 새롭게 세상에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이후 100호에 이르는 동안 함께걸음에는 장애인고용촉진법과 장애인복지법, 특수교육진흥법, 그리고 최근의 편의증진법까지 장애우복지관련 법률의 제·개정 과정을 둘러싼 숨가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편의시설 문제와 통합교육, 장애우 복지시설의 사회화뿐만 아니라 여성장애우 문제가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빈민장애우의 현실과 장애우와 함께 하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사연들도 함께걸음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왔다.

 


거부! 불가! 반대!!


  89년 뇌성마비장애우 최난희 씨는 버스에 타려다 장애우라는 이유 하나로 승차를 거부당했다.

  같은 해 공주사대에 시각장애우가 입학을 거부당했던 사례는 97년 올해도 시각장애우 장유경 양이 서울예전에 입학지원서류조차 거부당하는 현실로 계속되고 있다. 함께걸음은 93년 11월호에서 장애우의 입학을 제한하고 있는 대입신체검사제도의 문제점을 알아보며 제도폐지에 대한 주장을 전개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94년부터 장애우 특례입학제도를 도입해 대학의 노골적인 입학거부조치를 막고 장애우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특례입학을 실시하는 학교도 소수이고 96년 1월호에 실린 특례입학 실시 대학의 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실력으로 합격한다 해도 계단으로만 되어있는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극기훈련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96년 9월호 함께걸음은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가 실시한 장애우대학생들의 생활 만족도를 알아보면서 편의시설과 대학졸업장으로도 어려운 장애우 취업실태 때문에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마는 장애우대학생들의 좌절을 보도하기도 했다.

 


장애우 생존권 보장에 대한 줄기찬 주장


  92년 박승학 씨, 95년 최정환씨, 올해는 시각장애우 박병철 씨가 장애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노점상을 하며 단속반에 쫓기는 팍팍한 삶을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애우 취업대책, 장애연금과 생활보조금을 비롯한 생활대책, 주거보장 등에 대한 요구는 바로 대다수의 장애우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권의 문제로 다가온다. 빈민장애우의 생존권과 같은 절박한 인권 보장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줄기찬 문제제기를 해온 함께걸음은 89년 구걸장애우 문제에 이어 버려지는 장애우의 문제를 89년 3월 90년 9월에 다뤄보았다. 또 94년 1월에는 빈민장애우 밀집지역으로 알려진 상계4동을 찾아 빈민장애우를 낳는 구조와 대안을 점검해 보았다. 3월에는 창간 6주년 특집으로 소외계층의 인권문제를 또다시 제기하며 중증재가장애우, 산재장애우들의 적나라한 실태를 점거해보기도 했다.

  장애인의 날이 있었던 올해 4월에도 함께걸음은 거리의 장애우들을 만났다. 집도 없이 거리를 떠돌다가 단속반에 의해 은평의 마을로 보내지고 자유를 찾아 또다시 거리로 나와 단속대상이 되는 현실의 반복이 다름 아닌 정책적 방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짚어보았다.

 


통합교육의 현장을 찾아서


  특수교육이라 명명된 장애우교육은 바로 몇 해 전까지 비장애아동들과 분리된 학교에서 수업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 이후 처음 접하게 되는 학교라는 공동체에서부터 장애아와 비장애아동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여가야 이후 전체 사회에서의 통합을 앞당길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함께걸음은 이러한 통합교육의 효과와 당위성을 여러 차례 다뤄왔다. 장애아와 비장애아들이 푸르른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 놀며 자연스럽게 친해질 기회가 왰던 95년 5월 "어깨동무 놀이 한마당" 행사개최를 시작으로 통합교육의 의의와 가능성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 특집을 통해 통합교육을 위한 국내 교육환경을 점검하는 좌담과 뜻 있는 교육종사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던 국내외 통합교육의 현장을 찾아 소개했다. 7월부터는 남다른 결심으로 자녀를 일반학교에 보낸 어머니들의 어려움과 보람을 담은 "통합교육 부모 수기"를 연재해 인기를 모으기도 있다.

 


함께걸음이 바꿔놓은 교보문고 편의시설


  길거리나 건물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계단과 턱, 비장애우들에게는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낮은 계단도 휠체어 장애우들에게는 굶주린 배를 안고도 식당 앞에서 되돌아서게 하고 생명을 건 출퇴근을 각오해야 하는 거대한 장벽이다. 함께걸음은 88년 6월호에 수원역과 전주 덕진공원의 공중전화박스와 화장실의 접근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편의시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9년 11월호에는 휠체어 장애우가 서울지방법원의 재판을 방청하는 과정에서 맞부딪쳐야 하는 장벽의 체험을 사진과 함께 실감나게 담아내기도 했다.

  특히 94년도 4월부터 연중기획으로 "접근권" 문제를 다루면서 그 개념과 지하철 편의시설 실태 등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장애우와 함께 하려면 삶의 공간들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 것이지를 꼼꼼하게 알아보았다. 특히 그 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개최한 "함께걸음 시민 대행진"에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시민들이 장애우들과 함께 직접 휠체어를 타고 밀면서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거리의 턱과 계단이 장애우들에게 다가오는 장벽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체험토록 했다. 9월에는 또 다시 도시 전체로 범위를 넓혀 시각장애우와 휠체어 장애우들이 마치 탐험을 하는 마음으로 헤쳐가야 할 시내 곳곳의 편의시설 문제를 제기했다.

  보다 직접적인 개선효과를 얻기 위해 함께걸음은 95년 7월 서울시내에서 가장 이용이 많은 시설 중의 하나인 교보문고와 세종문화회관을 휠체어 장애우가 직접 방문하고 이용에 불편이 있는 부분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리고 10월, 본지의 지적 이후 책 판매대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고 안내판의 높이가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장애우용 주차장도 확보되는 등 달라진 교보문고의 모습을 확인했다.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는 장애우편의 시설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 전체에서 제기되는 편의 시설 설치 요구를 보건복지부는 95년 발효된 편의시설 관련 규칙을 제정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건물주가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벌금이 5백만원일 정도로 제재조치가 미약해 실질적인 개선효과는 없었다. 함께걸음은 "무장애 공간"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보다 강력한 법률적 이행 조치를 요구하면서 96년 9월 "장애우 편의시설 설치법" 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결국 올해 3월 17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드러난 친권포기각서의 실체와 장애우인권


  장애우 복지시설관련 기사 또한 편의시설문제 못지 않게 이제까지 함께 걸음이 줄기차게 다루어온 사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복지의 가장 최일선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비리문제가 한 해도 빠짐없이 계속적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생활교양담당 목사가 소녀원생들을 추행한 충남 아산의 애육원 사건과 이사장이 원생을 성폭행 한 전북 고창의 무장애육원 사건이 각각 88년 3월과 10원이 함께걸음 지면을 채우고 있다. 또 십억여 원을 놓고 전개됐던 재산권 싸움이 성폭행 사건으로 비화됐던 90년 의정부 사랑의 동산과 시설장이 국가 보조비를 착복한 시각장애우시설 광명원의 비리문제는 제보를 듣고 발빠른 보도로 대응했다. 친인척이 특수학교와 시설을 운영하고 강제노역과 성폭행시비가 제기돼 총체적 지원 사건과 92년 함께걸음에서만 잠입 취재했던 정신장애우수용시설 신생원 문제가 보도되자 크나큰 반향이 일기도 했다.

  94년 7월 장애자녀를 시설에 맡길 때 부모에게 시설측이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친권포기각서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줬던 해인원 문제는 공금횡령의 노조원에 대한 부당 해고와 관련서류를 확보하려는 노조원을 절도죄로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돼 장기화되면서 95년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되었다. 함께걸음은 그간 수 차례에 걸쳐 그 진행 상황을 보도하며 결코 잊혀진 사건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함께걸음은 사건을 뒤쫓는 보도에만 머물지 않고 97년 올해에는 연중기획으로 국내 사회복지시설의 탈시설화 전망을 진단해 보았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의 자립생활센터, 국내의 그룹 홈 등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들이 시설의 사회화와 탈시설화로 가기 위한 대안시설로서 가능한지를 짚어보았다.

  시설문제 해결의 한 주체로서 시설 종사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확보문제도 또한 관심을 기울여온 사안이다. 90년에 터져나온 홀트아동복지회의 노조탄압문제를 계기로 사회복지단체에서의 노동조합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여러 차례 조명해보기도 했다. 96년 특집으로 다루어진 보육사들의 인권문제는 보도가 나간 뒤 모 방송에 집중보도가 되기도 했다. 또 96년의 효정원 사건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에바다농아원 사태처럼 시설문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함께걸음은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하며 시설문제를 계속 매섭게 지켜볼 것이다.

 


장애우고용 및 복지관련 법률 제정과정의 숨가쁜 기록

 

  88년 3월 함께걸음이 창간된 직후 가장 커다란 장애우계 이슈는 장애인고용촉진법제정과 장애인복지법개정이었다. 장애인복지법 전신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은 81년 유엔의 세계장애인의 해를 맞아 그 해 6월 5일 급조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부끄러운 출생비밀을 안고 있다. 따라서 장애우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다양한 장치와 법적 강제력을 갖는 데에는 적지 않은 결함을 안고 있었다. 또 장애를 이유로 번번이 입사지원에서 떨어져야 하는 현실에서 장애우의 손목을 잡아 끌어줄 어떠한 고용관련 지원법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전시적인 장애인 올림픽 개최보다는 장애우들의 생존권 확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져올 양 법안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88년과 89년 장애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89년 4월 16일 명동성당 시위에 이어 장애인 고용촉진법 공청회 등을 개최하고 전 장애우단체들이 망라된 공동대책위원회도 구성하는 등 장애우계 전체가 양법 제개정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정부는 매 회가 국회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제·개정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결국 89년 12월 30일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되고, 90년 1월 13일 고용촉진법이 통과했다.

  그러나 그렇게 힘겨운 투쟁으로 따낸 고용촉진법은 장애우고용을 당장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복병들이 숨어 있었다. 3백인 이상 업체 상주근로자의 2%라는 장애우 의무고용률은 엄청난 액수의 기업의 분담금만을 쌓아놓은 채 소수의 경증장애우만을 위한 법이 되고 말았다. 체계적인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구조가 안착되지 않은 환경은 고질적인 선입견과 맞물려 기업가들은 장애우를 고용하기보다는 차라리 분담금을 내는 편을 선택해 버리는 것이었다. 또한 95년 한 해는 실질적인 법적 보호대상이 되어야 할 중증장애우에 대한 지원책으로 도입된 연계고용제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한 해였다. 결국 95년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나 장애우근로자들이 단순히 일반 사업장과 분리된 상태에서 어거지로 고용률 수치만 높일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통합을 고려한 장애우고용 대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함께걸음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89년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변화하고 향상된 장애우들의 복지욕구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기에 개정의 요구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97년 1월 특집에서는 현재 5개 영역으로 제한되어 있는 장애범주를 확대하고 세부적인 제도적 범주를 넓히는 방안에 대한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보다 포괄적이고 강력한 "장애인복지기본법" 제정의 의의와 그 당위성을 알아보기도 했다.

 


빗장을 열어나가는 여성장애우들의 힘찬 발걸음과 함께


  여성계에서도 장애우계에서도 논외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장애우, 그들의 목소리가 함께걸음에 처음으로 담긴 것은 결혼문제에 대한 솔직한 고민을 담은 한 독자의 편지를 실은 88년 6월이다. 이후 함께걸음은 89년 10월 여성장애우 공동체를 탐방해 그들의 고민과 관심을 알아보았고 92년 6월 성폭력특별법에 여성장애우의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는 강력한 문제제기를 해나갔다. 94년 3월 여성장애우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찾아가서 가사 일이나 일상적인 활동에 있어 여성장애우에게 특별하게 필요한 시설과 설비들을 알아보았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여성장애우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정책토론회를 통해 그 대안을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94년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 장애영역의 여성장애우들이 한데 모인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함께걸음은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에 회원인 김미연씨가 참가한 이후 빗장의 활동이 사회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가 하면 여성계와의 연대도 활발해지고 있다.

  96년 8월 동아시아여성포럼과 10월 국내 최초의 여성장애인대회가 열린 것을 계기로 11월에는 가정에서조차 차별받고 소외받는 다양한 여성장애우들의 생생한 육성을 특집에 담아보았다.

  빗장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기 전까지 여성장애우관련 기사들은 시설에서 생활하던 여성장애우들이 유무형의 폭력 앞에 성추행 당해야만 했던 아픔의 기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빗장이 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여성권익 디딤돌상을 받을 만큼 성장해 자신들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정책적인 자료로 제시하는 활발한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전히 멀기만 한 참 좋은 세상을 꿈꾸며


  92년 3월 창간 4주년 기념호부터 시작된 "사람 사는 이야기"와 94년 6월부터 시작된 "장애우의 세상형편"은 장수코너로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특히 관심밖에 있었던 빈민 장애우들이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지를 장애우 한 명 한 명의 살아온 이야기로 풀어 보여 첫 선을 보일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93년 단행본으로 출간) 또 장애우의 세상 형편은 각 일간지와 방송내용에 담긴 장애관련 기사와 프로그램들 가운데 행간에 담긴 잘못된 시각과 그냥 묻히기 쉬운 유용한 정보를 재해석해 내고 있다.

  또 장애우문제를 알기 쉬운 만화로 풀어보는 "이상윤의 그림이야기"는 새로운 시각과 시도로 좋은 회를 거듭할수록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실시된 독자설문조사결과 많은 독자들이 함께걸음을 받아들면 가장 먼저 펼치는 지면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또한 함께걸음은 "장애우의 세상보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중증장애우들의 문화 체험을 유도하기도 했다.

  광주민중항쟁과 장애우, 산재 외국인노동자의 아픔도 함께 돌아본 함께걸음은 이제 사회복지 전문지로서의 역할과 책무를 다시 한 번 새기고 있다. 이미 93년 8월 건설일용 노동자 문제나 12월 지역사회탁아소선생님들이 처한 어려움과 함께 97년 3월 정신대할머니들이 공동체인 나눔의 집을 살펴보았으나 함께걸음의 발걸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도 많음을 안다.

  함께걸음은 창간직후부터 기존의 "장애인"이라는 명칭 대신 "장애우"라는 명칭을 제기하고 확산에 노력해왔다. 지난 100호가 나온 10여 년의 기간은 어찌됐던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우리 사회가 장애우들을 진정 같은 사회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벗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과연 또다시 10년 후에는 함께걸음이 꿈꾸는 "참 좋은 세상"이 얼마나 다가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최일선에 함께걸음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글/ 함께걸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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